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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 30일 야곱의 우물-요한 8,1-11 묵상/ 희망과 절망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30 조회수484 추천수4 반대(0) 신고
희망과 절망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놓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요한 8,1-­11)
 
 
 
 
◆저는 특별히 여성주의자는 아니지만 오늘 복음을 묵상하자니 전부터 생각해 온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듭니다. 잘났다는 율사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 단죄하는 장면에서 간음은 여자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죄가 돌에 맞아 죽을 정도라면 적어도 상대가 된 남자한테도 어느 정도는 적용되어야 할 터인데 어째서 힘없는 여자만 끌고 와서 단죄하느냐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타의 일화나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나 예수님의 여성관은 율사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구실로 주님까지 잡으려 드는 교활한 술수를 드러내는 그들을 간파한 주님은 참으로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할 말을 잃고 바닥에 ‘너나 잘하세요.’라고 쓰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그런데도 줄곧 물음을 던지는 염치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의 대답은 예리합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 복음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태도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단 한 사람도 책망하지 않으시는 자비로운 주님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율사들을 향한 서운했을 마음도, 여인에 대한 연민도, 가난한 백성에 대한 측은지심도 모두 그분의 인격 안에 녹아 있습니다. 주님의 눈에는 율사들도 똑같은 죄 많은 당신의 백성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자비로 비추시지만 그분께 대한 믿음이 우리 생활의 희망과 절망의 척도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은총의 생활은 그래서 필요한가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죄로 물든 우리의 주눅 든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듯합니다.
김혜경(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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