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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 17일 야곱의 우물- 루카 18, 35-43 묵상/ 연민을 넘어서는 어떤 것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17 조회수557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민을 넘어서는 어떤 것?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 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주자,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루카 18,35-­43)
 
 
 
 
◆거리에서 만나는 노숙인은 대부분 ‘불쾌한’ 모습입니다. 잔뜩 술에 취해 아무 곳에나 드러누워 자거나 불결한 손을 내밀며 적선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행패를 부리고 욕설을 하는 노숙인을 마주친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신앙인의 선행에 대한 ‘의무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느꼈을 것입니다. 어느 교우가 노숙인 사목을 하는 저를 의식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걸을 하는 노숙인을 돕고 싶은데 구걸한 돈으로 술을 마신다고 하니 돕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냉정하게 뿌리쳤지만 죄를 지은 것 같고 마음 한구석이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네요.”
 
저는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돕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돕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은 알코올 중독자 노숙인이 술 한 잔을 더 마실 수 있을 만큼 어수룩한 구석도 있어야 하니까요. 그러나 구걸한 돈으로 술을 마시는 노숙인에 대해 마음이 단단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냉정해도 됩니다. 그것도 그 사람을 위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노숙인이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아닐까요?”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연민’과 ‘동정’에서 출발합니다. 연민과 동정이 없는 사회를 어떻게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회가 조금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연민’과 ‘동정’을 넘어선 어떤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노숙인도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일이 아닐까요? 그것이 예수님께서 ‘걸인(노숙인)을 눈뜨게 하신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이 아닐까요?
임영인 신부(성공회 다시서기 상담보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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