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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1일 야곱의 우물- 마르66,1-6 / 류해욱 신부와 함께하는 수요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01 조회수480 추천수3 반대(0) 신고
류해욱 신부와 함께하는 수요묵상

그때에 1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 3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고향 마을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고향 사람들이 처음에는 놀랍니다. 묵상 안에서 그분의 지혜에 탄복하고, 그분이 행하신 기적에 대해 경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삶에서 놀라고 경탄할 수 있음은 중요합니다. 깨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황동규 시인은 <수련> 이라는 시에서 “이적 앞의 놀람 또한 살아 있는 것의 속뜻이 아니겠는가.” 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의 그 놀람이 진정 살아 있음, 깨어 있음의 증표가 아니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곧이어 자기들의 놀람을 부정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고 맙니다. 진정 깨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정관념에 매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행적보다 원래의 직업, 누구의 아들, 누구누구의 형제 등의 틀 안에 집어넣고 그가 누구인지를 다 안다고 단정합니다. 그러니 새로운 진리를 알아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은 전혀 없습니다.

참으로 깨어 있음, 살아 있음은 바로 우리가 아직 모른다는 것, 사람과 세상에 대해, 예수님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열려 있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다는 생각, 바로 고정관념이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리게 함을 묵상합니다.

열려 있는 마음이 없는 고향 사람들을 보시며 예수님께서는 그들한테 믿음이 없음에 놀라셨습니다. 이 대목을 묵상하며 우리에게 그런 열려 있는 마음, 진정한 믿음이 있는지 새삼 돌아봅니다.

 

류해욱 신부(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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