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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 뒤에는 악마가 있다(Detras de la cruz esta el demonio)." - 4.2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27 조회수480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4.27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사도11,19-26 요한10,22-30

 

 

 

 

 

 

"십자가 뒤에는 악마가 있다(Detras de la cruz esta el demonio)."

 

 

 

새벽 성무일도 독서 시 묵시록 14,1절 말씀입니다.

“내가 또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십사만 사천 명의 이마에 적혀 있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은

말 그대로 주님과의 일치를 상징합니다.

세례 때 받은 인호가 아니라

평생 주님과 일치의 삶에 항구했던 결과입니다.

 

옛 사막 수도자들은 두 목적으로 사막에 갔습니다.

하나는 악마와의 싸움이요 또 하나는 주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모래사막만 사막이 아니라 수도원도 사막이요 세상도 사막입니다.

사막 수도승의 삶은 그대로 믿는 모든 이들의 삶을 상징합니다.

 

내 삶의 자리 사막에서

악마와 싸워야(영적전투) 하고 주님을 만나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여기 필수불가결한 것이 말씀입니다.

사막의 말씀, 사막의 수도승입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하나 될 때

악마와 싸울 수 있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광야의 예수님 역시 하느님 말씀의 힘으로 악마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하나 될 때

우리 역시 악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여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해 달라.’는

주님의 기도가 절실할 수뿐이 없습니다.

 

지난 주일 오후 안내실 근무를 하면서 읽었던 한 구절이

계속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저에겐 참으로 큰 충격의 말마디였습니다.

 

‘십자가 뒤에는 악마가 있다(Detras de la cruz esta 디 demonio).’

 

순간 내가 악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십자가 뒤에는 악마도 있고 우리도 함께 있습니다.

단 큰 위안은 악마는

십자가의 위력에 사로잡혀 큰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입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무관한 삶을 살 때

악마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고

본의 아니게 악마가 될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사실 역사 상, 또 지금도

십자가의 교회와 수도원 이면에서

얼마나 많은 악들이 저질러졌고 또 저질러지고 있는지요.

이래서 서원 생활에 충실한 삶을,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깊은 일치의 삶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깊은 일치의 삶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이냐시오는

‘다른 이와 사느니 차라리 예수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

고백한 적이 있으며,

 

에카르트는

‘예수 없는 하늘보다는 차라리 예수 있는 지옥을 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또 도스트에프스키는 ‘악령’의 소설에 나오는

한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진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는 것이라 해도

  자기는 진리와 함께 있기 보다는

  차라리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님과 깊은 일치의 염원이 담긴 고백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주님을 나를 알고 나는 주님을 알 때

주님과의 일치에 영원한 생명의 선물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아버지와 일치의 절정을 보여주는 예수님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힘은 원천은 바로 아버지와 일치의 삶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하여 하느님의 모두가 예수님을 통해 환히 들어납니다.

 

 

“나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역시 사도 바오로의 그리스도의 일치의 절정을 보여주는 고백입니다.

이런 주님과의 일치의 모범이 사도행전의 바르나바입니다.

안티오키아 교회에 하느님의 은총에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는

바르나바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다음 묘사가 그의 주님과의 깊은 일치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주님과 일치의 삶을 살 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삶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부활하신 주님은 당신의 말씀과 성체의 은총으로 우리와 하나 되시어

우리와 함께 세상 사막에 파견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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