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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2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15,1-3.11ㄴ-3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14 조회수1,310 추천수1 반대(0) 신고

 

 

 

사순 제2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15,1-3.11ㄴ-32)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먹고 즐기자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루카15, 2. 21~24 참조)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부정한 자 혹은 율법과는 상관이 없는 자들로 여겨지던 사람들을 받아들이며그들과 함께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애초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한결 같이 거부하므로(루카14,18~20), 그들은 단 한 명도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루카14,24).

 

그래서 대신에 하느님 나라의 잔치와는 상관없이 보이는 사람들곧 세리와 죄인들이 그 잔치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당신 가르침 속에서 뿐만 아니라 죄인들과 세리들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과 식사를 즐기셨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자랑하는 율법과 거리가 먼 이들을 받아들이고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당시 종교 지도자였던 기득권 세력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일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 일을 서슴지 않고 강행하신 이유는 당신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사명을 분명히 아셨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선취하는 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루카14).

 

여기서 '받아들이고'로 번역된 '프로스데케타이'(prosdechetai; receives; welcomes)의 원형 '프로스데코마이'(prosdechomai)는 어떤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며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로마16,2; 필리2,29).

즉 '프로스데케타이'(prosdechetai)는 도움을 얻거나 존경하기 때문에 맞아들이는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대하실 때마치 유대인들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대하듯 하신 것이다.

경멸받으며 기피되던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파격적 행동은 당시의 사람들특히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해되지 못하였다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일컬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요먹보요 술꾼이라고 비아냥거린 것이다(루카7,34).

 

유대인에게 있어서 '함께 식사하는 행위'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같은 부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되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고또한 사람들 중에서도 경멸받는 사람이 되셨던 것이다(필리2,7).

하지만 잃어버린 자들인 세리들과 죄인들이 초청을 받아들여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자들이 분명하기에예수님의 이러한 태도는 당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루카 복음 15장 6절과 10절이 '잃은 한 마리 양의 비유'와 '잃은 은전 한 닢의 비유'의 결론이 되어서잃어버린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그가 하느님께로 돌아올 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이런 기쁨은 한 명의 죄인이라도 찾고 찾으시는 하느님의 끊임없는 사랑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발견할 때까지 찾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죄인들을 마침내 하느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 돌아온 죄인들로 말미암아 하늘에서는 반드시 놀라운 기쁨이 생겨난다.

루카 복음 15장 10절의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는 표현은 죄인의 회개가 하느님께 속한 천사들도 기뻐할 정도로 너무도 중요한 사건임을 나타낸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먹고 즐기자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루카15, 21~24 참조)

 

원문에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지 않고 '휘오스 수'(hyos su; your son) 즉 '당신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이제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주인으로 인식하고 부르고 있는 것을 드러내 준다.

아들에게 있어 그의 아버지는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다회개하고 돌아온 아들의 자의식(自意識속에는 아버지가 주인(主人)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어서'라고 표현되는 '타퀴'(tachy; quickly)라는 부사로서 응답하신다.

'재빨리','신속하게'로 시작되는 이 말에는 아들을 일분일초라도 더 빨리 깨끗하게 단장하여 집으로 맞아들이려는 부성애(夫性愛)가 녹아 있다.

 

한편,''이라고 번역된 '스톨렌'(stolen; robe)은 발까지 내려오는 남자용의 헐렁한 겉옷을 말한다이런 류의 옷들은 주로 왕들과 사제들과 높은 지위의 사람들만 입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존귀하게 여겨 이전에 그가 지녔던 아들로서의 권위와 품위와 지위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좋은'으로 번역된 '프로텐'(proten; best)이라는 단어가 잘 보여주는데그것은 '처음의', '첫째의'라는 의미로서 명사관사와 함께 쓰여 실제로나 생각에 있어 가장 완벽한 것을 의미한다과거에 그가 입었던 옷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옷을 말한다.

 

그리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에 해당하는 '도테 닥튈리온 에이스 텐 케이라 아우투' (dote daktyllion eis ten cheira autu; put a ring on his finger)에서 '가락지'('닥튈리온'; daktyllion; a ring)는 '손가락'을 뜻하는 '닥튈로스' (daktyllos)에서 유래했다.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손가락이나 가락지는 어떤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여기서 언급된 가락지도 아버지의 재산이나 권위를 이어받는 상속자로서의 자격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반지를 끼었다는 그 사실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권위를 아들에게 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에서 '신겨 주어라'에 해당하는 '휘포데마타'(hyodemata; shoes; sandals)는 '휘포데마'(hypodema)의 목적격 복수로 '발에 매는 것즉 '샌달'을 의미한다고대인들에게 신발은 자유인의 표시였다당시의 종들은 맨발로 생활하였고또한 손님이 집에 들어오면 신발을 벗게 되었기 때문에 집안에서 신발을 신는다는 것은 주인(主人)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버지가 신을 신도록 허락했다는 것은 종살이하던 먼나라에서 맨발로 돌아온 아들을 집을 나가기 전과 같이 여겨주었다는 것이다.

 

집안에서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상속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가락지도 손가락에 끼웠으며더군다나 아버지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주인만이 신을 수 있는 신발을 가져다가 신김으로써아들의 신분은 이제 집에서 나가기 전에 누렸던 상속자의 위치로 회복되었다작은 아들이 자신을 스스로 아버지의 종으로 생각한 것과는 정반대의 일이 순식간에 벌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살진 송아지'로 표기된 '톤 모스콘 톤 시튜톤'(ton moschon ton siteuton; the fattened calf)는 가장 귀한 손님이 오는 날에 잔치를 베풀기 위하여 준비해 둔 것이다.

이 송아지는 여러 마리 송아지 가운데 살이 가장 많이 오르고 기름이 흐르는 것으로서 귀한 손님이 올 경우에 잡으려고 특별히 양육해 왔던 송아지이다그것은 원문상으로도 '톤 모스콘'(ton moschon; the calf)로서 정관사 ''(ton; the)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잡아라'로 표기된 '튀사테'(thysate; kill it)의 원형인 '튀오'(thyo)가 동물을 도살하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로서 주로 희생제사에 관련된 것이기에 일단은 사람이 먹기 위해 송아지를 죽이는 의미가 있지만그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그 송아지는 어쩌면 죄를 지은 자신을 대신해서 죽는 희생적 의미가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 앞에서 송아지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 송아지가 죽는 저 자리에 죄를 지은 자신이 있어야 하며자신이 아버지와 하느님께 크나큰 죄를 지었음을 다시한번 생각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리라 보는 것이다.

 

이제 그래서 잃은 것의 회복과 그로 인한 주인의 기쁨이 '먹고 즐기자'에 해당하는 '파곤테스 유프란토멘'(pagontes eupranthomen; let's have feast and celebrate; let's eat and be merry)로 나타난다.

이처럼 하느님을 떠났다가 회개하고 다시 하느님의 자녀의 자리로 돌아온 자를 맞이하는 하느님의 기쁨이 바로 이런 잔치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이렇게 다시 정리되니 참 기쁘다.

무엇보다도 파렴치하고 몰염치한 죄인들인 우리 모두가 회개하고 아버지 하느님의 품에 돌아왔을 때하느님께로부터 이런 감당치 못할 자비를 영적으로 얻어 입었다는 사실에 대해 할 말을 잃게 된다.

그래서 이런 주님의 크신 용서와 자비로 표출되는 사랑에 대해 어떻게 사랑으로 보답해야 되겠는지를 깊이 그리고 심각하게 묵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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