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6월 6일 야곱의 우물- 마르 12, 18-27 묵상/ 모든 이의 하느님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06 조회수481 추천수5 반대(0) 신고

모든 이의 하느님

그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마르 12,18-­27)

◆하느님은 모든 이의 하느님이시다. 과거의 하느님이시기도 하고 현재의 하느님이시기도 하다. 우리는 가끔 아니 자주 하느님이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세상이 너무나 불공평한 것으로 가득 찬 것처럼 여겨질 때도 많다. 하느님이 계시면 고통 받는 이들, 슬픈 이들, 어려운 이들을 이대로 두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힘든 일상에서 하소연할 사람을 찾지 못해 내게 온 학부형이 “도대체 하느님이 계시기는 한 것이냐?”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너무도 힘겨운 현실에 놓여 있는 형제님을 보면서 나는 대답할 길이 막막했다. 견디기 어려운 아내의 불륜, 자녀의 일탈, 친구의 배신, 건강치 못한 육신. 하나같이 힘겨운 십자가! 자신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현실에서 ‘신의 부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그 형제에게 나는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하나?

 

반복되는 하소연을 들으면서 “힘드시겠어요.”, “하느님이 뜻하신 바가 있으시겠지요.”,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나 역시 힘겹기는 매한가지다. 그런 가정 환경에서 지내는 공부방 아이의 일탈도 이해가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겨운 일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아버지인 그 형제님에게 나는 기도 중에 말한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께서는 곧 당신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라고.

김희경 수녀(그리스도의 성혈 흠숭 수녀회)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