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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해욱 신부의 {내맡긴 영혼은} 나는'기도'를이렇게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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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민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1 조회수453 추천수2 반대(0) 신고

나는 "기도"를 이렇게 생각한다 (2010, 08, 03)


우리 신앙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과연 어떤 단어인가?
사랑? 나는 사랑보다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가
"기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도"라는 말이 과연 언제부터 생겨났는가가 무척 궁금했다.
우선 구약성경에서 찾아보니 "창세기 20장 7절"에 처음으로
기도라는 단어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 왕에게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속였기 때문에
사라의 미모에 반한 아비멜렉이 사람을 시켜 사라를 데려왔고 그날 밤에
아비멜렉이 꿈을 꾸게 되는데 하느님이 꿈에 나타나 아비멜렉에게 사라를
 건드리면 그와 그에 딸린 사람들이 모두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면서, 그러니 사라를 돌려보내 주고 아브라함에게 기도를 받을 것을
 지시하는 내용에 처음으로 "기도"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뒤로 가면 갈수록 "기도"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도 기도라는 단어를 무척 많이 사용하셨고,
4복음 외에 서간경의 저자인 사도 바오로를 비롯한 다른 저자들도
기도라는 단어를 다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이후 우리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교부들을 비롯한 많은 성인들께서도
기도에 대해 많이 언급하셨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언어의 기원이 그러하듯이 기도라는 말도 그것의 "필요성"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리고 그 다음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을 것이 분명한 사실이며, 또 그렇다면 기도의 필요성이
언제부터 생겨나게 되었는가를 알아내면 될 것이다.


그러면 "기도의 필요성"이 언제부터 생기기 시작하였을까?
"필요성"이 전혀 필요 없는 "충만한 상태"가 언제였는가, 또
그 반대로 충만한 상태를 잃고 "필요를 필요로 하는 상태(결핍상태)"가
과연 언제부터 생겨나게 되었는가를 알면 문제가 해결 되리라!


자, 이제 답이 나왔다.
하느님이 이 세상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창조하신 태초의 상태가
바로 그 상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는 "완전한 충만 상태",
소위 "에덴"의 그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의 잘못된 사용으로
그 충만한 상태를 스스로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자유의지의 잘못된 사용이 바로 "원죄"이며, 그 죄로 인해
"충만하신 하느님"을 잃고 항상 필요를 느끼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기도"는 "죄의 결과"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일, 저의 이 글이 교리나 어떤 신학에 어긋남이 있으면
이 글을 읽는 "성서학자"나 "영성신학자"나 "교의신학자"께서 부디 저에게
 한 수 가르쳐 주시기를 바란다.

 

반의적(역설적)으로 말하면,
기도의 필요성이 없는 상태란 곧 하느님을 잃기 전의,
전혀 기도의 필요를 느낄 필요가 없는 완전히 충만 된 태초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빌祈와 빌禱"의 글자로 이루어졌다.
뭐가 자꾸 필요해서 神에게 달라고 자꾸자꾸 빌어야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무엇을 해 달라고 비는 것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정말 많은 "지극 정성"과 거기에 또 "돈"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무당에게 찾아가서 뭘 빌어달라고 청할 때 들어가는 돈은 정말
만만찮다고 한다. 비는 일에 따라 때로는 집 한 채 값에 해당하는
거액이나 아니면 고급 승용차 한 대 값은 그냥 날아간다고 한다.


불교 신도들이 절에 가서 100일 기도나 1000일 기도를 올릴 때도
만만찮은 거액의 돈이 들어간다고 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기도의 정석"은 불교에 있다.
불교는 기도가 아주 많다.
기도하는 시간도 꼭두새벽부터이고 기도하는 종류와 방법도 무척 많다.
불교의 기도는 "하는 기도"이다.
뭘 하려고 하고, 비는 기도이다.(쬐송)


그런데, 영성이 떨어지니까(기도를 살지 못하니까)
남의 기도방법을 교회 안에 들여와 퍼뜨리는 영성가들이 가끔 계신다.
불교식으로 엄지와 검지손가락도 똥그랗게 오므리고 거기다 가부좌까지
 틀고~~. 기도를 살지 못한 결과가 그런 "天+佛 짬뽕기도"를 낳은 것이다.


개신교에서도 개인의 만사형통과 천국을 빌기 위해서
성도들이 다달이 십일조의 큰돈을 바치고 있다.


천주교 신자들은 참으로 복도 많지~~~.
미사에물 쩨깨(쩨쩨하게 깨소금 넣듯이?) 갖다 바치믄서
하느님께 별걸 다 쫄라대고 있으니 말이다.


 "기도하기"를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도 말이다.
누가 이 기도의 속박에서 나를 구원해 주리오?(크~ 누구 흉내낸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주일학교 수녀님으로부터,
소신학교 신부님으로부터, 그리고 대신학교 시절...
우와, 쩡말 지겹게도 들어온 말이 이 말, "기도하라!"는 말이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들어왔다.


기도와 부르스 댕기는 시간이 길믄 길수록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히 자알 살아가는 사람으로 착각하는 우리 교회 풍토를
과연 누가 만들어 왔는가?


분명히 거룩하신 성인들께서 한 몫을 하셨고 무엇보다
그 성인들을 이용해 밥 블어 먹는 싸람들이 아주 큰 몫을 거들었음을
나는 말하고 싶다. 아님말구!


기도는 '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기도가 본시 읎었던 옛날의 금잔디 동산인 에덴을 회복하여
그곳에서 하느님의 발자국 소리도 들어가며 그냥 살믄 되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다.
그것을 "순리"라고도 말하는 모양이다.
순리를 따를 땐 하는 일이 모두 순조롭고 물 흐르듯 하다.


순리를 역행하면 무지(無知)무지(無智)하게 힘만 들 뿐이다.
죽을 때까지 죽어라 기도를 붙들고 부르스가 아니라
싸움을 할 수밖에 읎다.
기도할 땐 잘 살고, 기도가 멈추믄 못살고...
숨 꼴깍 넘어 갈 때까지 그렇다.
순서를 모르기 때문이다.
순서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순서를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잘못되었으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도가 그토록 죽을 때까지 어려운 것이라면 분명 그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기도는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에
인내를 갖고 끈기 있게 그 어려운 과정을 무릎팍이 썩어져라
욜씸히 하다보믄 "문리"가 틀 날이 올 것이라고 거짓뿌랑을 늘어
놓는다믄 이 담에 큰 행님 앞에 나설 때 아주 큰 코 다칠 줄 알아야...


예수님께서 "가끔" 따로 한적한 곳을 가셨지 "맨 날" 가신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당신의 최후의 가장 중요한 역사를 앞두고서 제자들과의
마지막 시간에 깨어 함께 기도하자고 하셨지 "맨 날 밤마다"
잠도 자지 않고 남편과 새끼덜 어떻게 자빠져 자고 있는지도 모리면서
밤을 붙들고 기도하라고 하지는 않으셨다.
기도로 밤부르스를 땡기면 하느님이 로또를 맞게 해 주시나,
아니믄 하느님이 내 가심 속으로 쏙 들어오셔서 영원히 내 곁에서
빠져 나가지 않기라도 하시나?


밤 도깨비가 날이 새어 낮이 되믄 낮이 무써워 밤에 했던 모든 일
다 잊어 뻔지고 하느님 뜻도 잊어 뻔지고 지 뜻대로만 살아가는 인생들...
하느님이 왜 밤과 낮을 갈라 놓으셨는지 기걸 먼저 알아야 하는디...
저, 맞아 죽어도 할 쑤 읎씸더...


회복해야 한다, 원상회복을...
기도가 필요하지 않았던 그 상태를 말이다.
그 상태를 회복하면 그때부터 "기도가 살아진다."
기도를 살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게 됨으로 그게 가능해지는 것이다.(갈라 2,20)


기도는 "하느님과의 사랑 나눔"이다.
서로 사랑을 느끼고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끊임없이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1테살 5,16)
사랑이 끊기지 않아야 되는 것이다.


무신 기도를 하루에 5~10시간씩 바쳤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기도가 끊길 수밖에 없다.


여기 우리의 내맡긴 형제들도 과거의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해 매일
무신 기도 무신 기도 하는 것에 얽매여 살고 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말로 100% 다 내맡겼다면,
나날이 조금씩, 때로는 왕창 변화해 갈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 하던 무신 기도들이 그제사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말이 사실로 드러나게 될 날을 기다리시길...
기다릴 필요도 없다.
내맡긴 이는 그대로 살아 가면 된다, 기쁘고 즐겁게.


내맡기면 하느님이 내 안에서 영원히 빠져 나가지 않으신다.
내 안에 항상 하느님의 사랑이 충만하다.
그러니 기도(사랑 나눔)가 끊길 수가 없는 것이며
그래서 기도를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도가 필요치 않았던 그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느님이 주신 도깨비 방망이와도 같은 "자유의지"로
"충만"의 원조, 충만 자체이신 하느님을 잃었으니,
그리하여 "필요(부족)"를 느끼게 되었으니,
그 필요한 것들을 달라고 쫄라대는 "기도"가 생겨났으니,
기도를 생겨나게 한 원흉인 "자유의지"를 다시 고스란히
하느님께 반납해 드리면 된다.


자유의지를 다른 쉬운 말로 "나의 의지, 내 뜻"이라고 한다.
나에게 "내 뜻"이 있듯이,
하느님께도 "하느님의 의지, 하느님 뜻"이 계시다.
내 뜻으로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을 망가뜨려 놨으니,
이제 내 뜻, 쓸모없는 내 뜻을 하느님의 뜻에 내맡겨 드리고
앞으로는 하느님 뜻대로만 살아갈 것을 하느님 대전에서 약속드리고
그 굳은 약속을 봉헌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끝이다.


그렇게 하면 하느님께서는 나의 모든 것, 더러움까지도
몽땅 다 받아 주시고, 그때부터, 하느님 당신의 뜻대로
부족한 나를 대신 살아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타락, 즉 자유의지의 잘못된 사용으로
불 보듯 뻔한 인간의 삶에 당신이 대신 살아 주시려 구약의
이스라엘부터 역사해 내려오셨다.

"야, 느그들은 이쟈 가만히 읶그라~~. 지금까지 느그들에게 주었던
그 자유의지가 으떡케 귀한 선물이지도 모리는 느그 넘들에게 줬더니
그걸 갲고 고 모냥 고 꼴로 맹그러놔?
으이, 이 고얀 넘들~~~. 이쟈부텀 내가 느그들의 삶을 책임져 주겠다.
자, 느그들의 그 자유의지, 느그 뜻이나 나에게 쭤!"


그 이후의 역사가 다 구약성경에 쓰여 있지 않은가?
자유의지의 잘못된 사용의 첫 죄인이지만 그들의 앞길을 미리 다
보호해 주시고, 그들의 첫 아들, 즈그 동상을 작살 낸 그넘까지 다
보호해 주시고, 그 이후, 이집트에서 빼내 주시고, 전쟁까지도 당신이
다 해 주시고, 구약의 모든 역사가 다 당신이 대신해 주시는 역사
야그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교만한 머리가, 뱀의 조종을 받던 머리가
그러한 하느님의 뜻이 인간 앞에 "나섬"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하느님은 마귀에게는 강해도, 인간에게만은 너무도 약하시다.
우리 인간을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여러분들의 자녀에게 그렇지 아니한가?


 "거룩한 내맡김"은 인간의 모든 실수를 인정하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마치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완전히 쏙 들어간 상태로
회복시켜 주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다.


내맡기게 되면 나의 모든 것이 완전히 다 하느님의 것이 된다.
왜? 하느님께서 나의 모든 죄와 부족을 다 받아들여 주셨기에,
나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 됨으로 내 것이 곧 하느님의 것이
되는 것이다.


소위, "내가 하느님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소유하는 방법은 이 방법이 가장 훌륭하고,
사실 이 보다 더 뛰어난 방법은 이 세상에 없다!
의심나면 하느님께 직접 물어 보시라!


이렇게 하느님께 내맡기고 나면,
아~ 기도가 이렇게도 감미로울 줄이야...?
아~ 기도가 이런 것인 줄 꿈에서도 몰랐는데...?
성무일도 한 장을 읽어도 하느님의 사랑이 눈에 보여
그 성무일도를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앞을 가려...
3천 년 전의 다윗 성왕이 지금 내 앞에 나타나 하프를 타면서
시 한 수도 읊어 주시고...!


그 전의 기도는 완전 "의무방어전"이었는데,
이제는 기도로부터 완전 해방!
아~ 해방된 민족이구나!
그때부터 기도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삶이 곧 기도"가 된다.


주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하는 것이 나의 기도요,
주님께서 보내 주시는 작은 예수님들을 만나는 것이 나의 기도요,
성무일도가 섭섭함을 느껴도 하느님의 뜻이 성무일도를 벗어나
당신이 주신 일과 사람으로 이동했음을 확신하며
어느 기도에도 얽매임 없는 삶!
특히, 기도를 살아가는 삶!
거룩한 내맡김으로 "참 자유"를 선물로 받은 이들만 누리게 되는 삶!


그것이 바로 내맡긴 영혼의 "자유기도"인 것이리라!

 



(소리로 듣기)
 

 

  

 

 

  http://cafe.daum.net/likeamaria (다음 "마리아처럼" 카페 바로가기)

 

  

 

 

 

 

 이해욱 신부님의 책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가 출간 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요?

참으로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맡기고 사는 것,

즉,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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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성모병원 (032)-343-1886

                  미주지사 (323)-734-338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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