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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은 나의 목자 - 8.2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22 조회수483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2.8.22 수요일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에제34,1-11 마태20,1-16

 

 

 

 

 



주님은 나의 목자

 

 

 

 

 


오늘은 착한목자의 영성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비단 교회의 사목자들뿐 아니라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비정한 자본주의 사회 안에 몸담고 살아가는

모든 지도층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참 절실한 영성입니다.


사목(司牧), 목민(牧民), 목자(牧者), 목사(牧師) 등

‘목(牧)’자만 들어가는 단어만 들어도 기분이 좋고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모두 양떼를 돌보는 목자에 뿌리를 둔 단어들입니다.

 


사업(business)이전에 사목(shepherding)입니다.

사업가 이전에 사목자입니다.

비단 교회의 성직자들뿐 아니라

사업가들 역시 이윤 추구의 사업가에 앞서 사람 중심의 사목자여야 합니다.

 


요즘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도 나도 심지어는 대학 총장 까지도

덕망이나 학식보다도 돈을 잘 모으는 사업가적 수완을 우선합니다.

사람의 가치도 상품으로 평가되는 사람 실종의 시대에

착한목자의 영성은 참 절실합니다.

 


하느님은 착한목자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해

착한목자 하느님의 마음이, 진면목이 잘 드러납니다.


제 본분에 소홀한 이스라엘 목자들에 대한 지탄입니다.

고대 근동 국가에서는 왕이나 지도층의 사람들을 목자라 부르곤 했습니다.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

 


그대로 오늘날 현실로

교회의 사목자는 물론이고 지도층에 있는 모든 이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모든 이들이

착한목자 하느님의 소중한 돌봄(caring)과 치유(healing)의 대상인

양떼들입니다.

 


주님은 계속하여 불충실한 목자들의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마치 학교, 공장, 회사, 공사장, 시장 등 삶의 현장 곳곳에서

생존에 허덕이는 오늘날 민초(民草)들의 모습 같습니다.

 


“산마다, 높은 언덕마다 내 양떼가 길을 잃고 헤매었다.

  내 양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찾아보는 자도 없고 찾아오는 자도 없다.

  …나의 양떼는 목자가 없어서 약탈당하고,

  나의 양떼는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는데,

  나의 목자들은 내 양떼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목자들은 내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들만 먹은 것이다.”

 


그대로 오늘의 비정한 자본주의 현실 안에서

제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목자들에 대한 예언 같습니다.


이래서 착한목자 대통령을 뽑아야 할 올 해의 대선이 그렇게도 중요합니다.

 

착한목자 통제 아래 들짐승 같은 탐욕의 사람들은 제재되어

모두가 평화로이 공존할 수 있는 하늘나라 시스템의 정착이

참 중요한 과제입니다.


사실 착한목자 예수님의 전 생애의 과업 역시

사탄의 시스템에서 하늘나라의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빈부격차로 인해 야기되는 무수한 사회문제들로

복지가 최우선의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착한목자 예수님은 복지의 원조입니다.

복음서에서 보다시피

제일 먼저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실천하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오늘 복음의 포도밭 주인을 통해서도

착한목자 하느님의, 예수님의 진면목이 잘 들어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예화를 나눕니다.

8명이 달리기 경주를 했으며 상품으로는 연필 10개가 마련되어있었고,

1등은 5개, 2등은 3개, 3등은 2개를 주기로 결정했는데

한 유치원 특수교사가 이의를 제기했다합니다.

 


“모두 열심히 달렸으므로

  여덟 명의 어린이에게 모두 한 자루씩 상으로 주고,

  두 자루는 또 필요한 경우에 사용하면 됩니다.”

 


이 의견에 모두가 박수를 치며 동의했다 합니다.


바로 이게 착한목자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이래야 경쟁이 아닌

상호 보완 협력을 통한 공동체의 평화와 일치가 가능합니다.

 


사실 사람 눈에 일, 이, 삼등이지

하느님 눈에는 각자 최선을 다해 달린 이들 모두가 일등입니다.

사람들은 상대평가를 하지만 하느님은 절대평가를 하십니다.

미국은 올림픽 경기 결과에서 금, 은, 동 메달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모두 합쳐 전체 메달 수를 계산한다 합니다.

 


착한목자 예수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십니다.

당신 사랑의 자유로 사람을 살리시는 일을 우선합니다.

 

일의 양을 보시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현실을 보십니다.

바로 이게 하느님의 계산법이자 하늘나라 시스템의 법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른, 맨 처음에 온 이의 항의는 너무 당연합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 군요.”

 


마치 앞의 예화에서 1등한 아이가

상품으로 5개의 연필을 예상했는데 1개를 받았을 때의 반응과 흡사합니다.


전혀 탓할 수 없는 항변입니다.

바로 자본주의식 사고에 익숙해진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불평꾼은 착한목자 하느님의 자비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또 한 시간 일한자의 딱한 처지를 몰랐음이 분명합니다.


이런 예화를 들려주시는 예수님을 통해

에제키엘 예언이 완전히 실현됐음을 봅니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우리 모두 누구의 양 떼도 아닌 주님께 속한 주님의 양 떼입니다.

 



착한목자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양 떼인 우리를 모으시어

당신 생명의 말씀과 사랑의 성체로 우리를 돌보시고 치유해주십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23,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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