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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02 조회수1,080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1월 2일 공현 전 금요일
 
 
 Mass of St Basil
 
 The one who is coming after me,
whose sandal strap I am not worthy to untie.
(Jn.1.27)
 
 
제1독서 요한 1서 2,22-28
복음 요한 1,19-28
 
 
1500년경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매우 신비스러운 미소를 띤 아름다운 여인이 도시에서 꽤 이름난 화가를 어렵게 만났습니다.

“그림 값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제 초상화를 그려주시겠습니까?”

여인을 본 화가는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나는 너무 바빠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저기 길 건너 초라한 곳에 가면 일거리가 필요한 화가가 있소. 그 사람에게 가보시오.”

초라한 곳에서 일거리를 필요로 했던 화가는 누구였을까요? 그는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였습니다. 그리고 신비로운 미소를 띤 아름다운 여인은 모나리자였지요.

우리는 이 일화를 통해, 교만한 화가에게서는 아름다운 것이 나오지 않고 겸손한 화가로부터 유명한 명작이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즉, 겸손한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쓰시며, 우리 역시 이렇게 겸손한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라십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겸손한 사람보다는 교만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즉, 낮은 자리보다는 높은 자리를 좋아했으며, 남을 섬기기보다는 남에게 섬김을 당하기를 원했던 우리였던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우리를 쓰려는 주님의 이끄심을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의 유혹은 주님의 이끄심보다도 훨씬 더 매혹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끄심을 제대로 따르지 않음은 참된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겸손한 사람인지를 자신의 삶으로 직접 보여주었던 한 인물을 만납니다. 그는 바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주던 세례자 요한이지요. 사실 당시의 사람들은 요한이 그리스도 또는 엘리아, 그리고 그도 아니면 예언자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두 인정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맞다는 한 마디 대답만 있어도, 또한 이렇게 말하는 것에 약간 죄책감을 느낀다면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사람들은 그를 그리스도로 아니면 엘리아나 예언자라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세례자 요한에게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던졌을 것이지요.

그러나 그는 솔직하게 답변을 합니다. 단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말하면서, 자기보다 뒤에 오실 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면서 가장 겸손한 자세를 취하십니다.

그러한 겸손함이 바로 하느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겸손함으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준비하는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이 세상 안에서 이러한 겸손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으며, 주님 안에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현실 속에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의 삶 그 자체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이 그렇게 변화를 거듭하며 새로워지는 예측불허의 환상적 아름다움은 그 어디에도 없다.(베레니스 애벗)






행복의 옷(‘행복한 동행’ 중에서)

많은 것을 가졌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은 왕이 있었다. 어느 날 왕은 스승을 찾아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왕의 고민을 들은 노스승이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의 옷을 입으시면 됩니다.”

다음 날, 왕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의 옷을 가져오라는 방을 나라 곳곳에 붙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왕이 홀로 짐을 꾸려 찾아 나섰지만 어느 곳에서도 행복을 자처하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던 어느 날, 왕은 멀지 않은 곳에 들려오는 아름다운 피리 소리에 잠이 깼다. 왕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가 피리 부는 사람에게 물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피리 소리요. 무척 행복하게 들리는데, 당신 마음도 그 연주처럼 행복하오?” 그러자 피리를 불던 사내가 말했다. “그럼요,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거든요.” “당신의 옷을 내게 파시오! 돈은 얼마든지 주리다!” 왕이 기쁨에 겨워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나는 당신에게 줄 옷이 없어요. 어두워서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지금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아요. 어제 지나가던 불쌍한 거지에게 마지막 남은 옷을 적선하고 말았답니다.”

왕은 그제야 스승이 말한 ‘행복해지는 옷’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행복은 무엇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것을 남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의 기쁨이었다. 왕궁으로 돌아간 왕은 그동안 쌓아 둔 재산을 풀어 가난한 백성을 구제했다. 그리고 진정 행복해졌다.
 
 
 
Thanks - John Boswell
임형주- A time for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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