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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저요, 저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 - 오기순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23 조회수767 추천수7 반대(0) 신고
 

☆저요, 저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

 

               
              

내가 늙도록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나 자신과 싸워 온 고달프고 고통스럽고 후회스럽기만 한

옛 추억들이 내 늙은 가슴을 너무도 허전하게 한다.


선천적인 내 성격을 주님의 종답게,

주님의 사제답게 뜯어고쳐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누구를 닮았는지...

너무도 쾌활하고, 성급하고, 참을성 없고, 거칠고, 난폭했다.

쉽게 모든 것에 싫증을 느끼고,

항상 새 것을 좋아하며,

요즘말로 사치와 멋 부리기를 좋아했다.


남을 쉽게 믿고 한번 친해지면

그 사람의 결점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반면에 한번 비위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 그 사람에게서

미운 털을 뽑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비사교적이며 항상 독선적인 행동을 하며 살아왔다.


그런가 하면 어찌할 수 없으리만치 다정다감이라기보다는

너무 격렬한 격정을 지녀서 정 앞에서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나의 어머님은 내 어린 시절에


"너는 정에 너무 약해서 탈이고 걱정이다." 하셨지만

나는 그 때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너무나 정에 약하여 나중에 신부가 되면 실수가 많을 것이라고

염려하신 어머님은 내 사제 생활의 희망을 꺾으시려고 까지 하셨다.


어머님은 무식하셨어도 내 결점을 잘 아시고

그것을 아주 어려서 부터 고치시느라...

나를 수없이 굶기시고 피나는 매질을 하시기도 했다.


나는 사제생활을 해 오면서 실패하거나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어머님을 생각한다.

어머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굳을 결심을 다지곤 했다.


그러면서도 정이 격렬하게 발동하고 폭발할 때는

수하를 가리지 못했고, 이성을 잃을 만치 광분하거나 격분했고

언행은 걷잡을 수 없이 거칠었다.


그래서 나의 옛 학우들은 나에게 [도끼]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장작을 패는 도끼같이 인정사정없이 내리치는 횡포,

과격한 성격을 꾸짖는 말이었다.


사제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이다.

주일미사에 열과 성을 다하여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다 큰 처녀 하나가 옆 사람과 히히 덕 대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에 대해 '떠들 테면 네 마음대로 떠들어라' 하는 태도로

앉아 있었다.


가슴에서 불덩이가 확 치밀어 오르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미사가 끝난 뒤,


그 처녀를 내 방으로 불러 양 손바닥에 피가 맺히도록 매질을 했다.

그 처녀가 돌아간 다음... 생각해 보았다.

걷잡을 수 없는 후회가 내 전신을 엄습해왔다.

더욱이 그 처녀는 다음 날 미사에 혼배를 할 처녀였다.


'하필이면, 결혼 전날의 처녀를 두들겨 팰게 뭐람!

 혼배 때 피맺힌 손을 내밀고 혼배 가락지를 끼는 것을

 어찌 보겠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걱정이 되고 마음이 아팠다.

순간, 너무도 저주스런 내 손이 보기 싫고 역겨워,

테이블이 깨져 라고 손을 내리쳤다.

그러자 처녀의 양 손에 피를 맺히게 한 내 손에서도 피가 흘렀다.


얼마나 난폭하게 내리쳤는지

손이 터져서 테이블에도 피가 묻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이만 저만 미친 것이 아니었다.


'남을 때린 손은 깨지고 터져야 싸다'는 생각뿐이었다.

 한편 겁도 났다.


그 처녀의 부모가 달려와


"사람을 왜 쳐요! 내일 결혼할 처녀를 왜 때려요!

 신부가 사람 치라는 신부요?

 어디서 그런 노가 다 같은 행실을 하는 거요!"


 하고 대들면 어찌하나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참다 못 해 나는 그 처녀의 집으로 가서 그 부모님에게 사과하고

용서해 달라고 빌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방문을 막 나서려는데,


그 처녀의 부모와 식구들이 한 소대를 이루어 몰려왔다.

그들을 보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겁이 나서 한마디도 못했다.


그런데 그 처녀의 아버지가 내 앞에 무릎을 꿇더니만,

다른 가족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는 게 아닌가!


"신부님! 미천한 것이 잘못해서 신부님의 마음을 그토록 상하게

 해 드렸으니 이 일을 어찌합니까?

 신부님! 그저 용서하십시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차라리 그들이


'이 깡패 같은 놈아! ...., " 하고 주먹이라도 휘두른다면

그 앞에 엎드려 죽을죄를 지었으니 살려 달라고

손이 발바닥이 되도록 비는 편이

내게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같은 내 마음을 모르는 가족들은 떼를 지어 빌기만 했다.

이마를 땅에 조아리기까지 했다.

나한테 피가 맺히도록 매를 맞은 그 처녀도

그 피맺힌 손을 싹싹 빌며 빌고 있었다.

나는 그 아버지를 일으켜 세웠다.


"죽을죄를 지은 사람은 바로 접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용서 하세요."


처녀의 아버지는 내 손에 흐르는 피를 보고 소리쳤다.


"신부님, 손에 피가! 다치셨어요?  어서 약을 바르셔야지요."


"이 고약한 손이 당신 딸을 피가 맺히도록 했기에

 벌로 테이블을 내리쳤더니 터져버렸는지 염치도 없이

 피가 흐르는군요.

 내버려 두세요.

 이 까짓 손! 손찌검을 하다니 싸지요!"


이를 본 처녀의 엄마가 딸을 나무랬다.


"저것 때문에 신부님 손까지..., 신부님, 어서 들어가세요."


남편은 나를 앞에서 끌고 아내는 뒤에서 밀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처녀의 손을 잡고 그 피맺힌 손바닥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막달레나야!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라.

 네가 미워서가 아니고 내 성질이 고약해서 그런 거야.

 용서해 주지?"


처녀는 손을 잡힌 채 울먹이며 말한다.


"신부님, 제가 잘못했어요. 신부님의 손에서 피가 나게...,"


"잘못했고말고! 하느님 앞에서,

 신부님이 힘들여 강론하시는데 정신 안 차리고 장난을 치고

 히히 덕 거리 다니, 죽을죄를 지었지!"


아버지가 곁에서 참견을 했다.

엄마도 동생들도 누나에게 야단을 한다.

이러고 보니 내 입장이 점점 곤란해졌고

더욱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용렬하고 옹졸한 나 자신이 후회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냥 좀 못 본 채, 점잖게 넘겨 버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으면 얼마나 멋이 있었을까?

수치스럽기 한이 없었다.


그 뒤,

나는 그 처녀의 부모 형제들을 만날 때마다 속으로

'당신들은 나보다 훨씬 인격자이고 너그럽다' 생각하며

항상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먹는다.


다음 날,

막달레나가 혼배를 한 후에 신랑과 같이 들어와 날아갈 듯이

큰 절을 할 때... 내 마음은 무척 괴로웠다.


나는 다가가 신랑의 손을 잡았다.


"진심으로 축하해요.

막달레나와 같이 열심하고 착하고 금실 좋게..." 잘 살아


막달레나에게는 정과 애련을 담뿍 담아 말해 주었다.


"막달레나, 꼭.. 잘 살아요!

 시부모 정성껏 모시고 남편 잘 섬기고...

 잘 못산다는 소문을 들으면 내 마음이 무척 괴로울 거요.

 알아들었지?"


"네...,"


막달레나는 얼굴이 빨개지며 눈물을 닦았다.


"울기는 왜 울어,

 오늘 같이 경사스러운 날!                 


     - [고 오기순 신부님, 전 전주교구 부주교 93년 선종] -

       [치마 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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