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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16 조회수1,164 추천수1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12월 16일 대림 제3주간 화요일
 
 
 
 The son said in reply, ‘I will not,’
but afterwards he changed his mind and went.
(Mt.21.29)
 
 
제1독서 스바니야 3,1-2.9-13
복음 마태오 21,28-32
 
 
나름대로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었던 두 의사가 점심을 먹고 나서 병원 앞 벤치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남자가 안짱다리에 두 팔을 비비 틀고 고개를 기묘하게 꼬면서 걸어오는데 얼굴이 땀에 온통 젖어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는 먼저 첫 번째 의사가 이렇게 진단을 내립니다.

“안됐어. 뇌성마비환자로군.”

이 말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두 번째 의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무슨 말인가? 저 사람이 어떻게 뇌성마비환자야? 그렇게 진단하는 자네가 무슨 최고의 의사인가? 저 사람은 분명히 편두통성 간질이야.”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점점 언성이 커져갔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 두 사람 앞에 멈춘 그 남자가 이렇게 더듬더듬 묻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 화장실이 어디죠?”

안짱다리에 두 팔을 비비 틀고 고개를 기묘하게 꼬면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서 뇌성마비환자라고 또 편두통성 간질이라고 진단을 했지요. 하지만 그 행동은 사실 화장실이 급해서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의 판단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내가 확실하다고 하는 것조차도 사실이 아닐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결국 하느님의 뜻이 최고의 방법이라는 사실로 인정하고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즉, 지금의 내 모습에서 변화되어 주님 뜻에 철저히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두 명의 아들이 나오지요. 먼저 맏아들은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싫다고 대답했었지만 급히 뉘우치고 일하러 갑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예’하고 대답만 할 뿐 일하러 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아버지의 뜻에 맞는 아들인가가 바로 예수님의 질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생각에 누가 올바른 아들 같아요? 당연히 맏아들이겠지요?

맏아들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처음에는 싫다면서 아버지의 뜻과 반대했지만, 곧바로 마음을 바꾸어 순종하는 아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작은 아들은 처음에는 가겠다고 말을 잘 듣는 아들의 모습을 취했지만, 말만 할 뿐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바른 아들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맞게 철저하게 변화되어야 올바른 주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과연 철저하게 주님의 뜻에 맞게 변화되려는 맏아들일까요? 아니면 말만 할 뿐 변화되지 않는 작은 아들의 모습이었을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네요.



논쟁이나 반박을 하면서 상대를 이긴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승리이다. 상대의 호의는 절대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데일 카네기)



 

절망 속에서 꽃핀 음악(‘좋은 생각’ 중에서)
 
2차 대전 당시 포로수용소는 추위와 배고픔,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로 둘러싸인 고통의 현장이었다. 이 절박한 상황을 한 편의 음악으로 승화시킨 사람이 있다. 바로 20세기의 바흐로 불리는 프랑스의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

메시앙은 1940년 5월 괴를리츠에 위치한 독일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공포와 고통을 견디며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라는 실내악곡을 작곡했다. 이 곡은 피아노와 클라리넷, 첼로, 바이올린이라는 극히 이례적인 악기로 구성되어 있다. 수용소에 비올라 연주자가 없었기에 대신 클라리넷이 가세해 독특한 조합의 4중주가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포로수용소에 탄생한 곡을 연주하기 위해 네 사람은 독일군에게 특별 허가를 얻어 화장실에서 연습하며 하루하루 연주회를 준비했다. 그리고 1941년 1월 전쟁 포로 5천여 명 앞에서 초연했다. 메시앙이 피아노를 쳤고 수용소 동료였던 바이롤리니스트 장 르 불레르, 클라리네티스트 앙리 아코카, 첼리스트 에티엔 파스키에가 함께 연주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 4중주 연주곡은 20세기 최고의 명곡 중 하나로 꼽힌다.

훗날 메시앙은 그날의 연주를 회상하며 “그때처럼 넋을 잃고 연주에 몰입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연주자와 청중 모두 포로였던 특별한 연주회, 낡은 피아노, 줄이 몇 개 끊어진 현악기가 등장한 초라한 연주회였지만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사람들에게 어느 화려한 콘서트 못지않은 큰 감동과 위로를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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