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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저는 아니겠지요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17 조회수481 추천수4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루카 16:1-13)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우화를 보고는 이해를 하지 못하여 ‘어렵다’, ‘이해하지 못하겠다’, ‘비도덕적이다’고 말한다. 옛날의 성경학자들도 이해하지 못하여 끙끙댔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집 주인이 불의한 집사를 칭찬한 것을 예수님께서 비꼬아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하고 말했다. 성경학자들은 도덕적인 면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초대교회의 성격학자들도 오늘의 이 복음 말씀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이 우화는 아주 서글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상에 어둠만 있고 아무런 빛이 없음을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부채를 돈이 아니라 친절로 갚는 수가 많았다. 집사는 사기꾼이었지만 채권자는 그런 사기꾼과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집사는 ‘친절’을 앞세워 자신의 위기를 모면했지만, 채권자는 충격을 받기는커녕 악한처럼 오히려 사기꾼의 총명함을 칭찬하였다. 아예 돈을 못받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받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는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두 종류의 사람만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서양 영화에서와 보는 것처럼 세상에는 하얀 모자를 쓴 착한 사람과 검은 모자를 쓴 악한만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항상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하느님과 예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저는 악한 사람이 아니겠지요?”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도 ‘착한’ 사람들 편을 드시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편도 드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당시에 “십자가에 못박으시오”하고 외치던 사람들만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착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하느님께서는 덕(德)이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죄인들은 미워하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죄인들이 하느님의 적(敵)이었으므로 죄인들은 덕이 있는 사람들의 적도 되었다. 어떤 종교든 악한들과 선한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하신 것은 죄인들을 두둔하시거나 종교를 파괴하시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셨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성직자들은 이를 “하느님의 적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전혀 회개할 기미가 없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이방인들과 죄인들에게서 ‘착함’을 보셨다. 그 당시에 이는 이단(異端)의 소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죄인들과 함께 지내셨다. 그런데 이 우화에서 예수님께서는 왜 집사 대신에 죄인들을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예수님께서는 비록 지금은 죄인이지만 언제까지나 죄인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믿으셨던 것이다. 얼렁뚱땅 얼버무리면서 지나가시려고 하셨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이는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잘 알 수 있다.(요한 8:11) 그러나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라면 죄인이나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한 스승이 수백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기도 시간이 되면 술주정뱅이였던 한 제자만 빼놓고 모든 제자가 기도를 했다. 그런데 스승이 죽어가면서 술주정뱅이 제자를 곁으로 불러서 그의 심오한 지혜를 전수해주었다. 그리하여 다른 제자들이 몹시 반발하자 스승이 말했다. “나는 내가 잘아는 사람에게 나의 지혜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너희들도 모두 덕이 있게 보였지만 너희들은 허영과 교만과 편협함을 숨기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결점이 있어보이는 제자는 이 사람밖에 없어 보이길래 그를 선택했다.
 
이 스승은 루미의 『마스나위』에 나오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진리를 말한 것이다.
《의사는 부상당한 사람이 부러진 뼈를 붙여 주기를 기다리기 때문에 부상당한 곳을 고쳐준다. 상처가 없다면 어느 누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바라겠는가? 상처가 없으면 약도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다. 동전의 흠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누가 연금술의 가치를 말하겠는가?
결함은 완전함의 가장 순수한 빛을 생각하게 만든다. 결함은 하느님의 영광과 권능을 비춰준다. 이와 같이 만물은 반대되는 것 때문에 드러나게 된다. 벌꿀의 맛이 있기 때문에 식초는 신 맛을 드러내게 된다.
 
자신의 잘못을 아는 사람은 완전함을 찾아 급히 뛰어가지만, 너희들처럼 자신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면 하느님을 떠나 너무나 멀리서 방황하게 되므로 멀리 계신 하느님에게 손을 내밀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이다.
 
잘못이 있으면 자랑하여라. 이것을 가장 먼저 배워야 한다! 자만심을 완전히 없애기까지는 너희의 마음과 눈에서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 사탄은 하느님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잘났다.”고 주장했지만 모든 창조물에게도 이와 같이 뻔뻔스러운 면이 있다.
모든 창조물은 자신을 유순하게 보이려고 하지만 그들의 안에는 똥이 있어서 악취를 풍기고 있다. 만약 시험 삼아 주님께서 그들을 빙빙 돌리신다면 그들의 물은 즉시 갈색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너희 안에는 보이지 않는 똥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너희 눈에는 그것이 깨끗하게 보일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스승은 속인(俗人)들을 우주의 영혼으로 인도하는 특별한 역할을 한다.
속인들은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지 못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지혜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한다. 칼이 자신의 칼자루에 어떻게 흠을 낼 수 있겠는가? 외과의사는 너희가 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꿰매어 준다. 파리들이 사람들의 상처에 몰려들지만 아무도 자신의 상처의 더러운 곳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파리들은 상처를 즐기지만 상처는 너희의 내면에 어둠을 만든다. 스승은 너희를 치료하기 위하여 너희가 아파하고 비통하게 생각하는 상처에 고약을 발라준다. 그러나 고통이 영원히 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말아라! 고약은 마치 한 줄기의 빛처럼 일시적으로 붙여진 데 불과하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여, 고약으로부터 다시는 도망치지 말아라! 너희가 아니라 스승의 빛이 고통을 어루만져줄 것이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코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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