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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덤 속의 고해성사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18 조회수896 추천수12 반대(0) 신고
 

 무덤 속의 고해성사


             

 

군종신부로 일하던 시절,

성탄 판공성사를 주기 위해 성체를 가슴에 모시고

최전방 철책을 밤새 헉헉거리며 오르내리다 보면…

이것이 신부의 사명이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밤중에 산길을 대 여섯 시간씩 헤맸지만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하는 사람은 고작 열 명 내외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내 자신을 기쁘고 뿌듯하게  만드는지…

(어쩌면 그 병사는 신부가 주는 껌 한통에 더 큰 기쁨을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탄광 신부]로 부임하여 사 오십여 차례 갱 속을 드나들었지만,

갱 속에서 고해성사를 본 사람은 겨우 두 사람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탄광 신부]로서의 보람과 긍지를 그토록 크게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될 줄이야.


아직 앳된 젊은 신부요,

활활 끌어 오르는 정열과 자존심이 살아 있어 때론…

보이지 않는 곳,

알아주지 않는 곳,


교육과 문화의 빈민굴인 탄광촌에서 손과 발이 되어 줄 일꾼이 없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지만,

나의 존재를 느끼게 해 준 그 광부의 말을 기억할 때는

왠지 으스대고 싶어진다.


안내자의 소개로 악수를 하고 기도와 대화를 나눈 후

돌아서는 나를 붙잡고 어떤 광부가 고해성사를 청했을 때,

당연히 사제가 해야 할 일이고 해 오던 일이건만

생전 처음 듣는 소리처럼 당황했다.


나로 하여금 그 기억을 잊지 못하게 한 그 고해자의 첫마디였다.


"신부님, 무덤 속에서 고해성사를 보는 마음입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고 눈동자와 이빨만이 하얗게 보이는 그이 모습을,

머리에는 탄가루들이 쏟아지고 있는 그 깊은 채탄 막장에 묻혀

탄가루에 범벅이 된 그의 손과 곡괭이를 꽉 잡고,


나는 "오! 하느님, 여기에도 계시는군요!"


수없이 속으로 외쳐댔다.

그곳을 무덤이라 부르는 사람이 어디 이 한 사람뿐이랴?


내가 죽으면 나의 뼛가루를 갱 속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하고 싶도록,

내가 탄광에 연민의 정을 느끼고…

[탄광 사제]로서의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나의 마음을 일깨워 준

그 거룩한 삶의 고백자를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어느 갱 속에선가 땀을 흘리며 심한 노동에 지쳐있을 그 사람.

외로운 갱 속에서 탄 더미에 묻혀 죽어가는 동료들을 수없이 보아 온

그 사람의 마음속에…


아직도 하느님이 살아 계셔서 위로를 주시니

더욱 잊지 못할 것이다.


때때로 통회 없는 마음으로 고해성사에 임하는 사람의 고백을 들으면서,

또한 나 자신의 고해를 더욱 순수하게 바치고 싶은 마음에서,

나는 그가 한 표현대로 무덤 속의 고해성사를 자주 생각해 본다.


“그대여! 그대의 일터가 곧 그대의 무덤이 될지 모른다면,


   그대는 그곳에서 하던 일을 계속할 수가 있겠는가? “


 ▒ 김영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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