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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을 두려워하라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15 조회수481 추천수11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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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하느님을 두려워하라


어떤 시대이든지 간에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소수(小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지만, 이 소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듣는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들은 하느님의 음성만을 듣는다. 이사야 시대에도 오직 이사야만이 장차 일어날 일을 보았다. 가장 위대한 선지자인 이사야에게 하느님은 “이 백성의 길로 행치 말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셨다.

하느님은 이사야에게 시대의 흐름을 거스리는 자가 되라고 명령하신다. 이 말의 의미는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세상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혹시나 “반항자가 되라”는 식을 생각한다면 이는 상당한 오해이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은 반항자들이다. 육신적 욕망에 사로잡혀 반항하고 있다. 반면에 정당한 반항을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이 세상은 험악한 곳이다. 항상 위험이 산재해 있고 언제 어떻게 그런 위험이 닥칠지 모르고 있다. 나름대로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수고하지만 역시 피할 길이 없고 방법이 없다. 이런 세상에서 하느님을 우리의 “피할 곳”이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아닌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 복종하고 세상과 타협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 늘 신자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든 구조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동화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실 우리도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고 변명을 할 뿐이다.

세상에 대하여 반항하여 하느님의 역사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할  하느님의 사람들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거나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두려워하고 세상의 음성을 듣고 있다.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주역들이 세상의 흐름에 물들어서 세상의 썩은 냄새만 풍기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흐름을 거스리는 하느님의 주역들이 되어야 한다. 썩은 세상을 하느님이 원하시는 맑고 깨끗한 세상으로, 파리가 들끓고 있는 쓰레기장을 꽃과 나비와 벌들이 모이는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신앙인의 모습이 되어야 하고 분명하게 신앙을 고백하고 드러내야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하느님의 자녀인 것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서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없이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수치이고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구별된 삶을 사는 거룩함을 드러내야 한다.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거룩한 자로 서는 결심이 있기를 소원한다.


(창골산 봉서방의 글에서 발췌하였으며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3월 16일] 거룩한 생명의 말씀 '복음' <요한 5,1-3ㄱ.5-16>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예루살렘의 ‘양 문’ 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 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벳자타 못’ 물이 출렁거리면 기적이 일어나고, 처음으로 뛰어든 이는 은혜를 입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지금도 여러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38년을 기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끈질긴 인내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측은히 여기시어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그날이 바로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병이 나아’ 들것을 들고 가는 그 병자에게 시비를 겁니다.
안식일에는 ‘무거운 짐’을 드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을 낫게 해 주신 분의 말씀만이 있을 뿐입니다. 38년을 기다린 끝에 얻은 치유였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의 시비는 계속됩니다. 그들의 화살은 예수님을 향합니다.
그들 눈에는 38년의 애절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안식일 법을 어긴 행동만이 보일 뿐입니다. 그런 행동을 지시한 사람의 의중만이 관심입니다. 그런 곳에 어떻게 ‘율법의 정신’이 있을는지요? 조직과 단체가 그렇게 바뀌고 있다면 누군가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사랑은 규칙보다 더 소중합니다. 모든 질서를 뛰어넘는 감동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남자는 38년을 기다린 끝에 ‘사랑의 주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벳자타 못은 기원전 2세기경, 성전에 맑은 물을 공급하려고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물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소문에 병자들이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벳자타 못은 우리 곁에도 있습니다. 애절한 믿음으로 다가가면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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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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