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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풍경소리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09-30 조회수2,183 추천수27 반대(0) 신고

9월 30일 화요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루가 9장 51-56절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

 

 

<풍경소리>

 

때로 강경일변도의 구호나 외침보다도 깊이 있는 침묵이나 나긋나긋한 속삭임이 더욱 설득력이 있기도 합니다. 때로 열광적인 음악보다 그윽한 풍경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더욱 강하게 흔들어놓습니다.

 

예수님의 언행을 하나하나 추적해나가다 보면 예수님의 삶은 일관되게도 비폭력주의 노선이자 평화주의 노선을 선택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몇몇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습니다. 논리정연함을 바탕으로 부드럽고 다정하고 조용히 사람을 설득시키십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끌려온 한 여인 앞에서 보여주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진면목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건수 잡았다고 신이 나서 득달처럼 달려온 무례한들과 한판 설전을 벌이지도 않으십니다. 멱살잡고 대판 싸우지도 않으십니다. 사려 깊게 분위기를 파악하신 다음, 차근차근히 상황을 정리하시고, 마침내 언성한번 높이지 않으시고 한칼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사마리아인들이 사는 한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공생활 기간을 끝마쳐가던 무렵이었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의 인지도나 지명도는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그에 따라 대접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가는 곳 마다 극진한 환대를 받는 것에 슬슬 길들여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만 만나면 "잡종"이니 "정통이 아니니"하면서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이에 은근히 화가 난 사마리아 사람들 역시 유대인들만 만나면 "지들은 뭐 특별한 것인 있을까봐? 괜히 개 폼만 잡는 것들"하면서 서로 상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유다 산골 출신 예수님께 대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대접이 좋을 리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을로 들어서시는데도 아예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야고보와 요한은 "어떻게 이럴 수가, 이 버르장머리 없는 족속들!" 하면서 즉시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주님, 저 인간 덜된 것들 정말 싸가지가 없는데요. 주님께서 도착하셨는데도 쥐새끼 한 마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해서 저것들을 한번에 봐버릴까요?"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래, 너무 심하게는 하지 말고, 정당히 정신들 차리도록 혼 좀 내줄 필요는 있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야고보와 요한을 호되게 꾸짖으십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철저하게도 비폭력주의 노선, 평화주의 노선을 걸어가십니다.

 

내가 화난다고 해서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이시키지 않으십니다. 설사 자신이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감정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으십니다. 조용히 사건을 해결하려고 언제나 심사숙고 하십니다. 그리고 최대한 물러나시고, 끝까지 비폭력을 강조하십니다.

 

오늘은 오전 오후에 걸쳐 두건이나 검찰청과 법원을 뛰어다녔습니다. 갇혀 있는 형제들을 만날 때 마다 느끼는 것이 담장 안에 사시는 분들은 너무도 단순하고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다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그분들이 안고 있는 결정적인 약점은 "폭력성"입니다.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버릇이 한 인생을 망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내면에는 은연중에 폭력에로 기우는 경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과 육이 공존하는 인간이기에, 또 사회전반에 걸친 경쟁시스템으로 인해 우리 내면에는 누구나 다 폭력성이 잠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폭력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제 힘으로 인간이나 세상을 지배되는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늘 대화하면서 타협점을 끌어내려는 노력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조금씩이나마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시간이 좀 걸린다 할지라도 앞뒤 정황을 잘 따져본 다음, 물러설 것은 크게 물러서고 양보하면서 대화로 일을 풀어나가려는 노력이야말로 복음적 노선이며 비폭력 노선의 바탕입니다.

 

"가장 작은 일을 하는 사람, 모든 이의 종이 되는 사람, 하느님 사랑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될 때 그는 진정한 평화를 맛볼 것입니다."-콜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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