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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빈첸시오 신부의 여행묵상 16 - 버스에서 본 풍경 (터키)
작성자양상윤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20 조회수1,196 추천수1 반대(0) 신고

 

버스에서 본 풍경

 

 

 

우리나라는 면적도 그리 넓지 않은데다 도로도 잘 돼있어서

 

나 같은 경우 이동시간이 네 시간 이상이 되면 상당히 먼 거리로 느껴진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이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렇게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경우

 

배낭여행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야간이동을 선택한다.

 

시간과 경비의 절약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시간도 경비도 풍족한 편이 아니면서 야간 이동보다는 주간 이동을 선호한다.

 

가장 큰 이유는 체질적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상당히 힘들어하는 편이라

 

버스를 타고 밤새 이동을 하고 나면 도착한 날 오전은 그냥 숙소에서 쉬어줘야 한다.

 

그러니 야간이동의 장점인 시간 절약, 비용 절약이 나에게는 별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내가 남달리 뛰어난 체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들과 비교해서 특별히 저질 체력이 아닌데도 나는 유독 잠에 약하다.

 

이건 단지 나이 탓 만이 아니다.

 

한창 체력이 넘치던 대학 때도 나는 잠을 못 자면 무척 힘들어했다.

 

나는 신학교에 가기 전에 미대(美大)를 졸업했는데

 

밤에 한 시간 작업한 양이 낮에 반 나절 작업한 양보다 훨씬 많은 것이

 

별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미대생들은 늘 밤을 세워야만 작품이 나왔다 ㅡ.;;

 

더구나 우리학교는 당시에 과제 많기로 소문난 학교이다 보니

 

'과제 마감'과 '시험 기간'이 겹치는 학기 말에는 웬만한 여학생들도 이 삼일 밤새는 것은 보통이었는데

 

그런 때도 나는 다음날 오전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수업이 있으면 밤을 새지 않았다.

 

밤샘 작업을 한 날 오전에는 거의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스탄불 다음 목적지 샤프란볼루는 버스로 약 여섯 시간 정도 걸리는 곳으로

 

인터넷에 보니 야간이동을 추천하는 글이 꽤 많고

 

또 실제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야간이동을 선택을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당연히 주간이동을 선택했다.

 

 

 

버스가 이스탄불 터미널에서 출발하고 처음 한 시간 정도는

 

그냥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도심과 그 주변의 풍경과 별 차이가 없다가

 

오른쪽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풍경이 변하기 시작한다.

 

이스탄불을 돌아다니다 보면 루트를 어떻게 짜던지 간에 최소한 하루에 한번쯤은 바다를 보게 되는데

 

이는 이스탄불 자체가 해안 도시인데다가

 

관광객들이 찾은 유명한 볼거리들이 대부분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거나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이스탄불에서 지내던 요 며칠 동안 매일 바다를 봐왔었는데 이곳의 바다는 조금 다른것이

 

이스탄불의 바다는 늘 시멘트와 맞닿아 있었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모래나 작은 돌들 혹은 절벽과 맞닿아 있다.

 

이스탄불의 바다가 있는 풍경도 충분히 멋지고 운치 있지만

 

이렇게 꾸미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적당한 일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완벽한 성형미인일 지라도

 

조금은 부족한 자연미인의 아름다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다.

 

 

 

 

이스탄불에서 보는 바다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이스탄불에서 샤프란볼루까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전체적으로

 

약간은 황량한 느낌이었다.

 

가끔씩 산들과 마을들이 나타나고 몇 군데 작은 도시들도 거쳤었는데

 

이런 것들을 그야말로 가끔씩이고

 

대부분 작은 언덕들과 구릉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늘 풍경의 끝에 크건 작건 간에 산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풍경 끝에 완만한 곡선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순전히 내 느낌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풍경은 산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이곳의 풍경은 아직은 마무리가 덜 된,

 

그래서 약간의 아쉬움과 공허함 그리고 황량함이 느껴지는 듯 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자란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풍경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메마른 황량함은 아니었다.

 

혹시 내가 가을이나 겨울에 그곳을 지나가서

 

그 언덕들과 구릉들이 갈색이거나 흙색 혹은 눈으로 덮여 온 통 흰색이었다면

 

분명히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절이 한창 봄의 절정으로 다가가는 시기여서

 

내가 본 풍경은 주로 초록색인데다가 가끔씩 수많은 들꽃들로 덮여 있기도 하고

 

한창 꽃들이 만개한 이름 모를 나무들도 군데 군데 서있었다.

 

하여 풍경은 황량하지만 마치 그 황량함을 봄의 색깔들이 적셔 주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스탄불에서 샤프란볼루까지 갈 때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의 모든 집들이 지붕에 빨간 기와를 얻고 있었다.

 

전통인지 아니면 기후나 환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모두 빨간 기와지붕을 하고 있으니

 

비록 집 자체가 단순한 사각형 형태로 별 재미 없더라도

 

함께 모여있으면 그것도 나름 데로 아기자기하고 예뻐 보였다.

 

거기다 중간 중간에 꽃이 만개한 나무들이라도 몇 그루 서있고

 

주변에 초록색 언덕이나 밭이 펼쳐져 있으면

 

그냥 그대로 한 장의 엽서 사진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샤프란볼루로 가는 동안

 

중간에 내려서 사진을 찍고 싶은 풍경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너무나 아쉬운 것이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차를 렌트해서 여행하는 사람들을 심각하게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런 그림 같은 풍경이 여섯 시간 내내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지겨울 만 하면 한번씩 이런 풍경이 나타나서 무료함을 달래주곤 하는 것이다.

 

혹시나 4월 말이나 5월 초쯤에 이스탄불에서 샤프란볼루로 갈 계획이 있는 사람들은

 

시간만 허락된다면 야간 이동보다는 주간 이동하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날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안타까웠던 것처럼

 

지나온 우리 삶 속에서도 머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스쳐간 시간들도 많고

 

함께 하고 싶었지만 잡을 수 없어서 스쳐간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잡을 수 없는 순간들, 잡을 수 없는 사람들

 

계속 스쳐가리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여 우리가 자주 하는 그 농담이

 

그저 지나가는 소리가 아닌 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있을 때 잘해!”라는 그 농담 말이다.

 

 

  

 

 

 "이스탄불"에서 "사프란볼루"로 갈때 사진이 없어 "사프란볼루"에서 "카파토키아" 가는길 휴계소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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