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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사순 제2주일 2010년 2월 28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26 조회수481 추천수4 반대(0) 신고

사순 제2주일  2010년 2월 28일  


루가 9,28-36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제자 세 명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신 이야기였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그분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겪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믿게 되었는지를 알립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기도하신 것은 구약성서에 산은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달라진 것은 땅에서 사람들이 보던 그분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특별한 교감(交感)을 하면서 사셨다는 말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초기 신앙공동체가 예수님을 알아듣는 데에 그분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말입니다.


유대교 신앙은 하느님에 대한 모세의 깨달음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사람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면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하느님이 계셔서 세상에 생명이 태어나고 자랍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셔서 인류역사 안에는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는 선한 실천들이 있습니다. 구약성서는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다고 말합니다. 모세의 영도 하에 이스라엘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자기 안에 모셔 들이고,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시는 그분의 일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하였다는 말입니다. 계약은 두 당사자가 앞으로의 행동 양식을 정하는 행위입니다. 하느님은 앞으로 계속해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겠고, 이스라엘은 그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이스라엘이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일을 충실히 실천하지 못하였을 때, 예언자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일을 실천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을 말하면서 사람들이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도록 촉구하는 사람입니다. 왕이나 사제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으로 사람들을 억누르고 착취할 때, 예언자들은 그들을 비판하면서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예언자들은 대부분 그 사회의 기득권자들로부터 박해 당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실 때, 당신 자신에 대해 가르치거나 당신의 권위를 찾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쳐주고, 마귀를 쫓으셨습니다. 간질 환자나 정신 분열환자들을 마귀 들렸다고 생각하던 시대입니다. 예수님은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시는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셨습니다. 그것은 모세의 깨달음과 가르침을 연장한 실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한 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사람들은 그분을 예언자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이 그분을 “나자렛 출신 예언자”(마태 21,11)라고 환호하였다고 전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모세로부터 시작된 믿음, 곧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게 충실한 삶이 있어 열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의 실천이 하느님의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온 것입니다. 예언자들이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다가 생명을 잃었듯이, 예수님도 하느님의 일에 충실하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설명하는 오늘 복음의 장면입니다. 하느님이 계시는 산에서 그분과 교감하는 예수님은 평소와 달랐습니다. 그 예수님은 모세와 예언자들과 말이 통하는 분입니다. 그분들로 말미암은 전승 안에서 예수님을 이해해야 합니다.


초막 셋을 짓겠다는 베드로의 엉뚱한 제안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이해하는 데에 혼선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알아듣는 것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늘에서 들렸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 말씀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알려면,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초기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렀습니다. 하늘나라의 호적을 확인하거나, 친자(親子) 확인을 위해 유전자 감식을 한 결과로 나온 말이 물론 아닙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일컫는 것은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생명이 충만히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병을 고친 것은 그분 안에 있었던 하느님의 생명이 한 일이었습니다. 유대교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판단하며 버렸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죄의 용서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면서 그들을 살리셨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생명을 사는 아들이라 믿었고 그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생명을 우리도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종이라 부르지 않겠습니다...나는 여러분을 친구라 불렀습니다.” 요한복음서(15,15)가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조건 순종하는 종이 되어 미성숙하게 살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친구는 친구의 자유를 존중합니다. 친구는 친구로부터 정보를 받아 그것을 활용하며 자유롭게 삽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한 정보를 당신으로부터 받은 우리도 자유롭게 실천하며 당당하게 살아서 하느님의 자녀 될 것을 원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제자들의 이해와 믿음입니다. 모세와 예언자들의 가르침이 있어서 예수님을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분의 죽음이 그분을 결정적으로 알아듣는 계기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일을 죽기까지 실천하셨습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으로부터 하느님을 알아듣고 그분의 일을 자유롭게 실천하며 삽니다. 신앙인은 혜택을 얻겠다고 빌지 않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기 때문에 이웃을 형제자매로 부르며 그들을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는’ 노력을 합니다. 아버지를 소중히 생각하는 자녀는 아버지의 다른 자녀들도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하늘의 선언을 전합니다. 그분의 말을 듣는 그리스도 신앙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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