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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금식과 축제의 의미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2 조회수661 추천수3 반대(0) 신고
우리들은 이제 과거와 다르게 축제를 기념하고 있다.
옛날에는 일반적으로 긴 금식기간을 거친 후 축제를 맞이 하고
그 뒤에는 기쁘게 기념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엔 보통 축제까지 오래 동안 기념하고 난 뒤에 금식을 한다.
이른바 김칫국부터 먼저 마시고 있는 것이다. 성탄절을 기념하는 방식이 그 좋은 예이다.
 
보통 성탄절이 되기 약 두 달 전부터 축제분위기가 된다.
연회가 시작되고, 장식물과 등불이 등장하고,
카드를 보내고, 성탄절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성탄절이 되면 이미 축제를 충분히 즐기고 난 후라서
지겨운 생각이 들며 일을 했으면 하고 내일을 기다린다.
저녁에 칠면조 요리를 충분히 먹고 나서는 일상생활로 돌아가서 금식할 준비까지 한다.
 
이제는 성탄절이 현재와 같이 12월 25일에 끝나게 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금요일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관습은 과거와는 정 반대이다.
옛날에는 금식을 먼저 하고 기념은 뒤에 하였지만
지금은 축제를 먼저하고 금식을 나중에 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리고 금식-축제 사이클이 예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인가
아니면 더 나쁜 것인가?
 
나의 동료는 이에 대해 우리 사회는 이벤트를
기대할 줄은 알지만 유지할 줄은 모른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 문제는 이벤트를 유지할 줄모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대할 줄을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기대와 기념을 혼돈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들의 약점 중의 하나는
기대나 불만족이나 채워지지 않는 것을 해소하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갈망하고 단식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
축제를 앞두고 분위기가 경건하게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대로 기념할 수도 없는 것이다.
 
기념하는 것은 유기체적 과정과 같다.
축제를 지내려면 먼저 금식을 해야 한다.
극치를 맛보기 위하여 먼저 속을 비우고 살아야 하며
특별함을 맛보기 위해 먼저 보통의 맛을 보아야 한다.
금식을 할 때에는 불만이나 시무룩한 감정을 억누르고
피곤한 마음이나 지루함이나 실망을 버리고 기념하는 마음으로 금식해야 한다.
“바로 이 기분이야!”하고 말하면서 공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숭고함이 있어야 거룩해질 수 있다.
 
이제 나도 옛날을 이야기할 수 있을만큼 나이가 들었다.
우리 모두 결점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이들 힘 중의 하나가, 축제는 먼저 금식을 하고 난 뒤에 지내고,
숭고함이 있어야 거룩하게 된다는 믿음, 살아있는 믿음이다.
 
나는 어릴 적의 많은 강림절과 사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만 해도 얼마나 엄격했는지 모른다.
금욕과 포기의 기간이었다.
이 기간에는 결혼도 하지 못하였고, 춤도 출 수 없었고, 연회가 거의 없었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으며, 후식(後食)도 거의 먹지 않았으며,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것을 적게 하여 기념하는 것으로 가름하였다.
교회는 자줏빛으로 덮였고 십자고상이나 성모 마리아상도 덮어 두었다.
모든 색깔이 어두웠으며 회개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부활절과 성탄절 축제가 곧 이어져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향수에 젖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어리고 순진하고 가난했기 때문에
성탄절과 부활절 그리고 다른 축일을 신선한 기분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축제를 마음 설레며 기다리지 않기 때문에 축제 분위기도 느끼지 못한다.
단식도 하지 않고 축제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지도 않으며 갈망하지도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성탄절 축제를 수 주간 보내어
지쳐 있는 상태에서 12월 25일을 맞으면 성탄절 기분이 날 수가 없다.
다른 축일처럼 사순절을 보내고 나서 부활절을 맞는데
어떻게 부활절 기분이 날 수가 있겠는가?
숭고한 분위기가 아닌데 어떻게 거룩하게 될 수 있겠는가?
 
앞에서 말한 대로 기념한다는 것은 유기체적 과정과 같다.
기대와 성취, 갈망과 불만, 보통과 특별함,
일과 노는 것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으로 인하여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 사랑, 성(性)도 이러한 금식-축제의 리듬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일한 다음에 놀고, 갈망 뒤에 만족하고, 고독을 맛보고 친밀함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즉 없어야 있음이 있고, 고독해봐야 친밀함을 알게 되고, 일해야 놀게 된다.
심지어 하느님께서도 6일간 일하신 다음에만 쉬셨다.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 특별함이나 기쁨이 없는 것은 이 리듬이 깨어진 것이 주된 이유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 강림절을 제대로 기념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탄절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고,
신부(新婦)와 이미 잠자리를 같이 했기 때문에 결혼식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으며,
모든 이런 경험들을 서둘러 맛보았기 때문에
시시하고 지루하고 아무런 흥분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조숙(早熟)하여 먼저 맛보는 경험은 좋을 수가 없다.
강림절 동안에 성탄절 분위기를 즐기고,
금식을 하지 않고 부활절을 맞이 하고,
모든 일을 설렘이 없이 맞이 하는 것은
결혼식 전에 신부와 잠자는 것과 같으며 순결함에 티를 만드는 꼴이 되어 버린다.
미리 맛보면 열정과 기대를 빼앗기게 된다.
 
(롤하이저 신부님의 묵상글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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