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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75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17 조회수481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 11주간 수요일]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할 때에는 상에 머물지 말라는 뜻인 無住相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런 無住相에 대하여 의로움과 기도와 단식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계시지만 우리의 실생활의 전반에 걸쳐서 이런 無住相을 실천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고 말씀하셨으나 선거 때에는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전 국민에게 약속하고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인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실정이므로 왼손이 알더라도 자선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자비의 실천이 부족한 우리 사회이므로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이런 자선이라도 많이많이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을 일부 교회에서는 참으로 편리하게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름만대면 누구나 아는 어느 대형교회에 다니는 분과 얘기를 하던 중에 - 당시 그 교회 담임목사의 아들에 대한 부도덕한 행위를 고발한 방송이 나간 직후였습니다.- 그 분의 얘기는 자기 교회는 무척 많은 사회봉사를 하며 헌금은 거의 모두 사회봉사에 사용하지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오늘 복음을 따르고 있으므로 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비난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오른손이 쬐금 한 일을 과대 포장하여 선전하고 있으면서도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있다며 오늘 복음을 역으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단식을 하는 이유도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다이어트를 위해 단식하는 경우도 있고, 이슬람의 라마단 단식처럼 배고픔을 체험하여 단식으로 절약된 재물로 배고픈 자에게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서 단식하는 경우도 있으며 오늘 말씀하신 단식은 하느님께 대한 경배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자기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행하는 단식이 많이 있으므로 단식하는 목적이 이처럼 다르므로 어느 경우에나 오늘 말씀을 그대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하여 단식한 경우는 우리 역사에 많이 있지만 퇴계 이황 선생님의 11대 후손인 향산 이만도 선생님의 단식을 오늘 새롭게 다시 기억하고자 합니다.

향산 선생님은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69세의 나이로 24일간의 단식을 결행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일본군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고, 유림의 정신적 지주였던 퇴계 종택마저 불타 버리는 참상을 겪으면서 나라가 망한 상황에서 그 책임을 져야 할 양반이 숨을 쉬고 살아 있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치욕으로 생각하여 단식으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런 결심은 충효의 가치를 가장 중시한 유학자의 절개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느님께 충효를 다하는 신앙이고 유교는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고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이므로 섬기는 대상은 비록 다르지만 충을 다하지 못하여 나라를 빼앗긴 책임을 지고 자진할 것을 결심한 향산 선생님의 정신은 우리의 순교정신과 유사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향산 선생님의 단식 소식을 입수한 일본 경찰은 강제로 입에 미음을 집어넣으려고 시도 하였으나 “누가 감히 나를 설득하고 협박하려 하느냐”고 호통을 쳤다합니다. 퇴계 후손인 향산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어 안동의 많은 유림들은 거액의 독립자금을 희사하거나 만주로 이주하여 항일투쟁에 헌신하여 아마 전국에서 가장 많은 건국훈장을 받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선비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아쉬운 요즘이고 이런 단식은 숨어서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단식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봐야 하지만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경배하는 의미와는 다른 목적으로 단식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다를 경우에는 오늘 복음을 인용하며 단식을 하려면 아무도 모르게 단식하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 용산 참사 현장에서 단식 중인 우리의 사제 분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하여 오늘 복음을 인용하여 비난하는 분들이 없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생명을 이어가도록 엄청난 은혜를 베풀고 계시지만 단 한 번도 드러내 보인 적이 없습니다. 늘 없이 계시면서 저희를 지켜주고 계십니다. 우리도 이토록 그 무엇을 할 때에는 아빠 하느님이 하시는 것처럼 자신의 공과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마무리하여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없이 계시는 아빠 하느님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의로움을 행 하여라 하였습니다.
하지만 자비의 실천이 부족한 우리 사회를 생각하면
자신을 드러내고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도 많이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도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늘 복음을 인용하여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이를 반성하고
자비의 성령님이 늘 저희와 함께 하여 주시옵기를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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