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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3주간 수요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18 조회수1,048 추천수1 반대(0) 신고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은 시대가 발달하고 전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을 형성할 정도로 서로 긴밀하게 네트워크화 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임시로 살 수도 있고, 그 나라의 영주권을 얻어 실제 그 나라 국민의 일부로써 살아갈 수가 있는 세상입니다.

 

각 나라마다 고유의 국법이 있습니다. 그 나라에 사는 이상 그 나라의 국법을 지켜야 되는 건 하나의 상식입니다. 지금 로마는 국가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통제령이 내려진 상황입니다.

 

이러한 통제령은 실제 이탈리아 국적을 가진 사람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 사는 외국인도 통제령에 따라 주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 나라에 살기 위해서 암묵적으로 승인된 서로의 약속입니다. 이 정도는 어느 정도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 아는 상식입니다.

 

이런 통제령은 법령에 준하는 효력을 발생합니다. 하나의 규범입니다. 법령으로 국민을 통제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다는 판단에서 내려진 하나의 조치입니다. 실제로 통제령은 말의 의미에서처럼 헌법이 보장하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이 하나의 조항으로만 보면 마치 그렇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면에서는 이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국민이 누려야 하는 행복추구권과 생명권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런 통제령이 실효성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안에서 우리는 서로 법이 충돌되어 잘못된 모순관계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건 모순이 아닙니다. 각각 법이 추구하는 단독적인 측면에서 보면 충돌하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이때 어떤 한 개인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게 더 넓은 의미에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정신에 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들어가 보겠습니다. ‘통제령을 준수한다는 건 일단 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때 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건 타인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지만 자신을 지키는 수단도 되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자유권을 제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수단으로써의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실제 어떤 제제가 제제로써의 기능이 아니라 보호의 기능을 한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지킬 계명도 이와 마찬가지일 겁니다.

 

제가 하나의 실례를 들어 설명을 한 것이지만 생명권과 자유권, 거주이전의 자유라는 서로의 법규범이 상충하는 모습이지만 실제 이런 상황에서 이게 모순이 아니라는 것은 헌법의 근본정신인 헌법정신을 근거로 해서 나중에는 최종적인 판단을 하게 됩니다.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면밀하게 자세히 들어가 보면 서로 보완하는 기능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결국 규제가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가 이야기하는 것은 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주장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거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고 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 것 같습니까? 복음에 보면 바이사이파와 율법학자들과 자주 대립각을 세우시는 장면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하느님 즉 예수님 스스로가 세우신 법을 어긴 모습이 된 형국이니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 근거는 오늘 복음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이런 말씀을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율법학자들 같은 사람들은 계명이나 율법이 추구하는 근본정신을 망각하고 순수하게 하나의 율법 조항에 매여 율법을 바라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비근한 예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실 때 하신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느냐? 아니면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건 앞에서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헌법정신을 따라서 판단하는 것처럼 이것도 실제 어떤 걸 더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게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과 율법의 정신에 더 합치하는지를 놓고 똑같이 판단해야 하는 이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역할을 하러 오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율법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계명을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린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실제적인 의미를 좀 더 자세하게 알려주시는 게 오늘 제1독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신명기에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한 말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신명기 4,1.5-9) 오늘 제1독서

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5 보아라, 너희가 들어가 차지하게 될 땅에서 그대로 실천하도록, 나는 주 나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대로 규정과 법규들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었다.

6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정을 듣고,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7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8 또한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9 너희는 오로지 조심하고 단단히 정신을 차려,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것들이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또한 자자손손에게 그것들을 알려 주어라.”

 

하느님의 법규를 따라야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갈 수가 있고 그걸 잘 실천해야 슬기롭고 지혜로운 하느님 백성다운 백성이 될 수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정신을 단단히 차려서 이것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며 평생 마음속에 간직하며 자자손손 알려 주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 되는 길이 될 겁니다.

 

결국 계명과 율법은 이 땅에서 살면서 우리의 삶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장차 가게 될 천국에서 살려면 미리 이 땅에서 하늘 나라의 법을 몸에 익혀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준수해야 하는 것처럼 하늘 나라에 가서 살려면 이 땅에서부터 하늘 나라의 법을 준수하는 연습을 해야 하늘 나라 가게 되었을 때 혼란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계명을 하느님께서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바로 새 계약입니다. 바로 이 계약을 하나로 말하자면 바로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보면 그 하나에 모든 계명이 녹아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결국은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은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길을 완성하는 최종 종착역은 바로 우리의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게 최고의 사랑이고 그 길이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율법이 완성되는 길일 겁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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