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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기쁨" - 2007.11.8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08 조회수484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11.8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로마14,7-12 루카15,1-10

                                                        
 
 
"하느님의 기쁨"
 


하느님의 기쁨은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이 아닌 회개하는 죄인 하나에 있습니다.
 
예나 이제나 의인(?)의 회개는, 사제나 수도자의 회개는 참 어렵다 합니다.  
 
자부심의 교만에다가 허영으로 액세서리(accessory) 신앙이기 십중팔구입니다.

회개할 때 하느님을 만나고 참 신앙을 지닙니다.

하느님 곁에 산다는 아흔 아홉의 의인들보다는
오히려 회개하는 죄인이 살아있는 하느님을 만납니다.
 
길 잃은 죄인의 하느님 향한 갈망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도 소위 의인들이라 할 만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주님과 거리를 두고 있는 반면
세리들과 죄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 가까이 모여들었다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우리들에겐 하느님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됩니다.

하여 하느님과 같이 우리의 기쁨과 관심의 초점 역시
회개할 것 없는 교만한 의인 아흔 아홉이 아닌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입니다.
 
세상의 실용적 눈으로 보면 건재한 아흔 아홉 양이 관심의 초점이 되고
한 마리 잃은 양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지만,
하느님의 관심은 온통 한 마리 잃은 양, 회개하는 죄인 하나에 있음을 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자비하신 하느님을 닮습니다.
 
이들의 관심 역시 잃은 양들에 있습니다.
 
사실 교회의 선교도 잃은 양들을, 죄인들의 회개를 목표로 합니다.
하여 잃은 양들을 찾는 선교에 앞서
내 자신 길을 잃고 해매는 처지에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회개하는 죄인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 지 성찰은 필수입니다.

다음 바오로의 말씀이 은혜롭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주님과 하나 되어 사는 자비로운 사람들,
관심의 초점은 길 잃은 형제들에게 있습니다.
 
결코 누구도 심판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을뿐더러
하느님의 자비에 절대로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하느님 앞에 대죄는
이웃을 업신여기고 하느님의 자비에 절망하는 교만임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님은 회개하는 죄인들인 우리를
당신의 성체와 말씀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주님, 주님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주님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시편36,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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