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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 12.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07 조회수657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12.7. 대림 제2주일(인권주일)                                
이사40,1-5.9-11 2베드3,8-14 마르1,1-8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주님 오실 날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광야에 본격적으로 주님의 길을 닦아야 하는
대림 2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정도 주님의 길을 닦으셨습니까?
 
광야는 어디 밖에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이, 우리 마음이 광야입니다.
 
이 삶의 광야에, 마음의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는 대림시기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길을 닦는 것이 어찌 대림시기에만 국한 되겠습니까?

평생 인생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여기서 벗어날 자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수도복을 입고 수도원에 살아서만 수도자가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들
예외 없이 주님의 길을 닦는 ‘평생 수도자(修道者)’들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우리가 닦는 이 주님의 길을 통해서 오십니다.

수도원 정문에서 수도원 주차장까지
똑바로 난 넓고 긴 길이 상징하는 바, 바로 주님의 길입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아 이 길을 따라 수도원에 오고
주님도 방문하십니다.
 
이 길이 없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답답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 삶의 광야에는, 마음의 광야에는 이런 길이 있습니까?
 

주님의 길을 닦는 것은 평생 작업입니다.
계속 가꾸고 돌보고 닦지 않으면
온갖 잡초 우거진 잡초 밭이 되어 마침내 길도 사라집니다.
 
주님의 길을 잃어 버렸다는 것은
바로 삶의 중심을, 삶의 의미를, 삶의 목표와 방향을
잃어 버렸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주님의 길을 잃어버려
또 길 닦기를 포기해 절망에 방황입니다.
 
그러니 말 그대로 ‘살기위해’ 주님의 길을 닦아야 합니다.
주님의 길을 닦는 것, 우리 삶의 모두입니다.
 
주님의 길을 닦는 평생여정의 우리 삶입니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대림 2주일,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이자
오늘의 강론 주제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주님의 길을 닦습니까?
이 시간 주님의 길을 닦는 구체적 삶의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끊임없는 회개의 삶입니다.

옛 죄에서 벗어나 하느님께로 방향을 전환하는 회개입니다.
회개할 때 열리기 시작하는 주님의 길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인 세례자 요한,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구체적 후속조치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합니다.
 
하여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모두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으므로 주님의 길을 닦습니다.
 
몇몇 사람이 아닌 전 주민들의 회개는
바로 공동회개의 축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개인회개도 좋지만 공동회개는 더욱 좋습니다.
 
매일의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를 통해
함께 회개하고 용서 받으니
주님의 길을 닦는 데 공동전례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이사야의 다음 시적 표현들 역시 구체적 회개의 실천을 뜻합니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들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빈부의 골짜기, 남북 간 골짜기,
영호남 간 골짜기, 지역 간 골짜기,
계급 간 골짜기 등 모든 골짜기들은 사랑의 나눔으로 메워지고,
교만의 산과 언덕들은 겸손으로 모두 낮아지며,
탐욕으로 거칠어진 마음은 온유의 평야가 되는
구체적 회개의 실행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런 모든 골짜기들이
사라진 유토피아 공동체를 목표로 하는 우리 수도공동체입니다.
 
동녘에 환히 떠오르는 빛나는 태양처럼,
회개의 실행으로 낮아진 이런 공동체의 지평선 위에
환히 밝아오는 주님의 영광이요 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입니다.

철저히 회개한 자만이 회개를 촉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이 회개의 모범입니다.
 
그의 단순 소박한 고행의 풍모가
그의 회개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보여줍니다.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 꿀을 먹고 살았다.’

회개의 가장 믿을 만한 표지이자 열매는 겸손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회개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그의 겸손이 감동적입니다.
 
“나보다 더 큰 이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위의 세례자 요한의 고백을 통해
새삼 주님의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회개의 겸손이 있을 때
비로소 참 자기를 발견함을 깨닫습니다.
 
중요한 건 한 번이나 몇 번의 회개가 아닌 평생 끊임없는 회개입니다.
 
이래야 주님의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주님의 길을 닦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끊임없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삶입니다.

주님의 길을 닦아가는 도반들에게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삶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삭막한 광야시대,
많은 사람들이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은
충고와 조언보다는 위로와 격려, 평화입니다.
 
두려움과 불안,
갖가지 마음의 상처로 약해진 이들 얼마나 많습니까?
 
이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위로와 평화를 얻고자
하느님의 집인 여기 수도원을 찾는 것입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이사야 서두 말씀이 신선한 감동이었습니다.
저 역시 이 말씀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위로하시는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위로를 체험해야 진정 이웃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빠진 값싼 동정이나 연민의,
순전히 인간적인 위로는 별로 도움이 못됩니다.
 
다음 고린도후서 말씀을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합시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이시며
  모든 위로의 근원이 되시는 하느님으로서
  우리가 어떤 환난을 당하더라도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와 같이 하느님의 위로를 받는 우리는
  온갖 환난을 당하는 다른 사람들을 또한 위로해 줄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가 그리도 고마운 것입니다.
 
공동회개에 공동용서의 은총을 받는 동시에
하느님의 무한한 위로와 평화를 받아 영육이 치유되어
새롭게 살아나는 은총의 공동전례시간입니다.
 
이렇게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하느님의 무한한 위로와 평화를 받아
그대로 이 하느님의 위로와 평화를 이웃과 나누는 것,
아마 이보다 더 좋은 복음 선포도 없을 것입니다.


셋째, 끊임없이 주님을 기다리는 삶입니다.

주님의 길을 닦는 것은 평생과정입니다.
무한한 인내와 기다림을 요구합니다.

깨어 기도하며 주님을 기다리는 삶입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긴 것 같으나 짧은 인생이요 짧은 것 같으나 긴 인생,
참고 깨어 기다리며
꾸준히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일화처럼
주님의 길을 닦는 것이 지혜입니다.

인내의 대가이신 하느님의 인내를 본받는 것입니다.
 
위로의 하느님이자 기다림의 하느님이십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며
우리를 위하여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부족함과 나약함에 좌절함이 없이
매일 새날을 주시며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참 재미있는 게 우리를 기다리는 주님이시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라는 것입니다.

새삼 하느님과 우리들,
보통 관계가 아닌 서로를 깊이 갈망하는 관계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고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그분의 언약에 따라,
우리는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립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주님을,
새 하늘과 새 땅의 주님 성탄을 기다리는 희망이
우리를 깨어있게 하고 항구히 주님의 길을 닦게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삶의 광야, 마음의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는데 항구하도록 합시다.
 
구체적으로 끊임없는 회개의 삶이요,
서로를 위로하는 삶이요, 주님을 기다리는 삶입니다.
 
우리는 이런 삶을 살면서
주님의 길을 닦도록 불림을 받았으니
거룩하고 신심 깊게 살면서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성탄의 주님 앞에 나설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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