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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1-19 조회수482 추천수5 반대(0) 신고

230119. 연중 제2주간 목요일.

 

“당신을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마르 3,12)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전해들은 이들이 온 유다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곳에서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십니다. 그들이 치유를 받고자 몰려왔지만, 예수님의 참 모습을 알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악령들은 예수님을 보기만 하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마르 3,11)라고 외쳐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마르 3,12 참조)
 
사실, <마르코복음> 곳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에게 뿐만 아니라, 치유 받은 이들과 제자들에게도 함구령을 내리시며 당신의 신원을 장막으로 가리십니다.
 
왜 일까요? 당신이 메시아임을 세상에 드높이 선포해야 함이 마땅할 터인데도, 오히려 당신의 신원을 꼭꼭 감추십니다. 심지어는 당신의 가르침마저도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마르 4,12)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야훼 하느님께서도 파라오를 마음이 완고하게 하셨고,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서는 “백성의 마음을 무디게 하고~ 돌아와 치유되는 일이 없게 하여라.”(이사 6,10)라고도 하셨습니다.
 
대체 왜 이처럼 알리지 못하게 할까요? 그것은 ‘때’가 아닌 까닭이었습니다. 곧 당신의 참된 모습이 드러날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이 가려져 있어, 아직 예수님의 진면목(참된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르코 복음>은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르 1,1)이라는 말로 시작되지만,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진실한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는 곳은 엄밀한 의미에서 딱 한 군데 밖에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바로 ‘그때 그곳’에서 비로소 예수님께서 함구령을 내린 그 신원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인가?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때’ 입니다. 그때, 마침내 십자가 아래에서 백인대장은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 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를 관상할 때라야 신앙의 눈이 열리고, 비로소 당신을 참되게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성전을 가리고 있던 휘장이 찢어지면서, 그 비밀의 신비가 드러납니다. 곧 성전을 가리고 있던 휘장이 찢어지듯, 우리 자신이 만들어 놓은 우상의 하느님이 부서지고서야, 비로소 예수님의 진면목(참된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보고서야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미사 중에, 그분의 찢어진 살과 피를 마시며, 그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아드님 우리 주님을 관상할 수 있는 은총을 구합시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당신을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마르 3,12)
 
주님!
저의 무지를 깨우쳐주소서.
당신의 참된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을 열어주소서.
완고함의 장막을 부수고 진정한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십자가에서 드러내신 당신의 신비를 따라 살며
당신 십자가에 저를 매달고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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