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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리읽는 성서묵상 [성주간-수요일-]& 영상으로 초대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03 조회수483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서묵상과 영상으로 초대 (수요일) ★

    ◈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 넘기는 그 사람!> 마태오. 26,14-25 그 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그 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 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 넘기 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팔아 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유다는 선과 악에 대한 긴장을 늘 심하게 느끼며 산 사람으로 보입 니다. 물론 처음부터 유다는 자신의 인간적 욕망으로만 가득 차 있었 다고 짐작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가능성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로서 공생활 내내 그분과 함께 그 리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생활해 온 유다에게서 다른 제자들은 전혀 그 내면의 탐욕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유다의 마음이 악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분께서 복음을 전한 세해간의 세월을 결코 함께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며, 다른 제자들 또한 그러한 유다의 면모를 능히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이루어진 제자들의 친밀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유대감으 로 형성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박해받는 예수님과 함께 생 활하려면 그분에 대한 강한 유대감과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 입니다. 또한 제자들 간에 서열 의식을 가지고 다투는 모습을 볼 수 는 있을지언정(마르 9,33-35) 그들 스스로 분열하는 모습은 성경 어 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의 유대감은 훌륭했을지언정 제자들 개 개인이 예수님과 맺은 유대감은 서로 달랐을 것입니다. 곧, 베드로가 지닌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유다와는 분명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금전적인 욕망의 그늘 아래 있었던 유다는 예수님 의 지극한 사랑의 모습을 함께 체험하며 끊임없이 양심의 갈등을 느 꼈을 가능성이 큽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 는 이처럼 애초부터 있었다고 보기보다는, 자신의 비천함과 예수님의 거룩함 사이의 심한 괴리감으로 말미암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주님을 일부러 배신하려고 계획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 다. 그러나 스스로 주님에게서 벗어나고 있는 자신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에는, 언젠가는 악으로 향하고 있는 자신을 느끼면서도 그 한계 선을 넘어 버렸음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선생님, 저는 아니지요?" ◈ 관 점 ◈ 유다라고 해서 처음부터 배반자의 길을 가겠노라고 마음먹었을 리가 만무합니다. 처음 예수님과의 만남을 갖고, 또 그분에 매료되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따라 나섰을 때만 해도 유다는 다른 어떤 제자들보다 적극적이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열렬히 예수님을 사랑했고, 신뢰했었습니다. "이 분이야말로 내 인생을 걸만한 분이야! 내 삶을 송두리째 맡겨도 후회하지 않을 분이야!" 라고 생각했기에 최선을 다해 예수님과 제자 단의 살림살이를 위해 헌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의 그런 열정과 적극성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유다가 지니고 있었던 가장 큰 문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관점"이었 습니다. 예수님을 추종의 대상,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성취의 도구, 입신 출세의 발판으로 여겼던 유다 였습니다. 그러한 그릇된 관점과 노선 이 어느 순간 수정되고 쇄신되었어야 했는데, 유다는 끝까지 자신의 노선을 버리지 못했기에 제자 직을 버리게 된 것입니다. 한 때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군중이 구름처럼 몰려들던 시절,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던 시절, 계속되던 치유와 기적의 시절,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것 같던 해결사의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치유의 은총을 입고 수백 번도 더 감사의 인사를 하러 오던 사람들, 덩달아 우쭐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죽었던 사람조차 다시 일으켜 세 우던 시절, 끝도 없이 접수되던 기부금과 감사헌금, 군중들의 환호와 따뜻한 시선... 유다 에게 있어 예수님은 그야말로 흠모와 투신의 대 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때, 수난의 때가 다가오자 군중들의 환호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라졌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떠나갔습니다. 이 총체적 난국을 어떻게 설명하실까 예수님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더욱 한심합니다. 하신다는 말씀이 고작 "자신을 죽여라! 자신을 낮춰라! 서로의 발을 씻어 줘라!"는 등 쓸데없는 말만 쏟아 놓습니다. 전처럼 능력의 예수님, 힘 있는 예수님, 과감하게 적대자들을 물리치 던 승리의 예수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죽음 앞에 피땀 흘리시며 번 민하시는 약자 예수님의 모습만이 남아있습니다. 유다 는 작정합니다. 이제 떠날 때가 왔구나. 더 이상 내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구나. 떠나는 길에 사업자금이라도 마련해야지 하면서 제자 직을 접습니다. 예수님을 팔아 넘깁니다. 유다에게 있어 예수님은 더 이상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 었기에 유다는 과감히 예수님을 떠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심각하게 점검해보는 오늘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을 선택했습니까? 도대체 왜 세례를 받았습니까? 왜 신앙생활을 지속합니까? 오로지 예수님을 내 인생의 만사형통을 바라는 마음에서 선택하지는 않았습니까? 머지않아 사라질 육신의 안위와 건강만을 위해서 선택 하지는 않았습니까? 내 가족의 창창한 앞날만을 위해서 선택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머지않아 우리도 예수님을 떠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끔씩 만사형통도, 인간적인 성취도, 삶 의 기쁨과 보람도 주시는 분이지만, 그 모든 것을 이 세상에서 영원 히 약속하지는 않으십니다. 언젠가 우리가 그토록 추구하던 그 모든 인간적인 것들, 육적인 것들 은 사라질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를 기꺼이 진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분의 십자가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웃사랑과 헌신, 희생정신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 오늘의 복음에는 예수님의 폭탄선언에 모두들 깜짝 놀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마태26,21)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걱정이 태산같아졌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처음으로 하신 것도 아니고 전에도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몇 번인가 하셨는데,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배반을 한다니 정말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26,22)하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이때, 유다 도 나서서 같은 질문을 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혹시 정말로 자신의 속마음을 아실까 떠보기 위해 서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예수께서는 아시더라도 다른 제자 들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태연한 척 하는 행동일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그릇됨을 감추려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모습입 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이 잠깐 동안은 감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래도록 감출 수는 없다는 것과 더욱이 하느님께서는 속내를 알고 계시 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어리석은 행동일 뿐입니다. 유다 의 행동에 비해서 오늘 제 1독서에 나오는 이사야 예언자의 모 습 은 참으로 의연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죄 없음을 알아주시고 옆에 계시는데, 누가 나를 걸어 송사하랴?"(이사50,8) .................. ◈ 기 도 ◈ 주님, 주님께서 저를 굽어보시고 계시니 저도 주님을 생각하며 살게 하소서. 사람들의 이목만을 생각할 때는 진실을 외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 사오니, 저를 향하시는 주님의 눈길을 느끼며 올곧은 길을 걷게 하소서. 주님, 언제나 주님께 옳다고 평가 받는 그 길만을 선택하도록 노력하겠나이다. 아멘.
◈ 비우는 만큼 채워지고 ◈

    마음이든 물건이든 남에게 주어 나를 비우면 그 비운 만큼 반드시 채워집니다 남에게 좋은 것을 주면 준 만큼 더 좋은 것이 나에게 채워집니다 좋은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좋은 말이 떠오릅니다 좋은 글을 쓰면 쓸수록 그만큼 더 좋은 글이 나옵니다 그러나 눈앞의 아쉬움 때문에 그냥 쌓아 두었다가는 상하거나 쓸 시기를 놓쳐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좋은 말이 있어도 쓰지 않으면 그 말은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더 이상 좋은 말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중에 할 말이 없어 질까 두려워 말을 아끼고 참으면 점점 벙어리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샘물과 같아서 퍼내면 퍼낸 만큼 고이게 마련입니다 나쁜 것을 퍼서 남에게 주면 더 나쁜 것이 쌓이고 좋은 것을 퍼서 남에게 주면 더 좋은 것이 쌓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그냥 쌓이는 게 아니라 샘솟듯 솟아 나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니 말입니다 가난이 두렵다고 과도한 재물을 탐하지 말 것이며 부자의 있음을 비방하여 자신의 무능을 비호하지 말아야 합니다 차고 넘치면.. 비우면 가득하다는 진실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 가난한 마음의 행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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