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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직자는 축성된 사람이고 평신도는 축성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21 조회수644 추천수7 반대(0) 신고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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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성직자는 축성된 사람이고 평신도는 축성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김수환추기경님의 "평신도와 성직자" 평신도 전국회의 강론 중에서 발췌)


한집 식구가 다 아버지 될 수도 다 어머니 될 수도 없듯이 교회의 직책도 서로 다르나 한집 식구들의 신분과 품위는 같듯이 이 교회에 속하는 사람들의 신분과 품위도 같습니다. 교회 헌장 32항은 이런 뜻에서 서술된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다양성 안의 일치를 말하면서 그 일치의 요체가 되는 `하나'를 성서 신학적으로 뜻 깊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택된 하느님의 백성은 하나뿐이다. `주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뿐이다'(에페 4, 5). 그리스도 안에서 재생(再生)한 지체들의 품위도 같고 자녀 되는 은총도 같고 완덕에로의 성소도 같으며 구원도 하나요 희망도 하나요 사랑도 갈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는 민족의 차별도 국가의 차별도 남녀의 차별도 있을 수 없다"(32항).

이같이 교회의 모든 지체의 품위는 같습니다. 모든 지체가 한몸이기 때문입니다. 평신도와 성직자는 한몸입니다. 중추신경과 같은 한 성령에 의해서 함께 인도되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자신과 같이 한집안 식구같이 형제같이 사랑하는 데에 평신도와 성직자의 가장 깊은 관계가 있고 또 그래야만 평신도와 성직자의 관계는 올바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리 원칙이요 이상이지 현실은 다릅니다. 왜냐하면 성직자나 평신도나 우리는 다 인간이요 불완전하며, 그 취약성을 지니고 있고 또 죄 없다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을 만큼 다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교회관이나 그 체제가 성직자 위주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공의회에서 제시한 교회로 쇄신되기 위해서는 성직자이거나 평신도이거나 상당한 반성과 쇄신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부터 해야 할 것인가?

제 생각으로는 먼저 교육이 필요합니다. 평신도도 성직자도 기도하면서 복음 성경과 공의회 문헌 연구를 좀더 진지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의식 구조가 변화될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쇄신을 위해서 절대로 필요합니다. 평신도들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들도 성세와 견진, 즉 성령의 도유로 축성된 존재, 하느님 백성의 정식 구성원(full member)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전에는 성직자는 축성된 사람이고 평신도는 그렇지 않은 양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엄격한 의미로 축성은 성세와 견진만으로써 됩니다. 전에 주교품을 받을 때 이것을 축성(Consecratio)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을 신품으로서, 서품(Ordinatio)이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신품을 받는 것은 새로운 축성이 아니고 이미 축성된 신자들 중에 간선된 사람에게 사제직에 서품하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목자라는 직책을 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위에서 말한 대로 결코 인위적인 것은 아니요 하느님 백성을 가르치고 다스리고 성화시키는 일꾼을 뽑는 성령의 일하심입니다. 신적 제정(神的制定)입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평신도는(성직자도) 교회에 있어 가장 고귀한 품위는 교황이 되는 것도 주교가 되는 것도 신부가 되는 것도 아니요 신자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크리스찬이라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요 또 최상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주교학자 아우구스티노는 "여러분을 위해서 내가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공포를 일으켜 주지만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사실은 나를 위로해 줍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서 주교이지만 여러분과 함께 크리스찬입니다. 전자는 직명(職名)이요 후자는 은총의 이름이며, 전자는 위험한 이름이지만 후자는 구원받을 이름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32항 끝 참조).

교육에 있어 다음으로 지적해야 할 것은 평신도도 교회의 정식 일원이고 따라서 여기에 따르는 권리와 아울러 의무를 성직자 못지 않게 각자 처지대로 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미 교회의 사명은 주교나 신부들만의 사명이 아니요 평신도를 포함한 하느님 백성 전체의 사명임을 말했습니다. 이 인식이 교육을 통해서 우선 지도층에 있는 신자들부터라도 깊이 뿌리 박혀야 하고 또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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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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