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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68) 담배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21 조회수660 추천수1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leejeano)                            작성일         2004-02-16 오후 9:31:48

 

 

 (68) 담배

                이순의

 

 

외출을 하려고 버스 정류장에 섰다.

가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시간은 무료한데 버스를 타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혼자서 발을 앞으로 올려보고 뒤로 젖혀보아도 심심해 죽겠다. 가로수로 서있는 은행나무를 부둥켜안고 빈가지만 만세를 부르는 하늘을 향해 머리를 뒤로 젖혔다.

 

한 바퀴 빙 돌고 또 돌고.

그런데 바로옆 건물의 몇 층에서 작은 연기가 ’퐁’하고 방귀가 되어 뿜어져 나왔다. 순간 신기하고 재미있다. 무료하던 차에 구경거리가 생겼다.

 

바로서서 그 작은 하얀 실체가 어디서 나오는지 살펴보았다. 조금 후에 띄엄띄엄 꼭 그만큼씩 연기가 건물에서 탈피되고 있다. 유리창은 빠끔히 열려있지만 커튼이 처져있고 연기의 근거를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일정한 간격으로 딱 한입만큼의 하얀 솜사탕이 배출 되고 있었다.

 

몇 층인지는 모르지만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호기심에 계속 눈동자에 심지를 박고 기다렸다. 그런데 잠깐 사이에 커튼이 살짝 젖혀지더니 앳된 소녀가 토끼처럼 숨어들었다. 아마 안쪽에서 가족의 인기척이라도 느껴지나 보다. 거동이 급해졌다.

 

버스 정류장에서 올려다보는 사람을 감지 할 겨를이 없다. 그렇게 맛난 담배를 한 모금이라도 더 빨을 요량으로 뻐끔 질을 몇 번 하더니 두 숨 정도 멈추었다가 백사처럼 길게 연기를 몰아냈다. 손가락에 쥐고 있는 폼으로 보아 연초의 경험이 미령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얀 독사 같은 연기가 사라지기도 전에 타다 남은 꽁초를 창틀에 비볐다.

 

그리고 훨씬 다급한 동작으로 호오 바람 불며 삐죽한 입술에 부채질을 했다. 두 손바닥을 펴서 입에다 대고 부지런히 부채질을 하며 간혹 커튼 뒤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또 손동작을 이었다. 앳된 모습이 살짝살짝 스쳐 보였던 창문이 닫혔다. 곧 그 자리에 사람이 있었다는 흔적으로 커튼이 출렁거리다가 늘어졌다.

 

버스는 오지 않았다.

택시를 잡아서 탔다.

고운 아가씨를 걱정하실 엄마도 생각해 보고, 미래의 신랑도 생각해 보고, 엄마라고 불러 줄 아기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생각의 꼬리는 태초의 이야기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도 그랬었지?! 아버지 하느님의 주의사항을 거역한 원조들도 숨었고, 최초의 범죄자 카인도 숨었지?!

부모의 마음은 주님의 마음이다.

부모가 시켜서 피우는 담배라면 숨어서 태울 일이 아니다.

 

지금의 인간들도 상실된 잘못을 알면서 숨는다. 부모는 수 없이 많은 오류와 위험들에 대하여 하느님처럼 경고한다. 경고를 어기고자 하는 자녀는 역시 태초의 그대로의 모습들을 반복하고 있다. 창세기의 원조 인간과 지금의 자녀는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천지 창조주 하느님과 지금의 부모는 결코 동격이 될 수 없다. 창조주께서는 완전한 생산자이시다. 부모는 잘못 된 경험과 학습을 통해 완전해지고자 하는 피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녀에게 세상에 널려있는 수 없이 많은 선악과에 대해 경고한다.

 

그 앳된 아가씨의 부모도 그러했으리라. 수칙을 어기고 숨는 것은 자식이 선택한 자유의지다. 지구 전체가 금연운동을 하고 모든 건물은 흡연을 불허하는 세상이 되었다. 어린 처녀의 핑계는 음침한 커튼 밑에서 꿈틀 댄다.

 

"그럼 뭐 하러 담배를 만들었어요?"

참으로 안타까운 선악과다.

"그럼 뭐 하러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심었어요?"

참으로 답답한 자유의지다.

 

그래서 아기는 임마누엘!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셔야만 했던가?!

 

 

 

 

 

*임마누엘 =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예수 = 하느님은 구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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