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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도의 집과 강도의 소굴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1 조회수494 추천수4 반대(0) 신고
 
 
 

기도의 집과 강도의 소굴 - 윤경재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루카 19,45-46)

 

 공관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방에서 활동하시는 부분과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언행에 미묘한 차이가 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간략히 설명하면 갈릴래아 지방에서는 인자한 스승 같은 모습이 더 많이 풍기지만, 예루살렘에 입성하고부터는 사사건건 갈등을 조장하는 투사 같은 자세가 더 두드러집니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성전정화 사건과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장면이 나란히 나옵니다. 특히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무화과나무 열매가 열리지 않은 연유를 제 철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가설명까지 합니다. 철이 안 돼서 열매 맺지 못한 것은 당연한데 그것을 두고 저주까지 내리시다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두 복음서 저자는 의심하지 말고 굳센 믿음을 지니라고 가르치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또 성전을 정화하시는 대목은 네 복음서에 모두 나타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과격합니다. 상인들을 쫒아내고 탁자와 의자를 둘러엎고 소와 양을 채찍질하여 쫒아냈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 중에는 그 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모두 악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그렇게까지 행동하셨을까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특히 성인은 도덕군자와 같아야하고 언제나 인내하고 언제나 용서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순진한 사람들에게는 놀랍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루카 저자는 오해의 소지가 담긴 어휘들을 빼고 완곡하게 표현했습니다. 더욱이 루카 저자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대목은 아예 삭제하였습니다.

  이 두 대목은 단지 굳센 믿음과 기도를 강조하시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나타내시려는‘행위언어’이었습니다.

  이 대목 뒤에 나오는 내용은 ‘공관 복음서의 묵시록’이라 일컫는 부분입니다. 이 묵시록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는 나중으로 미루고, 그 주제를 살펴보면 종말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믿는이가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 선택을 신중하고 분명히 하라는 경고 말씀입니다. 그러고 나서 시대의 표징을 읽으라는 무화과나무의 교훈으로 한 단락의 끝을 맺습니다.

  즉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모습과 성전 마당에서 장사꾼을 쫒아내는 ‘행위언어’는 당신께서 수난과 죽음을 당하시고 맞을 미래의 제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무화과나무나 장사꾼을 거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성적인 것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언어’와 묵시록 뒤에는 십자가 수난이 따라 옵니다.

  십자가의 수난과 죽으심이야말로 가장 커다란‘행위언어’이자 영성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하는 수난입니다.(루카 24,26)

  요즘 들어 뉴에이지 운동이 기승을 부립니다. 그중에 교묘하게 위장한 영성 장사꾼들이 판치고 있습니다. 그들의 정체를 알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그럴듯한 말로 치장하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인간 심리적인 면입니다. 특히 미국에서 더 활발하게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요사이 번지는‘성공 심리학’중에 상당수가 심리학의 범위를 벗어나 종교적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종교라 하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경외감이 따르기에 장사하기가 더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또 인도나 동양 등지에서 요가나 선을 수행하였다고 하며 구루라 자처하는 인물 중엔 거짓 수행자가 많다고 합니다. 현대 사회의 복잡한 환경에 찌든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심리적 위로를 약속하며 새로운 경지와 깨달음을 맛보라 권합니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가 개인적으로는 부와 명성을 이용하여 안락과 사치를 누린다고 합니다. 어떤 구루는 집에 롤스로이스 자동차가 몇 대씩이나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서 변명하기를 깨달은 자는 일부러 결점을 지닌다고 합니다. 완벽하면 저 세상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라나요. 이승에서 할 일이 남아 있으므로 임시방편으로 그렇게 행동한다고 합니다. 정말 핑계가 좋습니다.

  그들은 영성 장사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꼭 성전 마당에서 물건을 사고팔아야만 장사꾼이며 강도가 아닙니다. 심리적 위안을 광고하며 다가오고 성공을 상품으로 내세우며, 이 세상에서 맛 볼 행복과 기쁨을 펼쳐보이는 이들이 혹시 장사꾼이 아닌지 잘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이비 예언자나 영성 장사꾼을 어떻게 구별해 낼까요? 먼저 그들의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됩니다. 논어에도 “교언영색하는 사람은 인자가 드물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쓴 책이나 강연 내용을 읽고 듣기는 하되 그들의 실생활 모습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감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언제나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일수록 더 세심히 살펴야 합니다.

  또 그들이 진정한 크리스찬인지 살펴보는 시험지를 지니고 일일이 평가해 보아야 합니다. 그 시험지 중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을 강조하는 지도 살펴야 합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영광과 성공을 내세우고 듣기 싫어하는 수난 이야기를 빼 놓으면 진정한 복음이 아닙니다. 무작정 수난을 강요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어리석게 보이고 수치스럽게 여겨진다고 주님의 십자가를 외면한다면 참 된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런 책을 읽을 때는 신앙서가 아니라 심리학 서적을 읽는다는 분명한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긍정의 힘’같은 책도 위험하다는 평이 있습니다. 평가절하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책 내용과 그의 처신이 인간적 성공을 강조한나머지 ‘인간 말의 힘’이 주님 말씀을 능가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이고 수난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는 평가입니다. 어찌됐든 신앙인 각자가 영적인 눈으로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주님은 한 분이시며 그분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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