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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월 18일 야곱의 우물- 요한 3, 16-18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18 조회수483 추천수4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 3,16-­18)
 
 
 
 
하느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이기심이 가득 찬 이 세상의 무질서까지도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실 정도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그 외아들을 무질서한 세상과 맞바꾸시기까지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처음 나옵니다. 아껴둔 말씀이 이 세상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 대목에서 결정적으로 사용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16절) 하느님께서 사랑하신 것은 이 세상입니다. 이스라엘 한 민족이 아닙니다.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 하느님께 적대적인 사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누구도 가리지 않으시고 이 세상 전체를 품에 안으십니다. 그렇다고 그 사랑이 사람 수만큼 쪼개지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한 사람을 사랑하듯 모두를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변덕스러운 우리의 사랑과는 다릅니다.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곧 하느님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세상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17절) 이야기는 다른 본문에서도 등장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1요한 4,9-­10),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갈라 4,4-­5),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로마 8,3)
 
일찍이 구약성경의 지혜문학에도 지혜를 파견하는 예가 있었습니다. “당신께서 하시는 일을 아는 지혜는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당신께서 세상을 만드실 적에도 지혜가 곁에 있었습니다. 지혜는 당신 눈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당신 계명에 따라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거룩한 하늘에서 지혜를 파견하시고, 당신의 영광스러운 어좌에서 지혜를 보내시어 그가 제 곁에서 고생을 함께 나누게 하시고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제가 깨닫게 해주십시오.”(지혜 9,9-­10; 집회 24,4-­22 참조)
이렇게 파견된 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16절) 됩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가듯’(21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약속받습니다. 영원한 생명에는 믿음이 필수적인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이냐 멸망이냐, 구원이냐 심판이냐가 갈립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17절). 하느님은 심판관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의 사명 또한 단죄나 심판이 아닙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18절) 다시 말해 하느님이 굳이 심판하지 않으시더라도 인간 스스로 심판의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다른 대목에서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9,39)라고 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모든 것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심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한다면 심판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불신은 우리를 멸망과 심판의 길로 내몰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심판에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17절) 오로지 세상의 구원에만 관심이 있으십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구원 의지는 투철하십니다. 저마다 구원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겠지만 적어도 상처가 치유되고 고통과 죽음에서 해방되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구원입니다. 하느님이 아들을 내주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인간 구원의 원천은 하느님이십니다. 생명을 잃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 세상에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셨으므로 모든 인간을 구원으로 초대하십니다. 구원을 얻은 사람은 하느님의 능력으로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18절) 심판은 인간이 자초합니다. 이미 현실에서 본인의 선택에 따라 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불신했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우습게 알았습니다. 신명 30,15-­19에서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슷한 선택을 요구합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또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두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선택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입니다.

 
사랑을 듬뿍 받아본 사람은 사랑할 줄 압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힘이 나게 하고 배부르게 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사랑 때문에 최고의 대가를 치르신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가난해도 부유하고 삶이 각박해도 여유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본 사람입니다.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인간의 잘못과 불순종에도 눈멀고 귀먹으신 하느님이십니다. 그 사랑을 알아보고 믿는다면 영원히 그 사랑 안에 살 것입니다.
강지숙(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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