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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뒤에"그분이 계시다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08 조회수655 추천수9 반대(0) 신고
 
 
 

 

우리나라 전체 농지의 43%가 외지인이 수요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외지인 소유 농지를 63%의 소작농이 경작하고 있다고 한다.
1996년 농지법이 개정되면서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자격기준이 대폭 완화되었고,
이 때문에 실제로 경작하지 않는 사람도 농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쌀 직불금 부당수령 문제의 근본원인은 여기에 있다.
실제 농사도 짓지 않는 부재지주에게 직불금이 돌아가고
정작 그 농지를 경작하는 소작농은 아무런 소득 보전을 받지 못한 것이다.
땅 갖고 투기하는 것만큼 하느님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짓도 없다.
땅 만큼은 모든 사람이 같이 살도록 주신 것인데 사람들은 그걸로 장난치고 있다.
“유가환급제도”도 마찬가지다.
소득기준이 지난해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현재 고소득자인 의사, 변호사까지도 24만원이라는 공돈을 받게 되었다.

문제의 근본원인은 따로 두고
“직불금 부당수령자 중에 국회의원도 있다더라,
의사 변호사도 유가 환급금을 받았다더라” 하는
기가 막힌 코메디 프로그램은 TV 속에서나 있어야 된다.
한심한 정치꾼들은 조금도 일고의 가치가 없는 말싸움 놀이나 즐기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서러울 뿐이다.

회개는 문제의 근본원인을 파고 드는 것이다.
고백성사는 “주일미사를 빠졌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하느님을 무시했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다.
“이웃을 미워했습니다”하고 무덤덤하게 내 뱉는 것이 아니라,
“제가 옹졸했습니다. 너무 제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하고 실토하는 것이다.
토양이 부실하고 벌레가 들끓어서 나무가 죽고 있는데,
“잎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하면서 곁가지만 치는 것은 나무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더 죽이는 행동이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렇게 고발한다.
“정녕 낮은 자부터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정한 이득만 챙긴다.
예언자부터 사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거짓을 행하고 있다.
그들은 내 백성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다루면서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롭다, 평화롭다!’ 하고 말한다.”
우리도 혹시, 회개할 것이 있는데도 “괜찮다, 괜찮다!” 하는 것은 아닐까?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정승을 태우고 가는 당나귀가 사람들이 정승을 보고 절하니까
당나귀는 자기에게 절하는 줄 알고 우쭐거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기가 먼저 시작하고 앞서 있지만 주인공은 “내 뒤에 있다”는 요한의 말은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근본이 어디에 있고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그대로 따르는 사람이라야 할 수 있는 말이다.
내가 먼저 와서 멋진 길을 닦아 놓았는데 그 길로 다른 사람이 지나가면서
“내가 닦은 길이오! 내가 닦은 길이오!” 한다면 인정하고 싶을까?
낙타 털 옷에 가죽 띠를 메고, 메뚜기나 들꿀만 먹고 사는 고행을 하면서 사람들을 모아 놓았는데
“진짜는 내가 아니고 이분이시다.” 하고 자기 제자들을 넘겨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요한은 회개를 가르치고 요구한 것만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실천한 사람이다.
죄를 뉘우치고 눈물을 흘리는 것만이 회개가 아니다.
살아가는 모습을 바꾸는 것이 참된 회개다.
근본 원인을 파헤치고 그것을 변경하는 것이다.

오늘을 인권주일로 지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고유하고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도 우리 나라에 살고 있다면 국적은 달라도 우리 국민과 동등한 정도의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두 아들이 있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 몫으로 돌아올 유산을 주십시오.”
아버지는 두 말 않고 작은 아들에게 유산을 주었다.
작은 아들은 그 돈을 갖고 가서 온갖 호화로운 생활과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큰 아들은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자기한테는 유산으로 돌아올 몫을 안주고 일만 시키는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주시겠지 기다리며,
그런 생각이 들수록 아버지께 잘 보이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지만
아버지는 전혀 그런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점점 화가 치밀었다.

“저 놈한텐 돈을 주고 왜 나는 안 주는 거야!
그리고 왜 아버지는 동생놈이 저렇게 방탕한 생활을 하는데도 찾아가서 꾸짖지 않는 거야! 우리 아버지 또라이 아냐?”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또 다르게 생각한다.
“아냐, 나까지 아버지 마음을 상하게 할 순 없지.
그러면 아버지가 쓰러질지도 몰라. 동생도 언젠가는 반성하고 뉘우칠거야.
지금 내가 나서서 집안에 풍파를 일으킬 필요는 없어. 그냥 나만 마음 삭이고 살면 돼!”

여기서 근본 문제는 죽지도 않은 사람에게 유산을 나누어 달라고 강짜를 부린 작은 아들과
그 요구를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고 퍼준 아버지에게 있다.
그런데 큰 아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동생을 찾아가서 “네 행동은 너무 잘못된 것이다. 패륜이다.
빨리 아버지께 사과하고 돌아와라”하고 꾸중했어야 했다.
그치만 동생의 평소의 못된 속아지를 잘 알고,
또 어떤 행패를 부릴지 몰라 꾹 참고만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께도 찾아가서 따져야 했다.
“왜 아버지는 돌아가시기도 전에 유산을 나누어주는 해괴 망칙한 일을 저질렀습니까?
그리고 일단 그럴려고 하셨다면 왜 저한테는 유산을 나누어주지 않습니까?
저에게도 유산을 나누어 주십시오.
하지만 근본 문제는 돌가시기도 전에 유산을 나누어준 아버지의 처사가

동생을 방탕하게 만들고 있고, 제 마음도 욕심으로 불타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바루어 주십시오!” 하고 요구 했어야 했다.
동생과 싸우기 싫어서, 또 싸우면 야박하고 욕심 많은 동생에게 말로써는 이길 재간이 없을거 같아서,
그리고 자기도 괜히 욕심 많은 사람처럼 보이는게 싫어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두고 천사 같다느니, 정말 듬직하고 착하다느니 하면서 살아왔는데
자기도 동생과 전혀 다름 없는 욕심쟁이인 것이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폭군처럼 여기고 미워했다는 것을 숨기고 있었는데
그걸 드러내는 것이 너무 낮 뜨거워서 덮어두고 산 것이 큰 아들의 문제였다.
맨 나중에 큰 아들은 자기 아버지께 대한 속마음을 기어코 드러내고 만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누가 종이라고 했나?)
아버지를 섬기며(정말 그렇게 인자한 아버지가 그러라고 했을까?)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아버지가 지독한 폭군이란 말인가?).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그렇다면 스스로 달라고 한 적은 있었던가?).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그게 부러웠던 건 아니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이런 마음으로 지냈다는 것을 벌써 이야기했어야 했다.
그런데 근본 문제는 덮어두고 속 앓이만 하며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살아온 것이 큰 아들의 문제였다.
차라리 동생처럼 제 욕심을 마음껏 드러내고 갈데 까지 가보고
거기서 정말 뼈져린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아버지 앞에서 “저를 종으로라도 써 주십시오”하고 실토한 작은 아들이 참된 회개를 한 것이다.

근본 문제를 피하지 말고 마주 대하고,
칼날처럼 파고 들어가는 날카로운 자기반성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
정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피해가려 하는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신자로서, 성직자로서, 가장으로서, 엄마로서, 책임질 줄 아는 성숙한 성인으로서,
나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이고, 훈련해 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으면서
회피하며 살았던 것을 반성해야 한다.
“내 뒤에”, 즉 요한이 먼저 와서 예수님보다 앞에 있지만 본질은 요한이 아니었고,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 곧 예수님이 요한 뒤에 “오셨다.”
근본을 알고 본질을 사는 것이 요한이 보여주었던 모습이고 예수님이 살았던 모습이다.
그것이 요한이 외치고 예수님도 외치신 회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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