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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19 조회수482 추천수3 반대(0) 신고

230319. 사순 제 4주일.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요한 9,37)
 

오늘은 사순 4 주일이며, 기쁨주일 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참된 기쁨이 어디로부터 오는 지를 밝혀줍니다. 곧 참된 기쁨은 ‘빛을 보는 데서 온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을 말해주기에, 기쁨은 ‘빛이신 주님을 아는 데서 온다.’는 것을 밝혀줍니다.
 
우리는 모두 눈을 지니고 있고, 눈으로 타인과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바라본다고 해서 모두 제대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당달봉사가 있는가 하면, 눈을 감고도 볼 수 있는 심미안이 있고, 보아도 보여 지는 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이 보는 대로만 고집하는 편견이 있습니다.
 
<제1독서>는 눈이 빛나는 다윗이 선별되는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은 말합니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제2독서>는 빛의 자녀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이야기입니다. 바오로는 에페소인들에게 말합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리라.”(에페 5,8-14)
 
그리고 <복음>은 태생소경이 눈을 뜨고 빛을 보는 이야기 입니다. 제자들은 태생소경이 보지 못하는 것이 자신의 죄든, 부모의 죄든, 죄 탓인지를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이 그에게서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이다.”(요한 9,3)
 
그렇습니다. 그에게서 하느님의 일이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소경인 그는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인류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곧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대변해 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가 눈을 뜨게 되는가? 그에게 빛이 생기게 되는가?
 
그는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묻혀 진흙에 개어서 자신의 눈에 바르며,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요한 9,7)하신 말씀대로 했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도 못했지만, 말씀에 순명하여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보다 앞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당신의 침을 묻힌 진흙을 눈에 발라 주었습니다. 진흙으로 빚어진 그의 살이 예수님의 신성과 결합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도유된 것입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친히 소경의 눈을 만지시고, 그의 가슴 속에 당신의 빛을 부어주시어 그가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는 남들처럼 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도 보게 되었습니다. 소경은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혹 우리는 예수님을 보고도 아직 눈 먼 존재로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본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우리 가정, 우리 공동체를 주님을 계시하는 장소로 알아 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실을 떠난 저 높은 곳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의 신학자라 불리는 보나벤뚜라는 인간에게는 3중의 눈이 있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육신의 눈과 지성의 눈과 관조의 눈이 그것이다. 인간은 육신의 눈으로써 세계와 그 안에 있는 것을 보고, 정신의 눈으로써 영혼과 그 안에 있는 것을 보며, 관조의 눈으로써 하느님과 하느님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본다. 그리하여 인간은 육신의 눈으로써 인간 밖에 있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지성의 눈으로써 인간 안에 있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관조의 눈으로써 인간 위의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소경이었다가 ‘눈을 뜬 이’에게 말합니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요한 9,37)
 
분명, 우리는 이미 그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면, 곧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면, 완고하여 보고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분명, 여전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혹 나는 지금 빛이 아니라 어둠을 보고 있지는 않는지요?
 
혹 자신에게서나 타인에게서 어둠이 보인다면, 얼른 그 어둠을 비추고 있는 빛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는 이미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빛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빛을 향하여 있어야 할 일입니다. 세상과 모든 이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일, 바로 이것이 “기쁨주일”인 오늘 우리가 누리는 참된 기쁨일 것입니다. 빛이 어둠을 몰아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장면에서, 바리사이들이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1).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요한 9,37)

주님!
분명, 이미 당신을 보았습니다.
보고도 아직 보지 못함은 완고하여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여전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항상 저를 향하여 계신 사랑입니다.

하오니, 빛을 보게 하소서. 당신 사랑을 보게 하소서. 당신을 보게 하소서. 나의 주님!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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