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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가르와 이스마엘/아브라함[1]/창세기 성조사[27]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22 조회수1,378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7. 하가르와 이스마엘  

 

이사악의 탄생은 아브라함 집안에 기쁨과 더불어 미묘한 긴장을 불러왔다. 사라와 하가르의 관계가 그랬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족보상 맏아들의 위치가 미묘한 갈등의 여지를 만들곤 했다. 족보를 중시한 이스라엘에서도 이는 아주 중요한 집안의 골칫거리일 수도 있었다. 웃음을 자아낸다는 이사악의 출생이 사라에게는, 어쩌면 하가르가 낳은 이스마엘을 향한 시샘으로 나타날 수도.

 

아기 이사악이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다. 그가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통상 아기가 세 살 정도가 되었을 때, 잔치를 베푼단다. 이는 사망률이 높은 아기의 위험한 첫 생애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라나. 우리의 백일이나 돌잔치와 흡사하리라. 아마 이때가 하가르가 낳은 이스마엘은 열일곱 여남은 살이 되었을 게다. 그러나 이사악의 형님인 그에게 잔치가 열렸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아예 성경에는 언급이 없다. 더구나 그 많은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세 살배기 동생처럼 아기로 불리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에서 어느 날 사라는 이집트 여자 하가르가 아브라함에게 낳아 준 이스마엘이 자기 아들 이사악과 함께 노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저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세요.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 이스마엘을 낳기 전의 하가르는 사라의 여종이었으나, 이제는 의연히 아브라함의 여종이다. 그래서 후처가 낳은 이스마엘이 본처인 자기가 낳은 이사악과 함께 있다는 게 시기가 나기도 했을 게다.

 

물론 저 애를 배었을 때 그녀에게 당한 수모를 생각만하면, 이스마엘이 자기가 낳은 아들을 업신여길 것으로 생각할 수도. 문제는 나이가 많아도 한참이나 많은 자신이 일찍 죽으면, 어쩌면 저 애가 공동상속자내지는 관습상 그가 맏이로 두 몫을 차지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사악이 이스마엘과 어울린다는 것은 사라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유다의 여러 전통에 의하면, ‘함께 논다.’는 것은 어쩜 상대를 적대적으로 다룬다.’는 의미인 박해로 해석하기도 했단다(갈라 4,29).

 

그러기에 사라는 저 모자를 내쫓으라는 거다. 후처의 애가를 본처의 자식과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없다는 투다. 그렇지만 생각해야 할 문제는 이스마엘이 동생 이사악에게 박해를 실제로 가했다거나 그런 감정을 가졌다는 구체적 내용은 없다. 더 큰 문제는 과연 사라가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그런 못된 시기심을 어떻게 모질게 가질 수 있고, 더구나 그들을 무참히 내쫓으려는 실로 그 잔인한 청을 감히 아브라함에게 할 수 있느냐는 거다. 우리는 이를 바오로 사도의 풀이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육에 따라 태어났고, 다른 하나는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약속의 결과로 태어났다’(갈라 4,22-23). 바오로는 이 두 아들에 관해서 비유로 설명(갈라 4,24-26 참조)한다. 육에 따라 난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소생이 된다는 것은, 옛 계약의 특징을 이루는 종살이를 계속함을 뜻한다. 반대로 약속의 결과로 난 이사악은 성령에 따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새 계약의 틀인 종살이에서 해방될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 즉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바오로는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불평한 것은 단순히 그녀의 질투내지는 시기에 찬 빈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위를 지닌 말씀으로 여겨지기에 의당 정당화 될 수가 있다는 거다. 그래서 자유의 몸인 사라는 육에 의한 게 아닌, 자유로 불린 아이를 낳았단다. 그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어, 우리가 얻게 되는 자유라나(갈라 5,1.13 참조). 그리스도는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요한 8,36)라고 하신 분이시기에.

 

그렇지만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도 자기 아들이므로 쫓아내는 일이 무척이나 언짢았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읽어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와 네 여종 때문에 언짢아하지 마라. 사라가 너에게 말하는 대로 다 들어 주어라.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그러나 네 여종 하가르의 아들도 네 자식이니, 내가 그도 큰 하나의 민족이 되게 하겠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빵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져다 하가르에게 주어 어깨에 메게 하고는, 그를 아기와 함께 내보냈다. 그가 하가르를 아기와 함께 내보냈다는 것은 그들을 내쫓으면서 복도 빌어 주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 같다. 더구나 이른 아침에 보내면서도 필요한 양식이라곤 하가르가 당나귀에 지고 가는 게 아닌, 겨우 어께에 메고 갈 정도였으니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의로운 그가 가축을 그렇게 많이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내보내면서도 그 정도밖에 주지 않는 것은 비인간적인 처사였다고도 여겨진다. 이를 두고 혹자는 내쫓기는 판에 그 귀찮은 가축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친절한 행동으로 보기도하고, 또 어떤 이는 하느님께서 그들을 잘 보호해 주시리라고 믿었기에 그렇게 했을 것이란다. 아무튼 애초에 아브라함이 그들을 내보내는 주된 이유는 사라와의 관계를 고려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지, 내쫓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을 게다.

 

그렇다. 그는 그들을 내보내는 것을 무척이나 언짢아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하느님의 개입이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사라의 청을 다 들어 주면, 이사악으로 하여금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라나. 더 중요한 것은 하가르의 아들 이스마엘도 네 자식이니, 그분께서 그도 하나의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해 주겠단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일러주시지 않았더라면 감히 그가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는 그들을 집밖으로 내팽개치지는 않았을 수도.

 

이렇게 쫓기다시피 길을 나선 하가르는 브에르 세바 광야에서 헤매게 되었다. 가죽 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그 여자는 아기를 덤불 밑으로 내던져 버리고는, 활 한 바탕 거리만큼 걸어가서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았다. ‘아기가 죽어 가는 꼴을 어찌 보랴!’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그는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하느님께서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다 큰 소년을 두고 성경은 여전히 아기란다. 그 이름 이스마엘로도 불리지 않는다. 그녀는 아들을 광야에 있는 덤불 밑으로 내던져 버리고는 죽어가는 모습을 마냥 지켜볼 정도로 처참했다. 하가르도 울고 이스마엘도 울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마엘의 우는 소리를 들으셨다. 목 놓아 통곡한 하가르의 울부짖음보다 죽어가는 아들의 울음을 그분께서는 들으신 거다. 이는 그분께서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자식이기에 보살피시면서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하느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가르를 부르며 말하였다. “하가르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저기에 있는 아이의 우는 목소리를 들으셨다. 일어나 가서 아들을 들어 올려 네 손으로 꼭 붙들어라.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런 다음 하느님께서는 하가르의 눈을 열어 주시니, 그녀가 우물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우고 아이에게 물을 먹였다. 하느님께서는 그 아이와 함께 계셨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기억하시는 분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갈망하면 오셔서 다독거리는 분이시기도. 이리하여 그들은 하느님의 보살핌으로 일상의 생활로 돌아갔다. 아브라함의 하느님은 쫓겨난 이스마엘과 함께 계시며, 도움을 주고 계속 강복하시어 그 후손을 번성하게 하신다.

 

이스마엘은 자라면서 광야에 살며 활잡이가 되었다. 성조들의 이야기에서 무기가 이렇게 언급되는 것은 이스마엘 이야기에서 처음 나오는 것 같다. 그는 브에르 세바 광야에서 친 광야를 거쳐 남쪽으로 내려가 파란 광야에서 살았는데, 그의 이집트 어머니 하가르는 아들에게 이집트 여자를 아내로 얻어 주었다. 이는 이스마엘 부족이 순수 이스라엘 민족이 아님을 은연중 나타내는 것일 게다.[계속]

 

[참조] : 이어서 '28.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계약'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하가르,이스마엘,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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