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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홍성남 신부님 / 제28회 용서해야 하는 이유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1 조회수1,371 추천수2 반대(0) 신고

홍성남 신부의 행복한 신앙


 



제28회 용서해야 하는 이유


안녕하십니까? 지난주에는 용서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다섯 가지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오늘도 용서에 대해서 두 번째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용서하기가 어려운데 그래도 용서를 해야 되는 이유가 뭔가? 누구를 위해 용서해야 되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용서를 해야 되는 겁니다. 제가 상담 사례 하나 읽어 드리고 이분에 대한 이야기를 또 하면서 왜 우리가 남을 용서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드릴게요.

 

제목이 '우리 부모님은 성당에 다닐 자격이 없습니다'

부모님은 결혼하기 전에 저를 가지셨고 저를 낳자마자 아버지라는 사람은 저를 버리고 어머니가 저를 혼자 키웠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역시 저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3살 때부터 20살까지 할머니와 어렵게 살았습니다. 아버지와 엄마는 각자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요. 그런데 먼저 엄마가 이혼을 하고 또 할머니에게 찾아왔습니다. 전 도저히 엄마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다. 엄마 역시 미안해 하기는커녕 할머니 돈만 쓰고 가정을 돌볼 생각을 안 했습니다. 더군다나 재작년에는 아버지마저 이혼을 하고 엄마와 제게 찾아왔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죠. 혼자 살면 되지 왜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결국 저는 학업도  포기하고 집근처의 대도시에 가서 지금까지 일을 하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할머니 생신이어서 집에 찾아갔더니 엄마 아빠가 성당에서 영세를 했다고 합니다. 원래 외할머니가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엄마 아빠 같은 사람을 하느님이 품어줄 수 있는지, 어떻게 자기 자식을 버린 사람들이 당당히 성당에 나갈 수 있는지, 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영세를 허락해 준 신부님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그들의 죄를 사해주실 수 있지만 제가 아직 부모님을 용서하지 못하는데 그들이 성당에 다니고 있으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저희 부모님 같은 사람도 정당하게 하느님의 자식이 될 수 있는지요? 제가 용서 하지 않았음에도 부모님의 죄가 다 씻기는 건지요? 정말 억울하고 속상합니다.●

 

평화방송에 올라왔던 상담글이었거든요. 철없는 부모를 만난 거죠.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은 이 삼각형 안에서 발생한다고 그래요.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갈등, 아니면 신자들과 본당 신부님과의 갈등, 신자들과 수녀님과의 갈등, 수도원에서 수도자들과의 갈등, 직장 안에서의 갈등 이 모든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여기서 벗어나는 문제는 하나도 없어요. 전부 여기서 발생하는 거죠.

 

그러니까 상담을 할 때 처음에는 뭐 누구하고 싸웠어요. 누구하고 힘들었어요. 들어주다가 나중에는 시간이 점점 지나가면서 나중에 부모님을 물어봐요. 부모하고 어떻게 지냈는지, 성장 과정이 어땠는지. 거의 다 답이 이 안(부 - 모 - 자식)에 있습니다.

 

이 자매는 20대인데요. 아빠도 용서 못 하고 엄마도 용서 못 한다. 문제의 부모라는 거죠. 이 문제의 부모를 왜 성당에서 왜 받아주고 영세를 왜 줬냐고 화를 내고 있어요. 하느님께도 화를 내고 있어요. 신부에게도 화를 내고 있어요. 받아준 교회도 미워요. 이렇게 다 용서가 안 되는 거예요. 부모님뿐만이 아니라 교회도 용서가 안 되고, 신부도 용서가 안 되고 하느님도 용서가 안 돼요. 내가 용서 안 했는데 누가 용서해 주겠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이 처녀가 갖고 있는 문제가 뭐죠? 용서를 안 하고 있어요.


 

1. 용서를 안 하면 발생하는 문제 : 신체적 질환

 

문제가 뭐가 발생했을까요? 첫째 이 딸이 부모를 용서하지 않은 거는 제일 먼저 발생하는 거는 신체적인 질환이에요.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마음 안에 분노를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 분노라는 거는 화 덩어리입니다. 화가 나면 가슴이 뜨끈뜨끈하죠. 화가 났는데 추워지는 사람은 없어요. 화가 나면 몸이 열받는고 그러죠. 뚜껑이 열린다고 그러죠. 사람이 화가 나면 머리 뚜껑이 열릴 것 같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이 아프죠. 그게 화라고 하는 감정의 에너지 때문에 그래요.


 

얘가 화가 나면 신체의 여러 부위를 공격을 해 대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부모를 생각할 때마다 화를 낸다고 그러면 이 화라는 에너지가 내 몸 안에서 돌아다닌다는 거죠. 그럼 누가 화상을 입어요? 본인이 입는 거예요. 용서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분노를 이렇게 밖으로 표출시키는 행위이거든요. 그런데 그거를 하지 않고 그냥 '용서 못 해!' 하는 거는 분노를 내가 끌어 안고 있겠다는 건대. 그거 끌어안고 있으면 다치는 건 자기예요.

 

 

이 분노가 이 자매의 가장 취약한 신체 부분을 계속 공격을 한단 말이죠. 그래서 화가 나 있으면 밥도 못 먹고 온몸이 막 쑤시고, 아프고 그런 이유가 이 분노라는 에너지가 공격을 해서 그렇다고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건강이 일단 안 좋아져요. 계속 부모를 미워하게 되면 나중에 암에 걸린 확률도 굉장히 높다고 합니다. '나'라는 존재를 낳아 준 근본적인 원인을 미워하게 되면, 원인을 미워하면 그 결과물도 같이 망가지게 돼 있거든요. 


 

2. 용서를 안 하면 발생하는 문제 : 심리적 문제 발생

 

두 번째는 심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부모 얘기만 나오면 막 화를 내요. 그럼 누가 이 처녀하고 대화를 하려고 그러겠어요. 만약에 여러분들하고 제가 만났어요. 그런데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부모님들이 고생 많이 하셨고, 자식들을 위해서 희생하셨고 그러는데 한 분이 나서 가지고 '우리 아버지는 안 그랬다'라고 막 화를 내면은 그 사람하고 무슨 대화를 할 수 있겠어요.

 

 

그 사람이 막 화를 내면 사람들이 '저 자매가 참 상처가 많은가 보다' 그렇게 생각할까요, 아니면 '저년이 저렇게 성질이 더럽지?' 그렇게 생각할까요? 당연히 성격이 안 좋다고 생각하겠죠. 심리적으로 용서를 못 하게 되면 자기 마음이 심리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모든 감정들이 어느 정도 바란스를 잡아야 되는데 이게 무너져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나오는 말도 고운 말이 안 나오고, 행동도 거친 행동을 하게 되고 그렇다는 것이죠.

 

 

3.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행위는 내 머리 속에서 그 상대방을 몰아내는 행위이다

 

세 번째는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행위는 내 머릿속에서 그 상대방을 몰아내는 행위입니다. 자, 사람의 머리가 있어요. 만약에 내가 누구를 용서를 못 해요. 예를 들어서 곗돈을 부었는데 계주가 돈을 갖고 도망갔어요. 그 여자 생각만 하기만 하면 막 화가 나 죽겠어요. 내 머릿속에 내가 있을까요, 그 여자가 있을까요? 이게 계주가 들어가 있어요. 이 사람이 내 머릿속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거예요.

 

 

나는 내가 그 여자한테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능동적 주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이에요. 내가 화를 내고 있는 동안에는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사람이 내 안에, 내 머릿속에 들어와서 나를 좌지우지하죠. 그래서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용서 못 할 이유를 만들면 만들수록 나는 그 사람의 노예가 돼 가는 거예요. 이게 역설적인 얘기죠.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아, 저 사람 용서 못 해! 나 저 사람에 대해서 화가 안 풀렸어!'라고 얘기하면서 마치 자기가 선택한 것처럼 하는데, 실상은 선택은 본인이 하는데 그다음에 나오는 결과는 정 반대라는 거죠. 내 앞에 있지도 않은 이 사람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가지고 주인 노릇을 하는.

 

 

어떤 주인 노릇을 하죠? 밥을 못 먹게 해요. 직장도 못 나가게 하고, 병에 걸리게 만들어요. 얘가 주인 노릇을 다 하는 거예요. 쫓아내는 방법이 뭘까요? 용서예요. 그러니까 용서는 우리가 용서한다고 그러면 막 부드럽게 안아주고 뭐 이렇게 '내가 너를 이해해!' 이런 억지 춘향 같은 거를 생각하는데, 그거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내 머리통 속에서 그 사람을 몰아내는 행위가 용서예요. 나가라고, 나가라고. 이게 용서란 말이죠.

 

 

4. 용서를 안 하면 발생하는 문제 : 일상 생활을 못 한다

 

네 번째 일상생활을 못 합니다. 사람이 밥 먹고 배설을 하고, 일을 하고, 잠자고, 사람 만나고 하는 이런 하루의 일상 중의 삶에 대해서 우리는 '아, 지루하다'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일상생활이라는 게 사람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이 정신병자냐, 아니냐 하는 것을 판단하는 기준 중에 하나가 이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느냐, 못 하느냐를 보는 겁니다.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은 직장 생활을 못 하죠. 그런데 우울증 조금 있는 사람은 직장 생활을 해요.

 

 

그래서 건강한 사람, 신경증이 있는 사람, 정신병인 사람 이렇게 구분을 짓는 겁니다. 건강한 사람과 약간 신경증이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일상생활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하는데, 정신병이 있는 사람은 못 한다는 거죠. 내가 계속해서 용서를 못 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내가 직장 생활을 못 해요. 또는 운전하다 사고를 내요. 들이 박고. 어떤 때는 걸어가다가 자기가 넘어져 다쳐요. '아, 내가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그러는데 내가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으면, 용서를 하지 못하게 되면 앞이 잘 안 보여요. 그래서 내가 아주 심하게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잘 다쳐요. 잘 다치고 손해도 많이 봅니다. 일상생활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5. 파괴적인 인생을 살기 때문에 결국 인생 실패자가 된다

 

다섯 번째 파괴적인 인생을 살기 때문에 결국 인생 실패자가 된다는 게 가장 큰 거예요. 그냥 시간만 나면 바락바락 화를 내면, 아드님 두신 분? 아드님이 만약에 이런 처녀를 데려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끔찍하죠. 이게 그냥 상담으로 설명하니까 아, 불쌍하다. 뭐 부모를 못 만나 가지고 애처롭다. 그러는데 이런 처녀가 우리 집 며느리로 들어온다고 그러면 절대로 못 받아 준단 말이에요. 이게 상담 대상자일 때 하고 내 식구가 되는 거 하고 전혀 다른 문제죠.

 

이 처녀가 자기는 지금 막 억울해요. 그래서 막 얘기를 하는데 사실은 그렇게 얘기할 때는 속이 시원할지 모르

지만 그러고 있는 자기를 받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죠. 아, 시집에 들어와 가지고 시부모를 들이받을 게 뻔한데, 자기 부모한테 쌓인 감정이 그게 바로 시부모한테 전이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못 받아준단 말이에요. 이게 현실이에요.

 

직장 생활도 그렇지요.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로 상사를 들이받고 그럴 수도 있으니까 직장에서도 '야 이게 뭔가? 아닌 거 같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안 받는단 말이에요. 참 어떻게 보면 이 자매는 부모 때문에 불쌍한 인생을 살게 됐는데 조금 더 추가로 말씀드리면 부모가 있지만 부모가 부모 노릇을 못하면 그 아이는 심리적인 고아가 됩니다. 

 

3살 때부터 20살까지 부모가 없었단 말이죠. 그럼 그 아이가 자기 인생을 살아가면서 설계를 하는 거를 누구한테 얘기를 들었을까요? 할머니한테, 아니면 할머니가 말 못 해주면 자기 혼자 어떻게든 꾸몄을 거란 말이죠. 애가 쪼물딱거리면서 만들면 얼마나 잘 만들겠어요? 이게 자기 인생도 힘들게 살아온 데다가 분노는 쌓이고, 그러니까 철없는 부모를 만나 가지고 아주 가장 큰 희생자가 된 그런 케이스인 거죠.


어쨌건 이 처녀가 그래도 자기가 괜찮은 남자 만나고, 좋은 집에 시집가고, 좋은 직장 생활을 하려면 어쨌건 부모를 용서해서 자기 마음에서 밀어내야 돼요. 부모 인생은 부모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라고 분리시켜야 되는데, 계속해서 부모에 대해서 용서를 못 한다고 그러면 부모하고 나하고 붙어있는 관계예요. 붙어 있으면 닮아가요. 그게 가장 큰 문제라는 거죠.

 

 

■ 용서를 잘 하려면 뭘 해야 되는가? : 자기 용서를 할 줄 알아야 된다

그러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를 잘 하려면 뭘 해야 되는가? 내가 남을 잘 용서하려면 자기 용서부터 할 줄 알아야 돼요. 이게 저희 신자분들한테는 참 어려운 주제예요.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는 그런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내가 나를 용서한다고 그러면 왠지 합리화를 시키는 거 같고, 남을 기만하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첫 강의 때도 제가 이런 그림을 그렸는데, 나는 이렇게 세 방향으로 관계를 맺고 있어요. 나와 너, 나와 나, 나와 하느님. 내가 나와 맺는 관계,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나와 너의 관계, 여기서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단 말이죠. 그런데 결정적으로 나한테 영향을 주는 거는 부모라고 그랬습니다. 이 부모님이 나를 갖다가 나한테 용서해 주는 그런 학습을 시켰어요.

 

그러면 나는 나에 대해서 용서를 해 주기가 쉬워요. 자기 용서. 자기 자신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들이 다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줄 압니다. 이웃을 용서할 줄 안다. 이게 하나의 흐름이란 말이죠. 부모님이 나한테 관대하면 내가 나한테 관대하고, 내가 그리고 남에게 관대하다는 거죠.

 

그런데 보통 우리가 배운 것은 부모님이 나한테 따뜻하게 해 주면 나도 남에게 따뜻하게 해 준다고 그러는데 중간 부분을 뺀 거죠. 심리학에서는 이 중간에서 내가 나를 어떻게 하는가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적이 없다. 그런 분들도 그래도 내가 나를 용서하는 훈련을 하면 남을 용서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죠. 자기 훈련이라고 하는데, 자기가 자기를 용서하는 거를 많이 해야 된다는 건대요.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천당, 연옥, 지옥

내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우리가 알고 있는 내세에는 천당, 연옥, 지옥 이렇게 구분하고 있지요. 여러분들 죽으면 어디 갈 거 같아요? 지금 죽으면 천당, 연옥, 지옥 중에서 천당으로 바로 가실 분? 아, 바로 가실 거 같아요? 바로 가야죠가 아니라 나는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천당과 연옥과 지옥입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것은 천당은 죄 없는 사람이 가는 곳, 연옥은 죄지은 사람들이 죄를 씻고 가는 곳, 지옥은 아주 대죄를 지은 사람들이 가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글쎄 그런 신학적인 개념과 다르게 심리학에서도 천당, 연옥, 지옥을 얘기합니다.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천당, 연옥, 지옥은 어떻게 설명했냐 하면, 엄마한테 잘못한 아이에다 비유를 해요. 아이가 엄마가 소중히 여기는 그릇을 깼어요. 겁나죠. 그럴 때 아, 겁은 나지만 그래도 엄마가 이해해 줄 거야, 용서해 줄 거야,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녀석이 있어요. 그게 천당이다. 자기 용서를 잘 하면 돼요. 아, 내가 그동안에 크게 잘못한 거 없으니까, 엄마가 날 받아 줄 거야. 자기 용서하는 거죠. 그런 애들은 집으로 들어가요. 천당이 뭐예요? 하느님의 집이죠. 하느님의 집은 곧 내 집이에요. 왜냐? 하느님은 날 보고 아들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소유권이 똑같이 있는 거란 말이죠. 내 집에 내가 들어가는 게 천당이라는 거죠.

 

이 구원이라는 개념도 어떤 때는 좀 구원 개념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옛날에 있던 집을 다시 돌아가는 것이 그게 이렇게 천당 가는 건대, 구원은 마치 이렇게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집을 들어가기 위해서 애쓰는 그런 개념으로 자꾸 들려 가지고 구원 개념이 잘못하면 의붓자식 개념으로 연장되거든요. 그런 경향이 있어서, 자기 용서를 잘하는 사람들은 천당 가요.

 

그런데 애가 아, 내가 이걸 깼어. 엄마가 속상해할 거야. 아, 내가 이거 바로 들어가기는 뻔뻔스러워 밖에 나가 가지고 내가 알바를 해서라도 이 그릇 값을 조금이라도 모아서 들어가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집에 안 들어가고 밖에 나가서 주유소에 가 가지고 기름 넣고 이제 애가 그렇게 했어요. 그게 연옥이라는 거죠. 자기가 막 속상해하는 거예요. 힘들어하고, 자책하고. 그래 이거는 자기 용서가 완전히 되지 않고 반쪽 용서가 돼요.

 

지옥은 뭐죠? 우리 엄마가 나 같은 거 용서할 리가 없어. 가출해 버립니다. 집을 떠나 가지고 깡통 하나 들고서 이제 동네방네 다니면서 아기 거지가 되는 거죠. 이 세 가지 중에서 누가 가장 그 엄마 속을 썩이는 겁니까? 집에 그냥 뻔뻔스럽게 들어간 놈일까요? 아르바이트한 놈일까요? 아니면 나가서 동냥하는 놈일까요? 동냥하는 놈이죠. 그래서 자기 용서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자기 용서는 자기 기만도 아니고, 이웃을 기만하는 것도 아니고, 합리화도 아니고, 자기 용서라는 것은 내가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런 자기 용서, 자기를 관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마음이 편해요. 그래서 딴 사람들에게도 용서를 할 줄 안단 말이죠. 그것이 자기 용서를 잘 해야지 남을 용서를 잘 할 수 있다는 이런 훈련을 하시는 게 중요한대, 가톨릭 신자분들은 지나치게 자기를 용서 못 하는 그런 게 있어요.

 

 내가 나를 용서를 잘 하는지 아는 방법

내가 나를 용서를 잘 하는지 못하는지 그거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고해성사 보고 난 다음에 왠지 고백을 다 한 거 같지 않고 찜찜하다 그러면 자기 용서가 안 된 거예요. 하느님하고 신부가 용서해도 나는 날 용서 못 해. 그러면 계속 찝찝해요. 그래서 딴 데 가서 고해성사 한 번 더 봐야 돼요. 그런데 거기 신부가 보속을 또 조금 밖에 안 줬어. 그러면 또 찝찝하니까 딴 데 가야지. 그래서 고해소 순례를 하고 있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거는 병적인 콤플렉스입니다. 신앙이 아니고. 구분을 하셔야 된다는 것이죠.

 

두 번째 시간도 용서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용서가 안 되는 이유 다섯 가지는 지난번에 말씀드렸고, 용서하기 어려운 데도 그럼에도 용서를 해야 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해야 된다는 설명을 드렸습니다. 짧은 시간이었는데 들으실 만했어요? 그럼 다음 주에도 용서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을 드려야만 되는데 다음 주 시작할 때 용서에 대한 마지막 부분을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홍성남 신부님, 용서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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