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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49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26 조회수489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은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이어서 오늘 복음이 선정된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은 열두제자를 뽑으신 후에 제자 분들을 이스라엘의 각 고을에 파견하시며 제자 분들의 안위를 걱정하시어 제자 분들에게 용기를 심어 주시려고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의 바로 앞 구절인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마태 10,16)하신 말씀이 오늘 복음과 함께 선정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묵상은 오늘 복음의 전후 말씀을 전부 확인하며 묵상하고 있지만 미사는 매일 미사 책을 소지하고 미사에 참례하므로 말씀의 봉독만으로는 오늘 복음처럼 말씀을 하시게 된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 사람처럼 동종이 동종을 죽이는 생명체는 제 상식으로는 오직 사람밖에 없는 것같습니다. 타 생명체는 영역을 확보하고 암컷을 서로 취하려고 동종 간에 다툼은 하지만 서로 죽이지는 않고 있습니다. 동종이 동종을 죽이게 되면 그 종은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의 종이 영원히 지속되기 위해서는 동종교배를 하여야 하고 동종 간에는 서로 죽이지 못하도록 섭리되어 있어야 창조 질서가 영원토록 유지될 것입니다.

동물처럼 영역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상대를 죽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 사람처럼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서로를 죽이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습니다. 초기 우리 그리스도교의 박해도, 또 우리 선조들이 받은 박해도 생각이 다르다고 박해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는 지난 박해를 교훈삼아서 다른 어떤 종교보다 더 앞장서서 종교 간의 대화로 화해와 상생을 실천해야 하고 타종교를 박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박해는 진리는 항상 박해를 받는다는 일반적인 사실을 말씀하고 계신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지금의 그리스도교가 태생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에 의한 세례 운동이 일어나듯이 당신의 뜻을  따르는 복음 실천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계셨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가치관이 다릅니다. 나와 100% 똑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이 지구상에 단 한 사람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 오늘은 옳은 가치관이라 할지라도 내일이면 틀릴 수 있는 것이고 오늘은 틀린 가치관이라 할지라도 내일이면 또 옳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런 가치관의 차이를 박해하는 것은 사색과 양심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이므로 이런 양심적인 신념에 대한, 특히 학문적 견해와 건전한 사고에서 비롯된 사상적인 견해에 대하여 자행하는 박해는 앞으로는 더 더욱 지양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어느 종교를 가릴 것 없이 종교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도 예외가 될 수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유도, 예수님 승천 후에 제자들이 박해를 받은 이유도 모두 양심적인 확신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즘 표현으로는 양심범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순교자를 성인으로 시성하여 축일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축일미사가 오늘의 교훈으로 제게 다가오는 것은 여러 분야에서 이런 양심적인 신념을 굽히지 않은 분들에 의해서 인류 역사는 발전해 왔으므로 우리도 이런 양심적 신념은 굽히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늘 틀릴 수 있으므로 백번 천 번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만 옳다는 확신이 섰다면 자신의 양심만은 속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하였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순교자가 될 수 없습니다. 뒷일의 걱정보다는 자신의 양심이 우선하는 사람이 바로 순교자입니다. 표리부동하고 침묵하는 자는 순교자가 될 수 없으며 양심범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다가 감옥에 갇힌 무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선처하도록 호소해야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교가 당하였던 박해가 오늘 저희에게 주는 교훈일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 교인들은 하느님의 빽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다른 빽은 필요하지 않는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다른 빽이 필요한 사람들은 바로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태 12, 8)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물론 다른 말씀도 그대로 믿고 실천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교세를 하느님의 빽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요즘 우리 일부 그리스도교의 모습이며 이는 교세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교가 일부 욕을 먹고 있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 이름을 함부러 남용하기 때문이며 예수님의 말씀만을 실천하고 있다면 우리 그리스도 교인들은 모두 천사로 칭찬받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의 본뜻은 진리는 언제나 소수에 의해 제기되며 소수에 의해 제기된 진리는 잘못된 다수에 의해 박해를 받는다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가 소수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오늘 복음에 있음을 묵상하였습니다.

대자대비 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진리는 박해를 받지만 끝내 승리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저희 모두가 언제나 진리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의 지혜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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