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딸아이에게 '성년의 날' 축하를 했습니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22 조회수481 추천수4 반대(0) 신고

                  딸아이에게 '성년의 날' 축하를 했습니다

   

     


▲ 고교 졸업식 때는 막내 이모도 와서 축하해 주었다.  
ⓒ 지요하

어제, 21일은 5월 셋째 월요일로 '성년(成年)의 날'이었다. 1973년부터 시작되었으니, 성년의 날도 30년 이상의 연륜을 지닌 셈이다.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6615호)에 의거, 처음에는 4월 20일을 성년의 날로 정했다가 1975년에 5월 6일로 변경을 했고 1985년에 다시 5월 셋째 월요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짊어질 성인(成人)이 되었음을 일깨우며 자부심과 책임의식을 부여하는 날'로 전국 각지에서 '기념식/성년식/전통 성년례'가 열린다.

서울 큰이모 집에서 기숙하며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딸아이가 올해 만 스무 살이니, 어제 성년의 날은 딸아이의 날이기도 했다. 집에 와 있다면 축하하는 뜻으로 조촐한 가족 행사라도 가질 터인데, 아침부터 괜히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었다.

녀석을 가족과 떨어져 살게 하는 것이 또 한번 미안해지는 마음 때문에 녀석에게 별도 용돈을 좀 보내줄 생각을 했다. 점심식사 자리에서 어머니께 그 얘기를 했다. 10만원 정도 보내줄 생각이라고 말씀드리니 어머니는 내게 10만원을 주시면서 20만원을 보내주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20이라는 숫자가 더 좋을 것 같어"하시는 어머니 말에 함께 웃었다.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 우선 '성년의 날' 축하를 한 다음 할머니와 아빠의 선물 얘기를 했다. 곧 은행에 가서 현금 선물을 보낼 테니 아껴 쓰라고 했다. 혹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자축 자리를 갖게 되더라도 과잉 지출은 하지 말라는 말도….

녀석은 성년의 날 아빠의 전화는 예상을 했지만 용돈 선물은 뜻밖이라고 했다. 할머니 선물은 더욱 예상 밖이라고 하면서, 조금은 감격한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했다. 할머니께 고마운 뜻을 전해 드려 달라는 부탁도….


▲ 대학교 입학미사에 참례하여 영성체를 하고...녀석은 '가톨릭 동아리' 활동에도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 지요하

오후에 은행에 가서 녀석의 통장에 돈을 넣어주면서 할머니와 아빠에게 고마워한 녀석의 목소리를 다시 떠올렸다. 녀석의 목소리는 유난히 맑고 생기가 있다. 녀석의 그런 목소리는 부모와 할머니에게도 색다른 기쁨을 준다.

귀에 어려 있는 녀석의 목소리에 다시 한번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내가 오히려 더 녀석에게 고마워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녀석이 고마웠다. 녀석을 생각하면 참으로 고마운 일들이 많다.

태어나서부터 이제까지 잔병치레 한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도 고맙고, 반듯하게 자라준 것도 고맙다. 실내 유모차에 누워 젖병을 물고 눈망울을 돌릴 때부터 아이에게 아빠의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뇌리에 새겨주려 한 아빠 의도에 부응하듯이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준 것도 고맙다.

내가 마흔 나이에 결혼한 다음 정확히 열 달 만에 얻은 아이였다. 의심과 오해의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던 주변 사람들에게 아빠의 '능력'을 확인시켜 준 아이였다. 일찍부터 이웃 어른들로부터 총명하다는 말과 함께 기특하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 집을 가든지 얌전히 앉아 책을 읽고 있어서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라는 말을 듣곤 했다.

유치원 시절부터 평일미사(저녁미사)에 꼭 가는 것으로 알았다.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재미있는 만화영화를 보다가도 "성당 가자"하면 냉큼 일어서곤 했다. 아이에게서 한 번도 "싫어요"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초등학교 5년 시절부터 평일미사 오르간 반주를 시작했다. 중학교 졸업 때까지 5년 동안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평일미사에 가서 오르간 반주를 전담했다. 주일미사도 한 달씩 아침미사와 저녁미사를 바꾸어 반주 봉사를 했는데, 주일미사 세 번 모두 봉사를 한 적들도 있다.

녀석은 학원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러고도 중2 시절에는 한 번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녀석은 1등에 집착하지 않았다. 1등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성적이 좀 떨어져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녀석은 고교 시절 객지에서 혼자 자취를 했다. 오로지 학교 공부만을 하면서도, 학원 공부도 하는 우수한 아이들 속에서도 별로 강박감을 갖지 않았다. 주일에는 반드시 성당엘 갔고, 학생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대학입시 준비에 목을 매고 살아야 하는 고교 시절에도 녀석은 책을 외면하지 않았다. 자율학습 시간에 학과 공부 대신 책을 읽었다. 고2 시절에는 교장 수녀님에게 들켜 꾸중을 듣기도 했다. "너는 왜 공부는 하지 않고 책을 읽느냐"는 교장 수녀님의 책망에 녀석은 "앞으로 책 읽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지금 많이 읽으려고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자율학습 시간에 <로마인 이야기> 12권을 완독하기도 했다.

녀석은 오로지 대학입시에만 목을 매고 사는 친구들을 안쓰러워했고, 명문대 진학률이 최고 목표 가치인 교육 풍토를 개탄하기도 했다. 명문대 진학이 거의 확실한 머리 좋은 일부 아이들의 천박한 가치관과 빈곤한 사리분별력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 대학교 입학식 때의 긴장한 표정  
ⓒ 지요하

언제부턴가 우리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녀석은 "우리 역사에는 반성적 공간이 별로 없다"는 말을 했고, 반성적 공간을 넓히며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로 사학과를 택해 대학 진학을 했다.

올해 대학 2학년이 되면서 성년을 맞은 녀석의 앞날에는 많은 과제들이 놓여 있다. 참으로 무겁고도 어려운 과제들이다. 학문에 대한 욕구와 취업전선도 함께 가로놓이게 될 것이고, '수도 성소'에 대한 고민도 병행적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자신의 가치관과 사리분별력 때문에 갖게 되는 사회적 고민이나 '의식의 짐'도 녀석에게는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녀석은 '의식의 짐'을 신의 축복으로 여기지만, 대학생활 속에서 벌써부터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세상에 대한 폭넓은 식견과 함께 사회적 고민도 커져야 하는데, 일찍부터 취업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가로놓여서인지, 대학 캠퍼스에 지성적 고뇌와 낭만적인 멋 따위가 매우 빈약한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녀석은 다수보다는 소수의 외로움과 고달픔 쪽에 서 있다. 가령 캠퍼스 벤치에 누군가가 자신의 생물학적 갈증만을 해결하고 빈 물병을 그대로 놓고 갔을 때, 그리고 수많은 학생들이 벤치 앞을 오가며 그것을 무심히 보는 그 '무의식'의 상황에서, 녀석은 그 빈 물병을 느끼고 발견하는 쪽에, 더 나아가 빈 물병을 치우는 쪽에 다가서 있다(한사코 그 쪽에 서려고 노력하는 태도다).

나는 녀석의 그런 태도와 습성을 잘 느낀다. 그리고 녀석이 자신의 그런 습성 때문에 세상을 조금은 어렵게 살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확실한 예견이기도 하고 연민이기도 하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녀석을 위해 기도한다. 현실적인 성취나 물리적인 안위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다. 무릇 의식의 짐이나 소수의 외로움과 고달픔이 신의 축복일진대 기꺼이 껴안고 나아가기를 바란다. 정녕코 그것들이 신의 축복이라면, 하느님께서 잘 키워주시고 돌보아주시기를 기원한다.

어제 '성년의 날'을 그냥 무심히 넘기지 않고 딸아이에게 축하 전화도 하고 선물도 했지만, 좀더 확실하고 의미 있는 성년 선물을 주고 싶어 오늘은 이런 글을 써보았다. 오늘 저녁에는 성년의 딸아이를 위해 하느님께 '축복미사'를 봉헌할 생각이고….


▲ 2006년 성탄 성야미사를 지내고 엄마와 함께  
ⓒ 지요하


  2007-05-22 10:30
ⓒ 2007 OhmyNews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