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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3.“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0-07-03 조회수1,889 추천수3 반대(0) 신고

 

요한 20, 24-29(성 토마스 사도 축일)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 나타나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마치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사도들과 함께 있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비록 제자들이 당신을 떠나가도, 당신은 결코 제자들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엠마오의 제자들이 빵 쪼개는 만찬을 보고서 예수님을 알아 본 것처럼, 토마스도 예수님의 옆구리의 상처를 보고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을 내어주시는 성찬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쪼개지고 찢어지고 구멍 뚫린 당신 몸의 성찬이었습니다. 토마스는 그때서야 비로소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렸습니다.

어쩌면 토마스는 동료들 중 자신만 주님을 뵙지 못한 것이 마치 자신만이 부활하신 주님을 뵐 자격이 없는 자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동료들이 뵌 주님을 자신은 뵙지 못한 슬픔에 빠졌을 것입니다. 때문에,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님 뵙기를 더더욱 원했고 고대했을 것입니다. 더욱 더 주님의 부활을 확인하고 싶었고,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주님을 다시 보는 일은 곧 주님의 사랑을 보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부활은 곧 주님의 끝나지 않은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아시기라도 하시듯, 예수님께서는 다시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토마스는 돌아가신 예수님을 뵌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을 뵌 것입니다. 비로소 그 사랑 앞에서 모든 의혹과 자책이 녹아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랑에 치유를 입었습니다. 손대지 않아도, 보기만 해도, 치유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요한 20,27) 

 

 

 

그렇습니다. 상처는 당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는 표시임과 동시에, 그분 사랑의 표시였습니다. 상처는 당신을 남김없이 쏟아 부은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토마스는 눈에 보이는 상처를 통에,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는 믿음에 대한 확신으로 굳건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확증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만지는 것을 허락하시고, 당신의 찢어진 몸을 내어주십니다. 그리고 엠마오의 제자들에게 성체의 성찬을 베푼 것처럼, 토마스에게도 성혈의 성찬을 베푸십니다. 그 순간 토마스의 마음이 열리고 믿음의 눈이 뜨였습니다. 참으로, 복된 성찬입니다. 이 성찬을 통하여, 마침내, 토마스는 고백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

 

 

 

오늘 우리도 당신 사랑을 베푸시는 성찬을 통해, 우리의 주님, 우리의 하느님!”을 고백합니다. 신비로운 것은 상처를 만지면, 상처를 받은 이가 아니라 상처를 만지는 이가 치유를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상처를 통해 다시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이토록, 그분의 상처는 보기만 해도 치유를 입습니다. 그 상처는 당신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사실, 보이는 것들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히브리서>에서 말씀해주듯이,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 11,1). 그러니, 토마스가 본 것은 상처였지만, 믿은 것은 주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보고서 믿었습니다. 그는 보지 않고는 믿지 못했지만 보고서는 믿었습니다. 그러나 보고도 믿지 않는 이는 불행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오늘도 보고 또 보고 보지만, 여전히 그분의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니, 보고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히브리인들이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너왔지만 그들이 보지 못해서 못 믿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아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보고도 목이 뻣뻣해져 하느님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에서 벌어지는 기적들을 보고도, 특히 성체성사를 매일 영하면서도 여전히 예수님의 사랑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고뇌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우리 가까이 계신지를 깨닫지 못하는 데서 생깁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찢어진 가슴을 열고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그 지고한 사랑을 말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증거 해야 할 것도 역시 사랑입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요한 20,27)

 

 

 

주님!

당신 옆구리에서 다시 탄생하게 하소서

당신 피로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거부하고 배척하는 이를 받아들여 옆구리에 간직하고 위로하게 하소서.

상처내고 비난한 이를 끌어안아 옆구리에 품고 용서하게 하소서.

믿어주고 도와주며 제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생명의 피를 건네주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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