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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2 조회수834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11월 22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He is not God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for to him all are alive
(Lk.20.38)
 
 
제1독서 요한 묵시록 11,4-12
복음 루카 20,27-40
 
 
한 아이가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태권도 9단과 유도 9단이 싸우면 누가 이겨요?”

이 질문에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글쎄다. 아마 센 놈이 이기지 않을까?”

당연한 말이지요. 동시에 이 말이 정답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런 답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하지요. 왜냐하면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고정관념에는 태권도의 장단점과 또 유도의 장단점을 따지는 것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주님의 뜻에 맞추어 생활하면 너무나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을, 이 세상의 눈으로만 보려하고 판단하려하기 때문에 더 힘들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즉, 내 안에 간직하고 있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주님의 뜻에 맞추는 우리의 모습이, 보다 더 편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비결이 아닐까요? 하지만 2천 년 전의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까지 그 고정관념 때문에 주님의 뜻에 맞지 않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부활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선 그들이 말하는 근거인 신명기 25장 5절을 보지요.

“형제들이 함께 살다가 그 가운데 하나가 아들 없이 죽었을 경우, 죽은 그 사람의 아내는 다른 집안 남자의 아내가 될 수 없다. 남편의 형제가 가서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시숙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이 율법에 의해서 칠 형제와 부부의 연을 맺은 여인은 부활했을 때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먼저 이 율법이 생기게 된 이유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당시에는 여자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지요. 따라서 가장 힘없는 소외 계층이 될 수 있는 과부인 여인을 받아들이라는 약자를 위한 율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인 ‘부활은 없다’라는 것만을 증명하기 위해서 율법을 내세우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칠 형제와 부부의 연을 맺은 여인이 부활한다면 일곱 형제 모두의 아내이어야 하는데, 그렇게 될 수 없으니 당연히 부활이 없다는 말도 안 되는 논조인 것입니다.

우리도 고정관념 속에 빠져 있으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할까요? 바로 복음에 나오는 사두가이 사람들처럼 망신을 당해 주님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보다 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들은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 안에서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고정관념에 쌓여 내 주장만을 펼치지 말도록 합시다.





기다려 보십시오(박혜나, ‘행복한 동행’ 중에서)

도쿄대 재학 시절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한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의 인생은 그야말로 장밋빛이었다. 하지만 그의 나이 26세이던 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결혼 후 얻은 첫아들이 뇌에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수술을 했지만 아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심신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탄탄대로일 것 같던 그의 인생에 받아들이기 힘든 시련이 닥친 것이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아들에게 빛이라는 뜻의 ‘히카리’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함께 인생을 배워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아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계속 소설로 발표한다. 생명, 사랑, 인간 구원의 문제가 담긴 그의 소설은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고, 마침내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는 자전적 에세이 ‘나의 나무 아래서’를 통해 절망의 순간을 이겨 내는 지혜를 알려 준다.

“기다려 보십시오. 어른이 되면 ‘어느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 봐도 달라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라는 것은 정말 소중합니다. 절망의 순간, 체념하지 말고 기다리는 용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

누구에게나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절망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불행이 될 수도, 또 다른 행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절망의 순간이 바로 참다운 인생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Yuhki Kuramoto - 사랑의 언약 (愛の語らい)
 Il divo - hasta mi f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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