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과 매일 복음 묵상 - 원죄 없으신 성모 잉태 대축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08 조회수898 추천수7 반대(0) 신고

 

 

 

 

원죄 없으신 성모 잉태 축일 - 순종은 믿음이고 사랑이고 깨끗함이다

 

 

 

 

 무더운 어느 날, 중앙아프리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날씨는 무덥고 바람 한 점 없어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한국인 선교사 부부는 그때 커다란 나무그늘에서 필립이라는 어린 소년이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아버지가 급하게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필립아. 아빠가 시키는 대로 배를 땅바닥에 대고 엎드려라.”

필립은 그 말에 즉시 순종하며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이리 빨리 기어와라.”

그러자 소년은 자기 손과 발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빨리 기었습니다. 그가 아버지가 서 있는 곳의 절반쯤 왔을 때에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좋아. 이제 일어서서 뛰어와라.”

필립은 재빨리 일어나서 아버지께 달려갔습니다.

“필립아. 뒤로 돌아 나무를 한 번 쳐다보아라.”

그는 돌아서서 자기가 놀던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가 돌아보니 그가 놀고 있던 나뭇가지에는 커다란 뱀이 가느다란 긴 혀를 내밀고는 달려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있을 수 있는 평범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아들이 아버지의 요구에 “왜?”라는 토를 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무엇을 시키든 아들은 그저 따를 뿐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자신에게 나쁜 것을 시킬 리가 없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절대적 순종은 상대를 향한 믿음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오늘 제 1 독서에선 아담과 하와가 죄에 떨어지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하지말라’는 것은 금지된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뱀은 하와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왜 그건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 그리고는 ‘눈이 밝아져 하느님처럼 되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하느님께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아담은 하와가 건네는 열매에 이젠 그것을 ‘왜’ 먹지 말아야 하는지도 망각한 채 그냥 먹어버리고 맙니다. 하와가 먼저 죄를 지었지만 더 쉽게 죄에 빠졌던 것은 아담입니다.

첫 두 조상의 죄는 육체를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영혼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죄에 오염되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부모로부터 받는 것이기에 그 육체를 통하여 전달되는 죄가 ‘원죄’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사도는 그의 편지에서 여러 번 ‘육체를 따라 살면 죽음이 오고 영을 따라 살면 생명이 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 2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기 이전에 이미 하느님께서 인간이 죄에 떨어질 것을 아셨기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를 따르는 모든 이들의 죄를 깨끗이 씻어 줄 것을 계획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께는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 계획은 이미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기 전에 세워졌던 것입니다.

사제가 미사 때 성혈이 든 잔을 들고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나의 피니라.” 라고 말합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성자께서 육체를 취하시어 인간의 죗값을 치르려는 계획이 하느님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들에게 육체를 줄 어머니가 있어야하는데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라면 이미 육체가 죄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세상 창조 이전에 우리를 뽑으신 것처럼 세상 창조 이전에 당신 아들에게 육체를 주시기 위해 죄에 물들지 않게 보존되어진 한 여자가 있었어야 하는데 그 분이 바로 마리아인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제 육체를 준비해 놓았으니 세상에 내려가 죗값을 치르는 고통을 당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율법의 희생제물과 봉헌물을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를 참 제물로 받으시려고 한 몸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예, 성서에 저에 대해 기록된 대로 당신의 뜻을 이루려 제가 갑니다.'"” (히브 10,5-7)

이는 아담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버지께 불순종 했던 것을 보속하기 위한 두 번째 아담의 완전한 순종입니다. 그 분은 하느님인 당신이 왜 인간을 대신해 사람이 되어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묻지 않습니다. 그저 아버지가 하라니 하는 것입니다. 그 순종으로 아담의 불순종이 씻겼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모든 죄는 씻깁니다. 그러나 만약 마리아가 성자께 당신의 몸을 주기를 거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상 창조 때부터 계획되어 온 모든 구원 계획이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라도 인간에게 무엇을 강요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강요하지 않는 것이고 자유는 하느님도 건들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원죄가 없으셔서 지성이 완전히 열려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어 당해야 하는 고통을 이미 온전히 아시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사람이 되어서 당해야 하는 고통을 다 알면서도 ‘예!’ 했던 것처럼, 성모님께도 모든 고통을 보여주시고 그래도 육체를 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만약 그 고통을 보여주시지도 않고 육체를 청하셨다면 그것은 일종의 사기가 되기 때문에 그 초대는 옳지 않는 것입니다.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의 종이 받아야 하는 고통과 그를 완전히 사랑해 한 몸이 된 두 번째 하와가 되는 어머니의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성모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로써 두 번째 하와도 첫 번째 하와의 불순종을 순종으로 기워 갚습니다.

첫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이 불신이고 무관심이고 죄이고 ‘더러움’이었다면, 이 두 분의 순종이 바로 믿음이고 사랑이고 죄를 없앰이고 ‘깨끗함’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의 깨끗함은 이 순종으로 증명이 된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이 ‘겸손한 순종’을 가장 중요한 덕으로 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만으로 죄가 왔고 겸손으로 죄가 씻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신교 신자들이 어떻게 한 인간이 원죄가 없느냐고 묻는다면 성경에 쓰인 말씀을 통해서 말해주면 됩니다. 성모송 앞부분의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만 외워주면 끝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그들은 죄 때문에 성령님의 은총을 잃게 되었다는 것과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주님과 함께 있지 못하게 되었음을 잘 압니다. 그러나 천사의 인사를 보십시오. 성모님은 성령의 은총으로 충만하시고 하느님과 함께 계십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 에덴동산에서 누리던 은총을 나타냅니다. 원죄가 있고서야 어떻게 천사가 이런 인사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 나름대로 한국 교회의 수호자 성모님의 ‘원죄 없으심’에 대해 설명해 보았습니다.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결국 우리 신앙의 모델이 누구인지도 명확해 졌으리라 기대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