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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69) 9년 된 갈치 젓국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23 조회수607 추천수2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leejeano)                    작성일            2004-02-17 오후 6:39:55

 

 

2004년2월17일 연중 제6주간 화요일 성모의 종 수도회 창설자 일곱 성인 기념 ㅡ야고보1,12-18;마르코8,14-21ㅡ

 

   (69) 9년 된 갈치 젓국

                         이순의

              

 ㅡ진 맛ㅡ

지난 가을 김장에 갓 김치를 담그면서 커다란 결단을 자청했다. 9년 동안이나 밀봉한 상태로 아껴둔 갈치 젓국을 열어 보기로 했다. 젓국이라는 게 원래 곰삭은 세월이 묻어나야 우러난 맛이 진국인 것이다.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칼을 들고 단지 앞에 섰다.

 

뚜껑을 열고, 퍼석퍼석 부서지는 속싸개에 붙어 삭아버린 나일론 끈을 칼로 긁어냈다. 돌비늘 같이 굳어버린 포장들이 한 겹 두 겹 뜯겨져 나왔다. 작은 단지 주둥이에 달이 떴다. 컴컴한 원안에 작은 달이 햇빛을 받아 하늘을 그리고 있다.

 

동화속의 오누이가 새 동아줄을 기다리며 내려다 본 우물의 그림자가 거지에 있다. 그 우물이 내 얼굴을 비추고 있다. 분명히 달랐다. 2~3년 곰삭은 국물과 달랐다.

 

완전한 물만 투명하게 거울이 되어 첫개봉의 처녀작으로 하늘을 그려주더니 들여다 본 내 얼굴도 사진처럼 선명하게 그려주었다. 짧은 세월의 젓국물들은 주둥이 가득 고체 된 단백질 덩이들을 머금고 있다. 그러나 9년 된 갈치 젓국은 모든 덩어리를 완전히 녹여 버리고 작은 찌꺼기들만이 단지 바닥에 깔아진 찌꺼기로 침전되어 기다렸다.

우와! 10년을 채울걸!

10년을 채웠으면 나머지도 녹아나 찌꺼기 없는 기적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후회가 먼저 탄식으로 쏟아졌다.


섬 마을에서 떠나 올 때도 신주단지 모시듯이 모셔 왔고, 서울 살이 서러운 이사에도 <요 주의> 명찰을 달고 특별대우를 했었는데 그걸 못 참고 개봉을 해 버린 것이다. 젓국은 개봉을 하면 시간을 지체 할 수가 없다. 우선순위에 놓고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비린 생선의 발효는 단 냄새가 진동을 하고, 콧구멍이 예민한 날 파리들은 약탈을 위한 최고의 작전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어제 새봄의 햇김치를 담갔다.

9년 된 갈치 젓국으로!

 

9년 전 섬에서 살을 적에 우리 세 식구는 오토바이 한대에 몸을 실었다. 노을이 좋은 바다에 지는 해를 보기 위해서였다. 태양이 사위기 직전의 붉은 섬은 빨래 줄에 널려있는 무명천 같았다. 빠져나간 썰물대의 바닷가는 염색을 마친 꽃물이다.

 

그곳에 모래사장을 가르고 주인 없는 그물이 이별을 하고 섰다. 해님께 잘 가시라고 힘없이 손을 들었다가 만다. 눈가에 맺힌 이슬이 빤작빤작 빛났다. 그물의 눈물은 물 따라 왔다가 노는데 정신을 놓아버린 새끼갈치들이다.

 

새끼갈치들은 붙드는 그물을 거절하지 못 했다. 놀아도 놀아도 가버린 물은 오지 않고, 가라고 가라고 용을 쓰던 그물은 꼭꼭 조여들고, 여기 두고 간 새끼갈치 있다고 있다고 지친 손만 들었다가 놓았다가. 바람을 불러 흔들어 보지만 물때는 돌아보지도 않고 갔다.

 

가족이 탄 오토바이에 속도가 붙었다.

아무리 반짝거려도 물은 오지 않는다.

물이 오고 나면 갈치는 없다.

우리 셋이서 부지런히 거두어 젓국을 담갔으니까!

 

아하하하하하

 

9년 전 그때 그 갈치는 보약이 되었다. 물도 삭고, 살도 삭고, 뼈도 삭고! 갓 김치도 되었다가, 무김치도 되었다가, 새 봄의 햇김치도 되었다가! 참! 양배추 한포기 데쳐다가 갈치 젓국물에 갖은 양념을 해서 쌈도 싸 먹어야지이 이 히 히 히 히히히히히히히!!!!!!!!!!

 

<먹고 싶제? 메~~로~~옹> <주문 전화번호; 천국에 천사번> 전화번호 진짜 좋다. 헤헤헤헤헤

 

ㅡ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시련을 이겨 낸 사람은 생명의 월계관을 받을 것입니다. 야고보1,12ㅡ

 

 

 

 저기 막대기 보이시지요?! 사진은 겨울바다라서 작은 그믈들이 처져있지 않지만 봄이나 여름, 가을에 가 보면 저 막대기에는 작은 아주 작은 그믈들이 드문드문 처져 있습니다. 거기에 잡힌 갈치들이 눈물이 되어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물때에 맞춰서 그믈의 주인이 오시면 그 눈물방울이 된 갈치는 만날 수가 없지요. 제가 제일로 좋아하는 멋진 바다입니다.

 

 
 
 

 이야~! 저장해 둔 CD를 찾아보았더니 갈치를 주었던 그 바다 그 자리 사진이 있네요. 물론 날자는 9년 전이 아닌 훨씬 후에 찍었지만 짝궁이랑 그곳에 가서 데이트한 사진이 있네요. 햐~! 보여드릴 수 있어서 제가 감격스럽습니다. 참, 글을 쓴게 2004년2월이니까 벌써 9+5 해가 지났네요.

 
 
 
 
짝궁이 찍어준 사진은 전부 다 수평선이 기울어져 있습니다. ㅋㅋ 성탄지내고 갔다 올 계획이 있습니다. 성탄은 본당에서 지내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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