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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11 조회수1,407 추천수2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12월 11일 대림 제2주간 목요일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suffers violence,
and the violent are taking it by force.
(Mt.11.12)
 
 
제1독서 이사야 41,13-20
복음 마태오 11,11-15
 
 
몇 달 전, 새벽 묵상 글에도 썼던 것으로 기억되는데요. 서울 강남의 어느 성당으로 강의를 하러 여유 있게 2시간 전에 출발했다가 강의 시작 바로 전에야 간신히 도착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 강의를 하러 갈 때면 언제 출발해야 할지가 항상 저의 큰 고민입니다.

그저께 저는 또다시 강남의 모 본당으로 대림특강을 위해 가야만 했습니다. 서울 강남의 교통 상황은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요. 워낙 많이 막혀서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인지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제가 출발하는 시간이 퇴근 시간하고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몇 시에 출발해야 할지를 도대체 모르겠더군요.

결국 저는 몇 달 전의 기억도 있고 또한 사람들 퇴근 시간 때문에 막힐 것을 예상하면서, 아주 여유 있게 3시간 전에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왜 그런지요? 글쎄 길이 하나도 막히지 않아서, 출발한 지 1시간이 채 안되어서 목적지 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강의시간까지 2시간이나 남아서 근처의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지요.

정말로 사람 일이란 잘 모르겠더군요.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늦고 또 이 정도면 딱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일찍 도착하는 것을 보면서, 내 생각이 절대로 옳은 것만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내 생각이 옳다면서 사람들에게 힘주어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일까요? 그런데도 우리들은 내 생각을 어떻게든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과 다툼이 생깁니까? 이러한 상태에서 주님께서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시면서 보여주셨던 사랑을 따르기보다는 대신 미움과 판단과 단죄라는 폭력적인 모습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고도 하십니다. 이 폭력을 쓰는 자는 당시에 요한의 세례를 거절하고 하느님의 계획을 묵살했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고집했으며, 하느님까지도 자기들 생각대로 놀아주기를 바랐습니다. 잘못된 것은 하느님의 탓으로 돌리고 잘된 것은 자기들 공로로 돌렸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폭력을 쓰고 있으며, 이들의 폭력에 의해서 하늘나라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도 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모습을 따르고 있습니다. 내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항상 자기 공로만을 드러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하느님 안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내 안의 한 부분 정도로만 생각하는 아주 작은 분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 역시 지금 하늘나라에 폭행을 하는 폭력을 쓰는 자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그 모습에서 당연히 벗어나야 합니다. 즉, 이제는 이기심과 욕심으로 폭력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로 하늘나라를 완성하는데 일조를 담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바로 대림을 사는 마음가짐이 아닐까요? 귀 있는 사람은 들어야 합니다.



 



나는 당신 머릿속의 지식이 아니라 당신의 친절한 마음씨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다.(W.H.데이비스)




못생긴 톨스토이를 아시나요?(‘좋은생각’ 중에서)
 
러시아에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소년은 자라면서 자신의 못생긴 외모에 심한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었다. 너무 넓은 코와 두터운 입술, 작은 눈과 긴 팔다리를 볼 때마다 그렇게 태어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친구들은 그의 외모를 보고 놀려 대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점점 소심해지고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다. 외모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절망한 그는 신에게 자신의 소원을 들어 달라며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신이 있다면 저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소서. 외모를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시면 제 모든 것을 바쳐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

날마다 자기 전에 이렇게 기도했지만 소년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성장하면서 자신이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점점 문학에 대한 천재적인 소질을 발휘하기 시작한 그는 어느 날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 온 ‘외모 콤플렉스’를 단숨에 해결할 만한 답을 얻었다.

그는 말했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 이웃에 대한 사랑과 깨끗한 인격이 모여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이를 깨닫게 된 그는 더 이상 외모 때문에 고민하지 않았다. 이 소년이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다. 사람들은 그를 역사에 길이 남을 작가로 기억할 뿐 아무도 ‘못생긴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신은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 이상의 재능을 주었다고 한다. 혹시 자신에게 콤플렉스나 열등감이 있다면 재능이 있는 다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여 최고가 되어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저 당신을 최고의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다.


Birth of St John the Baptist
 
 Heart to Heart  -  Ernesto Cortaz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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