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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은 고래를 위해 기도해보기는 생전 처음이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24 조회수481 추천수4 반대(0) 신고

    죽은 고래를 위해 기도해보기는 생전 처음이네 
        장명수 해변을 걷다 발견한 숭어와 고래새끼의 시체를 보며 갖는 상념
      



▲ 밀물 무렵의 '장명수(충남 태안읍)' 해변 풍경  
ⓒ 지요하

오후에 '장명수' 해변을 걷다 보면 밀물 때 밀물을 타고 이동해 온 숭어들이 물 밖으로 힘차게 뛰어오르는 것을 쉽게 보곤 한다. 그런 숭어들의 도약을 볼 때마다 야릇한 전율을 느낀다. 순간적인 장면이지만 참으로 보기 좋다. 미끈한 숭어의 몸체도 보기 좋지만, 물 위로 뛰어오르는 동작은 그야말로 생명의 약동 그 자체이다.

밀물이 도도하게 해변을 점령해 올 때는 해변 끝의 바윗돌 위에 앉아 어느덧 '평정'이 이룩된 호수 같은 풍경을 보며 특유의 평화로움에 취하기도 한다. 밀물의 일사불란한 움직임도, 평정 다음의 잔잔한 평화도 그것 자체가 위대하고도 엄청난 생명력임을 실감한다. 저 잔잔한 물속이나 물밑 갯바닥에서는 지금 또 어떤 움직임들이, 신비한 작용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자연에 대한 외경심이기도 한 궁금증을 안고 바다를 바라보며 숭어가 뛰어오르는 장면을 기다리기도 한다. 물을 박차고 잔잔한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숭어를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정말 이상한 마음이요, 감흥이다. 숭어의 뛰어오름이, 그 순간적인 돌출이 오히려 바다의 고요함과 평화를 더욱 고조시킨다는 것은 정녕 사랑스러운 역설이다.

언젠가 한번은 해변 끝 후미진 곳의 수문(水門) 앞 웅덩이에 갇혀 있는 큼지막한 숭어들을 보았다. 어른 팔뚝만 한 크기의 숭어들이 여러 마리나 웅덩이의 뿌연 흙탕물 안에서 느릿느릿 유영을 하고 있었다.


▲ 장명수 해변 끝 수문 앞 웅덩이 개펄물에서 노닐고 있는 숭어들  
ⓒ 지요하

나는 수문 위에서 수문 앞 웅덩이의 가장자리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곤 하는 숭어들의 완만한 유영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면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긴장과 감동을 삼켰다. 밀물 때였지만 밀물이 이 수문에까지 닿으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터였다. 수문 밑으로는 수문 안쪽의 수로와 연결되는 통로가 있을 테지만, 숭어들이 수문 앞 웅덩이에 계속 머무르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종종 수문 앞에 설치되어 있는 그물을 보는 때도 있고, 수문 위에서 투망질을 하는 사람을 보는 때도 있다. 트럭이 와서 한참씩 수문 근처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 수문 위에서 그물을 던지면 웅덩이의 숭어들은 꼼짝없이 잡히고 말 터였다. 나는 그 숭어들이 무사하기를 빌었다. 누군가가 와서 투망을 던지기 전에 밀물이 닿아서 숭어들이 너른 평정의 바다에서 물 위로 솟구쳐 오르는 동작들을 계속하기를 정말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러며 나도 모르게 묵주를 쥔 손으로 성호를 그었다. 다음 순간 내가 성호를 그은 사실을 알아차리고 혼자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내가 숭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다니! 그러고 보니, 내가 숭어를 위해서도 기도를 한 것은 평생 처음이네!' 절로 그런 생각이 떠올라서 더욱 웃음이 나왔다.

며칠 전에는 해변을 걷다가 모래톱 위에 숭어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내 팔뚝만 한 크기의 숭어였다. 나는 발을 멈추고 죽은 숭어를 보며 여러 가지 의문을 가져보았다.

누군가가 잡은 숭어를 버렸거나 흘린 것은 결코 아닐 터였다. 애써 잡은 숭어를 그렇게 갯바닥에 버릴 이상한 사람은 없을 터이고, 큼지막한 숭어를 흘리고 갈 멍청한 사람도 없을 터였다.

아무래도 숭어의 뛰어오르는 습성 때문일 듯싶었다. 밀물과 함께 다시금 반가운 지역으로 들어온 것이 좋아서 숭어가 너무 열심히 뛰어오르기를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 끝까지 유영을 한 다음 힘껏 솟구쳐 올랐는데, 숭어가 떨어진 곳은 물 밖 갯바닥. 그 갯바닥 위에서 파닥거리다가 끝내 물로 다시 들어가지 못한 것이 거의 분명해 보였다.


▲ 밀물 때 물 끝에서 뛰어오르기를 잘못해 죽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숭어 한 마리  
ⓒ 지요하

숭어 시체가 지금 놓여 있는 지점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저만치 안쪽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 다음 죽은 숭어가 여기까지 밀물에 떠밀려 온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혀를 찼다. '녀석아, 물 위로 뛰어오르는 습성을 어지간히만 발휘할 것이지 이게 뭐냐. 실력 발휘를 너무 열심히 한 바람에 이렇게 된 게 아니냐. 한 번의 실수가 이렇게 치명적이었다니, 너무 안타깝다. 정도에 지나치면 낭패를 겪거나 목숨까지 잃고 마는 그 이치가 숭어인 너한테도 해당되었구나. 쯔쯔….'

그리고 나는 또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만일 밀물 끝에서 너무 힘차게 뛰어오른 탓에 물 밖 갯바닥에 떨어진 숭어를 그 순간 바로 코앞에서 목도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큼지막한 숭어 한 마리를 거저 얻은 것을 재수 좋은 일로 여기며 서둘러 집에 가져갔을까? 숭어는 별로 맛 좋은 생선은 아니지만, 싱싱한 놈을 회로 먹으면 일미이니, 동생도 생각하면서 집에 가져갔을까?

나는 혼자 고개를 저었다. 숭어가 이미 숨이 멎어 있는 경우라면(또 선도가 괜찮은 상태라면) 집에 가져갔겠지만, 방금 물 밖으로 나와 파닥거리는 상황이었다면 십중팔구는 물에 넣어 살려주었을 거야. 물론 자신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10분쯤 더 걸어 목적지인 근흥면 안기리 산모롱이 앞 해변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이번에는 조약돌이 깔린 지점에서 고래새끼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다. 너무도 뜻밖이어서 고래새끼 시체를 발견하는 순간 나는 가슴이 쿵하는 묘한 충격을 맛보았다.

고래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그 고래새끼가 무슨 고래인지는 알 수 없었다. 60㎝ 정도의 크기로 보아 새끼 고래인 것은 분명했다. 시체의 상태로 보아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지만, 갈매기 짓인지 까치 짓인지 배 아랫부분에 구멍이 뚫리고 내장을 파먹은 흔적이 역력했다.

이 녀석은 무슨 연유로 목숨을 잃고 여기에 누워 있는 것일까? 나는 또다시 당연한 의문 때문에 그곳을 이내 떠날 수 없었다. 의문은 의문을 낳는 법이었다.


▲ 이 새끼 고래는 무슨 연유로 죽어 장명수 해변에 누워 있는 걸까.  
ⓒ 지요하

이 녀석도 숭어처럼 밀물 끝에서 물 위로 뛰어오르기를 한 것일까? 솟구쳐 올랐다가 물 밖 갯바닥에 떨어진 탓에 다시 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일까? 겁도 없이 물 끝까지 유영을 해온 다음 밀물을 믿은 나머지 갯바닥에 몸을 얹고 태평하게 밀물을 기다리다가 변을 당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물에 걸려 죽은 것을 어부가 그물에서 떼어내어 바다에 버린 바람에 여기까지 밀물에 떠밀려 온 것일까?

그런데 새끼인 게 분명하니, 이 녀석에게는 어미가 있지 않을까? 고래는 어미와 새끼가 함께 생활하는 동물이라는데, 이 녀석이 어미와는 어떻게 헤어지게 되었을까? 고래새끼는 어미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하니, 이 녀석이 어미를 멀리에 두고 스스로 물 끝까지 오지는 않았을 거야. 그런 녀석을 어미가 가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거야.

그렇다면 저 깊은 물 속에서 그물에 걸려 죽은 것이 거의 분명해. 그렇다면 그물에 걸려 죽는 새끼를 어미가 보고 있지 않았을까? 원래는 육상 동물이었다가 바다로 들어가 살게 된 고래는 알이 아닌 새끼를 낳고, 또 새끼를 젖을 먹여 키우며, 모성애가 매우 강하다는데, 그물에 걸려 죽는 새끼를 보면서 어미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 그물의 존재를 아는 탓에 함부로 어쩌지는 못하며, 얼마나 안타깝고 애절한 마음이었을까?

얼마 전에 서해상에서 밍크고래가 그물에 걸리고, 또 돌고래들이 그물에 걸려 죽었다는 보도를 보았는데, 혹 어미를 잃은 새끼는 아닐까? 어미를 잃은 나머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어미를 찾아 정처없이 바다를 헤매다가 그물에 걸렸거나 물 밖으로 나왔거나 해서 죽게 된 것은 아닐까?

이윽고 고래새끼의 시체가 있는 곳을 떠나 해변을 되돌아오면서도 나는 내내 고래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묵주기도를 했다. 묵주기도를 하면서도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면서도 묵주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오랜 습관 덕이기도 할 터였다.

결국 고래들을 위해 기도를 한 셈이었다. 분명하게 지향을 두고 기도를 한 것은 아니지만, 줄곧 고래 생각을 하면서 묵주기도를 했으니 고래들을 위해 기도를 한 셈이기도 할 터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내가 고래를 위해서도 기도하네. 고래를 위해서 기도를 해보기는 생전 처음이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기도를 계속했다.

내가 거의 매일 걷기 운동을 하는 장명수 해변에서 또다시 숭어나 고래새끼 시체를 보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 소망을 확실하게 가슴에 안았다. 그 소망을 안고 기도를 했으니, 결국은 고래를 포함하여 하느님께서 빚으신 대자연의 모든 생명들을 위해서 기도를 한 셈이기도 할 터였다.


▲ 고래에 대한 지식이 없어 무슨 고래인지는 모르지만 새끼고래 사체인 것은 분명하다.  
ⓒ 지요하


  2007-04-24 11:1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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