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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말은 말이고 삶은 삶이다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18 조회수480 추천수11 반대(0) 신고


사순 4주일
12.03.
18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 3,14-21



 


 말은 말이고 삶은 삶이다.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요한3,16)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 아들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이 시간 아들을 믿는 믿음을 더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제의색은 장미색입니다. 사순절을 맞이하여 희생과 보속, 극기의 삶을 잘 살아오셨습니다. 지칠 만하지요. 그렇지만 한 고비를 넘겼으니 좀 더 노력 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의지가 약해 실천하지 못하였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은혜의 때입니다. 시작이 중요합니다.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미 새와 아기 새가 있었습니다. 어미 새는 아기 새가 귀여워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주었습니다. 아기 새가 자라서 어른이 되어도 어미 새는 계속 먹이를 물어다 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미 새는 늙었습니다. 늙은 어미 새는 이제 더 이상 아기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다 주지 않자 어른이 된 아기 새는 어미 새의 머리를 콕콕 쪼았습니다. 배고프다고 화를 내면서 콕콕 머리를 쪼았습니다.



큰 사랑을 받았으면 큰 사랑을 할 줄 알아야 하는 데, 받는 데만 익숙해 졌지 사랑을 할 줄 몰랐습니다. 사랑은 크면 클수록 행동치 않을 수 없다고 했거늘 그 사랑을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아니 깨우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저 누리고저 한 것입니다. 고기를 잡는 방법은 생각지 않고 주어진 고기에 묶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라고 말하면서도 성경을 잘 읽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요, 영혼의 호흡, 심장과 심장의 만남이라고 말하지만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의 손이요, 발이라고 하면서도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기보다 내 이익을 더 챙깁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은총을 달라고 매달립니다.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고 하면서도 제 실속을 위해 정신없이 삽니다. 하느님을 간절히 부르면서도 그저 부를 뿐 그분의 뜻을 찾고 행하기보다 내 뜻을 들어달라고 하소연하고는 내 멋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는 내 원의대로 해주지 않으신다고 투덜댑니다. 정말 하느님이 계시기는 한가? 영락없이 어미 새의 머리를 쪼는 아기 새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높이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에 보면 하느님께서는 구리 뱀을 만들어 광야의 기둥 위에 달아 놓으라고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뱀에 물리면 그 구리 뱀을 바라보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뱀에 물린 사람들이 구리 뱀을 쳐다보았을 때 살았습니다(민수21,6-9). 믿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구리 뱀을 쳐다보라면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순명이라고 합니다. 순명은 생명을 가져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릴 것이고, 그러나 그 예수님을 바라보면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대로 살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위한 가장 큰 사랑을 보여주신 그 사랑을 살게 되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구리 뱀을 쳐다봐서 산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고통의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가에 숨겨있는 그분의 사랑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영원히 살게 됩니다.



성 콘라도는 “십자가는 나의 교과서 입니다. 나는 거기에서 겸손과 양순함을 배웁니다. 또한 언제라도 십자가를 쳐다보면 즉시 내가 취할 길을 발견하고 가야 할 길에 용기를 줍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성 요한 비안네도 “십자가는 하느님이 당신의 사랑스런 자녀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십자가는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이며, 십자가는 천당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우리를 위한 사랑의 십자가를! 자동차에 십자가를 매달고 손가락에 묵주반지를 끼고 위로 받지 말고 그것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일깨우십시오.



기도해야 한다는 것,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 미사참례를 하고 그분의 손발이 되어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은 아는 차원을 넘어 그대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이는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몸소 씨를 뿌리십시오.



나중에 죽으면 신부는 입만 천당 간다고 하잖아요. 말만하고 행함이 없으니까, 수녀님들은 귀만 간대요.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거든요, 여러분은 발만 간대요. 열심히 성당에 오셨으니까요. 다 알아요. 알면 뭐합니까? 알면 바뀌어야죠. 내 삶을 바꾸어야지요. 어둠을 빛으로 바꾸지 않는 한 안다고 하지 마십시오. 참으로 안다는 것은 알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 삶을 빛의 삶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사실 매일 매순간 거듭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어느 한 부분의 구원이 아닙니다. 아무개 한 인간의 구원이지요. 그러므로 균형 잡힌 신앙생활로 우리 모두가 구원 받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을 확실히 믿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꼭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믿음에 따르는 행동 안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심판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은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요한3,18).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결국 죽는다는 것입니다. 구리 뱀을 보지 않은 사람이 죽었고, 소돔이 멸망할 때 구원에 부름 받은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 했는데 뒤를 돌아다보다 소금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창세19,26). 결국 높이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혜택을 주어도 담을 그릇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이 곧 심판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말고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갈라 6,14) 하고 말했습니다. 사실 십자가를 만나면 기가 죽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십자가를 만날 때마다 부활의 생기를 찾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가장 위대한 선물이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그 사랑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원컨대 저 십자가의 능력이 내게 힘을 주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최양업 토마스 신부)



오늘 이 미사를 통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사랑을 드러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더해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고달프고 힘들 때마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위로를 얻기를 바랍니다. 십자가 없는 구원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랑합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예비자 교리에 열심히 참석하셨습니다.
 
신부님은 할아버지께 세례식에 앞서 한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돌아 가셨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허, 그런 질문하지 마세요, 제가 죽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 마누라의 짓인 것 같기도 합니다만.
  언젠가 우연히 내 마누라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자기 죄 때문에 예수가 죽었다고 눈물로 호소하는 것을 보았거든요,
  그래도 내 마누라인데 잘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예수님은 왜 돌아가셨죠?
남의 죄 때문인가요? 아, 내 죄 때문이라고요!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이래요! 





                     
                                          
                                                                 그 크신 하느님의 사랑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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