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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착하고 성실한 종"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16 조회수546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11.16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잠언31,10-13.19-20..30-31 1테살5,1-6 마태25,14-30

                                                        
 
 
 
 
"착하고 성실한 종"
 


11월 위령성월,
죽음과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계절입니다.

끊임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이요,
끊임없이 태어나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이 있어 삶이 선물이자 과제임을 깨닫습니다.
 
과연 선물 인생,
주님께로부터 받은 탈렌트의 선물 잘 활용하고 계신지요.
 
저희 수도원에는 매달 한 달 동안 죽었던 분들의 명단을 가지고
연미사를 청하러 오시는 장의사 한분이 있습니다.
 
지난 10월에는 무려 24명의 명단이 적혀있었습니다.
 
연령별로 뽑아 보니,
40대 1명, 50대 7명, 60대 6명, 70대 7명, 80대 3명이었고
90이상은 없었습니다.

긴 것 같지만 짧은 인생입니다.
 
제가 여기 요셉수도원에 40에 왔는데 금방 20년이 흘러 60입니다.
 
앞으로 20년도 금방 흘러 80일 터인데
위의 분포로 보면 그 때까지 살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위의 사망 연령 분포로 보면
전체 24명중 50-70대까지 20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나이 80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자기 나이를 빼면 남은 햇수가 나올 것입니다.  
 
과연 얼마나 남은 인생입니까?

주님의 날처럼 밤도둑처럼 오는 죽음입니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사람들이 ‘평화롭다. 안전하다.’ 할 때
갑자기 그들에게 죽음이 오는 데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남은 인생 후회 없이 살아
주님으로부터 착하고 성실한 종이라 칭찬을 받을수 있을까요.


첫째,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행복하여라.” 어제 미사 시 후렴이었습니다.
 
주님을 경외함은 지혜의 시작이란 말도 있습니다.
오늘 평신도 주일에 저는 1독서 잠언을 묵상하며
새삼 아내와 어머니로서
여자 평신도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집안의 해라 하여 ‘안 해’, ‘아내’라 부른다 하지 않습니까?
 
교회의 성패가, 집안의 성패가, 남편과 자녀의 성패가,
나아가 나라의 성패가 아내와 어머니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아내와 어머니 평신도로서
으뜸 덕목도 주님께 대한 경외입니다.

“우아함은 거짓이고 아름다움은 헛것이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칭송을 받는다.”

이런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을 아내로 둔 이들
참으로 행복한 남편들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리스도의 은은한 향기를 발하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닌 매력적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경외할 때 저절로 따르는 지혜요,
저절로 흘러나오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늘 주님을 기다리며 깨어 사는
빛의 자녀들이자 대낮의 자녀들이 됩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우리 모두 주님을 경외하여 깨어 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하십시다.”


둘째, 자기가 받은 탈렌트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받은 탈렌트를 아는 게 바로 겸손이요 지혜입니다.
가장 쉬운 게 남 판단하는 것이요
가장 힘든 게 자기를 아는 것이라 합니다.
 
주님을 경외할 때 비로소 자기가 받은 탈렌트를 알게 됩니다.
주님의 거울에 환히 드러나는 내 탈렌트입니다.
 
바라볼 주님이란 거울이 없으면 내 탈렌트를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자각에서 발견되는 제자리, 제몫, 제 역할입니다.
주인인 주님으로부터 선물 받고 있는 그 고유의 인생입니다.
 
사람마다 그 자리나 몫, 역할의 탈렌트의 선물은 다 다릅니다.
내 탈렌트 선물을 최대한 활용할 때 주님께 신의를 지키는 삶이요,
참  자기실현에 행복한 삶입니다.
 
과연 내 받은 탈렌트 선물은 무엇입니까?
아직도 찾지 못했습니까?
찾고 있습니까?
찾았어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이래서 자기 탈렌트를 찾아 잘 활용하고자
끊임없는 기도요 성경묵상입니다.

욕심의 환상 걷혀야 또렷이 드러나는 내 탈렌트 선물입니다.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선물 인생에 최선을 다한 종들,
똑같이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듣습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업적의 양을 보시는 게 아니라
삶의 성실 정도를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어찌 보면 매 주일 미사, 한 주간 탈렌트 선물을 활용한 결과를
주님 앞에 보고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매 주간 이렇게 주님 앞에서 탈렌트 선물 활용도를 꼭 점검해 갈 때,
마지막 죽음 후 주님 앞에 설 때도 결코 당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새삼 삶은 하느님의 선물이자 과제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셋째, 남의 탈렌트와 비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비교할 수 없는 그 고유의 인생이요, 선물 받은 탈렌트입니다.
 
똑같은 사람, 똑같은 얼굴 없듯이 똑같은 탈렌트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불행은 비교로부터 시작됩니다.
비교하다 보면 우월감 아니면 열등감으로 귀착될 것이니
결코 행복할 리 없습니다.

다섯 탈렌트든, 두 탈렌트든 비교할 것 없이
하느님 앞에서 제자리, 제몫, 제 역할에 충실할 때
비로소 내적평화에 안정이요 성공인생입니다.
 
이런 이들이 모일 때
다양성 안에서 상호보완의 이상적 공동체가 실현됩니다.
 
모두가 그만의 고유한 탈렌트를 지니고 있을 뿐,
모든 탈렌트를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진정 자기 탈렌트에 충실한 사람들이
자기 존엄과 품위를 지키는 사람들이요,
모두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하느님의 보물이자 공동체의 보물입니다.
 
오늘 복음의 한 탈렌트 받았다가 한탈렌트 그대로 바치는 종,
그대로 실패인생을 상징합니다.
 
아마 비교로 인한 불평불만으로
주인께 반발하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분히 소극적이고 부정적이고 사변적인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전혀 행동하지 않는,
선물 인생을 탕진한,
참 게으르고 신의 없고 잔머리만 굴리는 사람같습니다.
 
한 탈렌트에 한 탈렌트,
그 이상 그 이하도 요구하지 않는 주인이신데,
전혀 행동하지 않고 받은 한 탈렌트 그대로 내 놓습니다.
 
주인의 다음 질책이 그대로 그의 모습을 압축하고 있습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주인을, 주님을 너무나 몰랐던 참 어리석고 게으른 종이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자기 받은 탈렌트에 충실하고 있습니까?

착하고 성실한 종입니까 혹은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까?

이 거룩한 주일 미사 시간,
주님 앞에 우리 모두 한 주간 동안
탈렌트의 활용 결과를 보고하는 시간입니다.
 
착하고 성실한 종으로 살았던 우리 모두,
주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미사시간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들아!
  와서 네 주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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