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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도와 사랑의 방향성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17 조회수483 추천수5 반대(0) 신고
 
 

기도와 사랑의 방향성 - 윤경재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태19,16-22)

 

저는 새벽 미사에 명일동 성당으로 다니곤 합니다. 제가 아침에 일어나 자동차를 몰고 15분가량 달려가야 하는 그곳으로 미사 참례하는 까닭은 그곳이 예전에 오랫동안 살아서 정든 곳이기도 하지만, 미사 분위기가 무척 좋기 때문입니다. 아마 새벽미사 참례 교우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을 듯싶습니다. 다른 본당 새벽미사에는 듬성듬성 자리에 앉아 계시지만, 명일동에는 매일 새벽미사에 400여 명이 참례합니다. 상당히 큰 본당임에도 가득 찬 느낌을 줍니다. 그럼에도 기도 분위기가 물씬 납니다. 전례 음악 반주로 오르간 주자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주자도 나와 봉사를 합니다. 사제께서도 성가를 따라 부르십니다. 마침 성가는 꼭 1절을 다 부르시고 퇴장하십니다. 성가대 단원들도 돌아가면서 나와 자리에서 큰 소리로 선창합니다. 

막상 이른 아침부터 부부가 함께 나오기 쉽지 않지만, 명일동에는 함께 나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새벽미사에 매우 익숙해져 좌우로 눈을 돌려 보면 미사에 지향하는 연유를 웬만큼 다 압니다. 수도원에 아들을 보낸 부부, 딸을 맡긴 자매님, 저처럼 병중에 계시는 부모님을 위해 나오는 교우들, 특히 사고로 5여 년째 식물인간으로 침상에 누운 아들을 위해 매일 미사 지향을 넣는 부부도 있습니다. 아마 사업이 곤란해 하느님께 매달리는 형제님도 있겠고, 자식 대학 입시를 위해 나오시는 분들도 많겠지요. 고민거리를 일일이 말로 하지 않았어도 다들 빤히 짐작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사제께서 강론 때 우리는 지금 기도 품앗이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이후로 부쩍 미사 분위기가 성숙해졌습니다. “자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옆에 선 저 형제자매님께서 지금 어떤 고민과 생각으로 이 꼭두새벽에 나오셨는지 잘 아시죠. 그러니 아침 미사만큼은 자기 기도보다는 서로 이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시다. 그럼 주님께서 더욱 기뻐하실 것입니다.”라고 강론하셨습니다. 그래서 서로 자신과 제 가정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옆에 자리한 형제자매님의 지향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은 정말로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재산뿐만 아니라 지식과 건강과 능력도 상위 1% 안에 드는 부자였을 겁니다. 심지어 외모도 출중했겠고 겉으로 드러난 자세마저 겸손하게 보였습니다. 누가 보아도 멋지게 보였을 겁니다. 예수께서도 그의 겉으로 드러난 행동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대번에 알아채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따라 사는 방향성과 실천이었습니다. 그가 행한 모든 행위는 결국 이득이 자신에게 향하는 일뿐이었습니다. 심지어 영원한 생명마저도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지적하신 것은 바로 방향성이 어긋났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자신이 아니라 타인과 주님께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명일동 교우들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향성을 제대로 깨닫고 실천했기에 지금처럼 융성하고 화목한 본당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본당마다 각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막상 훌륭한 미사전례를 위해 손수 봉사를 하시는 분들은 적습니다. 미사 강론을 열심히 준비하시고 전례가 충만하도록 모범을 보이시는 사제와 겸손히 따르는 교우들이 있어 명일동 본당은 사제님들 사이에서도 서로 맡고 싶어 하신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이스라엘에 갈릴래아 호수와 사해가 같은 물줄기에서 나온 것은 다 아실 겁니다. 그럼에도 하나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고 하나는 온갖 생물이 자라며 사람들을 배 불려 먹이는 생명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 둘의 차이는 자신이 받아들인 물줄기를 내어 놓았는지 아닌지에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처럼 되었습니다. 사해는 물을 내보낼 줄 모르고 받아들이기만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처음으로 생명의 말씀을 전하신 곳도 바로 갈릴래아 호수 부근이었습니다. 사해에 인접한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인정하지 못하고 더는 진리를 전하지 못하게 예수께 십자가 처형을 거행하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 지향을 두어 따르는 자는 생명을 잉태하고, 덕분에 자신도 풍성해질 것이며 예수님을 거절하는 사람은 남뿐만 아니라 자기의 생명도 잃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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