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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로에게 순종/영적성장을 위한 감성수련 문종원신부님
작성자조연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07 조회수483 추천수2 반대(0) 신고



 
 
 

 

*서로에게 순종 *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정신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에페 5,21)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과 서로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서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과 순종을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습니까?

 

첫 번째 통제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통제는 아마 우리의 삶 안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어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우리 자신의 행동

그리고 다른 어떤 것이든 통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건강한 자아는 종속되고 속박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자주 고통, 혼돈 그리고 황폐함을 가져 올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사람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삶을 통제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가 그것에 관해서 너무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통제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빈번하게 통제를 벗어난다고 느끼는 사람은 통제하려는 욕구에 얽매여 있는 것입니다.

 

통제에 대한 또 다른 단어는 애착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애착이나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러한 이유로 고통을 짊어 지고 있습니다.

다른 방도를 찾을 때까지는 우리 모두는 고통을 받아야만 할 것입니다.

문제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대안을 찾고자 하지만,

우리의 거짓 또는 종속된 자아,

그리고 우리가 어떤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달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치유를 받고자 한다면, 항상 통제하려는 우리의 욕구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 자유는 우리의 참된 자아인, 내면의 아이가 지향하는 것입니다.

“복종하다”라는 단어는 군대에서 패했다는 뜻으로 “포기한다”라거나

“굴복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복종하는 자가 통제를 하려는 싸움에서 승리를 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대부분의 불필요한 고통을 개선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참된 자아에게 복종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든 삶의 문제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째든 삶 자체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기까지 합니다.

삶이 통제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건 상관없이, 삶 자체가 지닌 강력하고 신비로운 여정은 계속됩니다.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삶 자체가 지니고 있는 것들이 너무도 풍요롭고,

자발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멋대로 다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통제될 수 없습니다.

곧, 우리의 사고나 마음에 의해서 통제를 받지 않습니다.


이 점을 통해서 우리는 항상 통제하려는 욕구로 인해 생기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통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통로는 진실한 자아에 복종하는 것이고,

그 다음 점차적으로 삶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적당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구하면서

그리고 해방시키면서 통제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 작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의 참된 자아를 발견하기 시작하고,

우리는 더 생동감 넘치는 느낌을 갖기 시작할 것입니다.


두 번째, 지나치게 책임감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분쟁이 있거나 기능 장애 가정에서 자란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책임을 갖는 것을 배웁니다.

이것은 화, 두려움 그리고 상처와 같은 우리의 고통스런 많은 느낌들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자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한 통제 하에 있다는 착각을 심어줍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통제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은 잘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요구에 언제나 “예”라고 말한다면, 아마 고통만 과중시킬 겁니다.

우리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과 자신이 할 수 없거나 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참된 자아가 요구하는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과도한 책임을 지니고 있을 때,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은 무책임하며,

자신이 마치 세상의 희생자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훈련을 통해

“아니오”라고 말함으로서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우리의 욕구들을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욕구들을 부인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과도한 책임을 가지는 것과 긴밀히 연결됩니다.

둘 다 거짓 자아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의 회복에 대해 관찰하고 작업함으로서 우리는 건강한 방식으로

이러한 욕구들을 채울 수 있는 사람들과 장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점차적으로, 우리의 욕구들이 점점 더 채워질 때,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다른 말로, 우리 자신이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효과적이고 강력한 존재이며,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얻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을수록, 우리는 우리의 욕구들을 찾고, 실제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우리의 내면의 아이는 깨어나서 점차적으로 성장하고 자라고 창조되기 시작합니다.

우리 자신안에 기적을 이루는 힘이 있다는 것과 사랑 받을 만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서

우리자신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 번째, 부적당한 행위에 대한 지나치게 관대하게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분쟁이 있거나 기능장애 가정으로부터 자란 아이들은 정상적인, 건강한

또는 적당한 것을 알지 못하고 자랍니다.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없이, 그들은 자신들의 모순, 충격

그리고 고통을 지닌 그들의 삶이 “당연하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의 거짓 또는 종속된 자아는 곧, 분쟁이 있는 사람,

친구들과 공동체의 환경에 아무런 이의 제기도 없이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다른 말로, 우리는 여기에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회복하면서, 숙련되고 안전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적당한 지도와 피드백을 받음으로서,

우리는 서서히 무엇이 건강하고 무엇이 적당한 것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불합리한 행동과 말을 들어야만 할 때, 덫에 걸린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과 떨어져 있으려고 했을 때,

죄책감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에 생긴 이러한 성향은 성인이 되어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나쁘게 대하도록 허락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을 모질게 다루도록 허락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성향에서 치유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야만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부적당한 행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게 대하지 않는 것을 배울 때,

이렇게 자주 일어나는 학대의 미묘한 형태를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다섯 번째,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전적으로 우리 존재의 가장 초기의 시절로 돌아갑니다.

신뢰나 불신과 연결해서,

이것은 자주 분쟁이 있거나 기능장애 가정에서 자란 어린이들 사이에 과장되어 나타납니다.

두려운 느낌들을 우리는 자주 불신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느낌들을 거부하고 그래서 우리는 상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유아기와 어린 시절 때 그것들을 방치하거나 버리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기에는 우리의 존재가 지닌 가치가

너무도 위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섯 번째, 분쟁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분쟁을 조절하고 해결하는 것은 핵심적인 문제일 겁니다.

분쟁이 있거나 기능 장애 가정에서 자랐을 때,

우리는 가능하다면 언제나 갈등을 피하는 것을 배웁니다.

갈등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대개 어떻게 해서든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을 배웁니다.

때때로, 우리는 공격적이 되고, 갈등에 있는 사람들과 힘 겨루기를 시도합니다.

이러한 기술들이 실패했을 때, 우리는 속임수를 쓰게 되고 교묘하게 다룹니다.

기능장애 환경 안에서,

이러한 방법들은 우리의 생존을 확실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건강한 친밀한 관계 안에서는 잘 먹혀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내면의 아이의 치유 곧, 그것을 회복하는 것은 갈등 후에 갈등을 발견하고

그 다음 그것을 뚫고 나가는 것을 토대로 합니다.

그러나 분쟁을 겪으면서 오는 두려움과 다른 고통스런 느낌들은

우리가 겪기에는 너무 강해서 경험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고통을 직면하고 분쟁을 해결하기보다, 우리는 예전의 방법으로 되돌아 갈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다음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나는 혼자의 힘으로 그것을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혼자서 그것을 처리할 때 그것은 잘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우리의 쟁점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회복을 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버림받았을 때 경험한 것들과

두려움처럼 우리의 참된 자아의 깊은 곳에서 있는 것을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안전한 친구나 지지해 주는 사람과 우리의 느낌들, 관심들, 혼돈과 분쟁을 나눌 때,

우리는  이야기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다른 방법으로 하게됩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 모릅니다.

동시에,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유익하고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은,

이야기하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그 실체를 파악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관심, 문제 또는 삶의 쟁점이건 간에, 안전한 사람들과 함께

그것에 관해서 과감히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침묵을 지키면서 짊어졌던

불필요한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통로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심으로 참된 자아로부터 우러나와서 우리의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자신에 관해 진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할 때 치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대부분, 핵심적인 쟁점들과 느낌들이 회복하는 초반에,

종속된 자아는 실제적으로 다른 변장이나 마스크를 씀으로서 자신을 위장합니다.

우리의 관심들을 안전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함으로서 오는 유익한 것들 가운데 하나는

그렇게 함으로서 가면을 벗고

우리의 쟁점들을 드러내고 확실하게 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자기 몸을 미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 몸을 기르고 보살펴 줍니다(에페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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