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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헌금은 자발적으로, 형편에 맞게 바쳐야한다.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16 조회수778 추천수4 반대(0) 신고
 

헌금은 자발적으로, 형편에 맞게 바쳐야한다.

(바오로 서간 해설)


헌금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자신을 주님께 바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 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는데도,

먼저 주님께 자신을 바치고, 또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도 자신을 바쳤습니다.”(2코린 8,5)


헌금은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를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행위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2코린 8,9)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에게 헌금을 할 때,

가져야 할 자세를 이야기 한다.


첫 째,  강제에 의해서 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오직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바치라는 것이다.

“이제 그 일을 마무리 지으십시오. 자발적 열의에 어울리게

여러분의 형편에 따라 그 일을 마무리 지으십시오.”(2코린8,11)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2코린 9,7)

둘 째, 형편에 맞게 바치라는 것이다.

“열의만 있으면 형편에 맞게 바치는 것은 모두 기꺼이 받아들여지고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은 요구되지 않습니다.”(2코린 8,12)


이어서 바오로 사도는 헌금을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은 편안하게 하면서 여러분을 괴롭히자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게 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그들의 궁핍을 채워 주어 나중에는 그들의 풍요가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 준다면,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았다.”(2코린 8,13-15)


바오로가 세운 이방 계 교회들은

예루살렘 모 교회에 비해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었다.


바오로는 상대적으로 넉넉한 코린토 교회가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모금을 해야 하는 이유는

두 교회 사이에 균형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라 한다.


또한 코린토 신자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신자들을 위해서 헌금한다면

예루살렘 신자들은 하느님께 넘치도록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헌금한 코린토 신자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함으로써 신자들 사이에 친교가

더욱 깊어진다는 것이다.

                유 충 희 신부 지음 (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가토릭 신문에서. . .

오늘의 묵상: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아브람은 그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창세14,21) ··


십일조 규정.

“너희는 해마다 밭에서 나는 모든 소출의 십분의 일을 떼어 놓아야

한다. 너희 성안에 사는 레위인들도 저버려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는

너희와 함께 받을 몫도 상속 재산도 없기 때문이다. 그해에 난 소출의

십분의 일을 모두 가져다가 너희 성안에 저장해 두어라. 그러면 성안에서

너희와 함께 받을 몫도 상속 재산도 없는 레위인과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가 와서 배불리 먹게 될 것이다. 그러면 주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실 것이다.”(신명14,22-29)


가난한 과부의 헌금.

예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1-4)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헌금에 대한 액수와 헌금에 대한 마음입니다.


헌금에 대한 마음이 있어야 헌금을 하게 되는 것이고

헌금에 대한 마음이 있어야 그 액수에 대해서도 그 크기가 달라집니다.


또한 일정한 수입으로만 생활해야 하는 월급쟁이들은 자기들의 분수를

알기 때문에,

첫째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둘째로, 형편에 맞게, 헌금을 책정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리라 생각됩니다.


만일 아이에게 용돈을 매월 30,000원 씩만 주면서 자립심을 키우려고

하였는데 이 아이가 ‘과부의 헌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몽땅 헌금으로

성당에 바치고 왔다면,

그 아이의 부모는 그 아이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야하겠는가?


어느 자매님이 직장에 다니면서 자녀의 교육비로 은행에서 5백만 원을

대출받으면서 그 대출 받은 5백만 원의 십일조를 교회에 헌금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자매님을 과연 과부의 헌금처럼 감탄하셨을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서로 비교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교회에서는

교리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파트 평수에 대한 비교, 자동차 종류에 대한 비교, 출신교에 대한 비교,

관직에 대한 급수의 비교, 직업에 대한 비교 등등으로 비교의 대상은 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비교로서 사람을 달리 취급해서는 결코 신앙인으로서는 마땅한 도리가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

성탄예물과 같이 통 반으로 부과되는 예물의 액수를

비교하는 비교표를 주보에 실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에 대한 목적은 비교해 보고 더 분발하라는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이라 생각되어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서글픈 심정입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도 주님의 자비와 풍성한 은총을 주시어

신앙인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주님을 흠숭하고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축복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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