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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족을 대상으로 한 인종청소-판관기89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19 조회수865 추천수2 반대(0) 신고

동족을 대상으로 한 인종청소-판관기89

  <생명의 말씀>
베냐민군은 자기네가 패하였음을 알았다. 이스라엘군이 베냐민군이 보는 데서 뒤로 물러선 것은 기브아 주변에 복병을 배치해 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복병은 재빨리 기브아에 밀려 들어 가 온 성 주민을 쳐 죽였다. 이스라엘군은 복병과 신호를 짜 두었다. 그 성에서 연기가 치솟으면, 싸우던 이스라엘군은 발길을 돌리게 되어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베냐민군은 이스라엘 군인을 삼십 명 가량 죽이면서 이스라엘군이 저번 전투 때처럼 도망치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신호로 삼았던 대로 연기가 그 성에서 기둥처럼 오르기 시작하였다. 베냐민 군인들이 돌아다 보니, 온 성이 불길에 싸여 하늘로 올라 가는 것이 아닌가! 때를 놓치지 않고 이스라엘군이 돌아 섰고, 베냐민 군인들은 자기들의 운명이 다한 줄 알고는 갈팡질팡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스라엘군 앞에서 발길을 돌려 광야 쪽으로 빠져 나가려고 하였지만 벗어날 길이 없었다. 성에서 나온 부대도 한데 어울려 그들을 도륙하였다. 그들은 베냐민군을 포위하여 틈을 주지 않고 동쪽으로 기브아 맞은편에 이르기까지 추격하며 짓부수었다. 그 때에 쓰러진 베냐민 용사는 만 팔천 명이나 되었다. 남은 자들은 방향을 바꾸어 광야를 통과하여 림몬 바위 있는 데까지 도망쳤다. 그리로 가는 길에서도 이스라엘군은 적을 오천명이나 쳐죽이고 또 기돔까지 따라 가며 남은 이천 명을 죽였다. 이렇게 해서 그 날 죽은 베냐민 전사자 총수는 이만 오천 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칼을 쓰는 용사들이었다. 그러나 육백 명은 광야를 통과하여 림몬 바위까지 도망쳐서 넉 달을 그 바위 있는 곳에 머물러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다시 베냐민의 민간인들에게로 돌아 와서 그 성 사람과 짐승을 만나는 대로 칼로 쳐죽이고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성읍들에도 닥치는 대로 모조리 불을 놓았다. (판관기 20:36-48)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세 번째 싸움에서 베냐민 군대는 거의 전멸했습니다. 제대로 된 싸움을 했다기보다는 판관기 기록자의 표현대로 일방적으로 '도륙'을 당했던 것 같습니다. 군대 대 군대 간의 싸움에서 전투가 격하게 이루어지다 보면 어느 한 쪽이 전멸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베냐민 사람들의 악행을 하느님께서 징계하시고자 하는 뜻이 있으셨기 때문에 베냐민 군대의 전멸은 하느님 뜻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살상의 범위가 군대에만 한정되지 않고 베냐민의 민간인들에게까지 미쳤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베냐민 사람 전체가 다 죽어 없어지기를 원하시지 않았고 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군대에게 그것을 명령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연합군은 베냐민 군대를 궤멸시키고는 민간인들이 사는 마을 곳곳에 들이닥쳐서 불을 지르고 사람을 죽여 없애 버렸습니다.

 동족인 베냐민 지파에게는 잘못에 대한 징계가 있어야 할 뿐인데 이스라엘군이 실제로 했던 일은 베냐민 지파를 대상으로 한 인종청소였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필두로 가나안 지역에 들어오기 전에 하느님께서는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민족들을 몰아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상하게도 이상하게도 이때만은 베냐민 지파를 대상으로는 최후의 한 사람까지 찾아내서 죽이겠다는 열심을 보입니다. 베냐민 민간인들을 만나는 대로 다 죽이고 또 가축까지도 죽여 없앴다는 기록이 그 증거입니다.

 하느님께서 시키시지도 않았고 하느님께서 원하시지도 않는 일을 도를 넘어서서 열심히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 개인이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군중심리 집단의식에 휘둘려서 생각 없이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깊게 생각하고 깊이 성찰하고 깊게 반성하지 못하게 하는 전체의 분위기가 군중을 집단의 광기(狂氣)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독재자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웃 나라의 막강한 군대도 아니고 자기 약점도 아닙니다. 그것은 비판적으로 사고할 줄 아는 대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독재자들은 사람들이 비판적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다양한 방식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대중매체를 통해서 여론조작도 하고 국가의 공식적 교육을 통해서 자신들의 생각을 유일무이한 것으로 주입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중문화라는 놀잇감을 주어서 사람들이 유흥에 정신을 쏟게 하여 정상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또 그것만으로 부족하면 대외적인 적을 만들어놓고 온 대중이 그 대상(그 대상이 실제이든 가상이든)에게 적개심을 가지도록 하기도 합니다.

 사탄이 두려워하는 것도 독재자의 그것과 동일합니다. 비판적이며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대중입니다. 사람들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자각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일어나는 일은 하느님 뜻의 성취가 됩니다. 사탄은 이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 없이 시류에 떠밀려 살다가 군중심리에 이끌려서 집단적 미친 짓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판관기 시대를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 말씀을 잊었고 따라서 하느님 백성으로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판관기의 시대 정신이 동족 내부에서 일어난 인종청소 수준의 집단살육의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주체적으로 생각할 줄 알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시면서 내게 주신 소명을 구체적으로 깨닫고 실천해 내려는 원의와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판관기 시대에는 이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시대 전체가 어두울 수밖에 없었던 때입니다.

 판관기 묵상도 이제 거의 끝이 보입니다. 이 어두운 시대가 어떻게 마감되면서 하느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시는지 다음에 이어지는 판관기 마지막 묵상과 이후 이어지는 성경인 룻기와 사무엘 상하권을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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