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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1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30 조회수561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2008년 10월 30일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요즘 남북관계가 새로운 문제로 더욱 힘들어 지고 있습니다.

극우보수단체들이 북한체제와 김정일의 사생활 등을 비난하는 전단지를 북한지역에 대량으로 살포하여 북한 당국은 이에 격분하여 중대 결단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중대 결단이 무엇인지를 두고 우리 정부도 진의 파악에 분주한듯 합니다.

개성공단 경협중단을 시사하는 것이라면 국가신인도에 엄청난 타격이 옵니다. 

 

극우보수단체들이 이제는 할 일이 없으니 별 희안한 짓들을 다하고 있습니다.

상호 비난전단지 살포 등은 사라진지 옛날이건만 아직도 향수병에서 깨어나지 못하여

고작 생각한 것이 이런 엉뚱한 사고만 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마땅한 대처방안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 쪽에서 잘못한 일이므로 할 말도 없고 전전 긍긍만 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5

 

31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헤로데가 예수님을 왜 죽이려 했는지를 먼저 묵상해 봅니다.

단지 안식일을 위반하였다면 율법학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종교재판에 회부할 일이며 헤로데가 그 이유만으로는 예수님을 죽이려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헤로데가 예수님을 죽이려 한 것은 예수님이 헤로데의 실정을 민중들에게 고발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종교권력에, 정치권력에, 불의한 세력에 이렇게 맞서 싸우신 분입니다.

혹자들은 종교는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삶이 정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종교는 우리 삶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은 종교와 정치권력은 야합하지 말라는 역사적 교훈을 얘기한 것입니다.

정치세력으로 부터 보호받고 있는 종교인들이 자신들을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으로,

또한 정치권력은 자신들의 감시자를 두지 않겠다는 속셈이라면 宗,政분리가 오히려 宗,政야합이라 할 것입니다.


부당한 정치권력에 예수님은 침묵하지 않았음은 헤로데가 예수님을 죽이려 한 오늘 복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

헤로데를 향해 공개적으로 여우라고 한 이런 예수님의 정신을 닮지 않고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면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하신 오늘 말씀대로 우리는 영원히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여우가 식사초대를 하였다면 결코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가셨어도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식탁초대에서 혼을 내신 것처럼 그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宗,政 분리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정신을 닮아가는 사람들은 늘 예수님과 함께 하기 때문에 넓고 편안한 문을 놔두고 그 힘든 좁은 문으로 향해가고 있습니다.

좁은 감옥의 철창 속에 갇히고서야 예수님을 더 잘 알 수 있었다는 어느 분의 말씀이 문뜩 떠오릅니다.


로마가 BC 63년에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세운 꼭두각시 왕조가 헤로데 왕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세례 요한을 죽인 갈릴레아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로 생각됩니다.

로마가 세운 꼭두각시 왕조에 민중들은 늘 불만이 많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민중들의 이런 불만을 모른척 하였다면 민중들이 그렇게 많이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곳곳에서 폭동이 자주 일어났으며 늘 피가 피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지난 토요일(연중 제29주 토요일)복음에서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빌라도가 갈릴레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루카 13,1)'

이에 예수님의 답변은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며 지금도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뿐 아니라 예수님께 십자가 형벌을 내린 로마 총독 빌라도와 관련된 부분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총독 빌라도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으로, 오히려 살려주려고 했으므로 로마제국은 칭송받았을 것입니다.


피가 피를 부른 이런 학살의 악순환을 예수님은 늘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분이 인도의 간디입니다.

간디는 남아공에 있을 때에 교회를 찾아 갔으나 흑인들이 다니는 교회에 가라는 말을 듣고

평생동안 교회를 멀리 하셨지만 성경만큼은 늘 가까이하며 예수님의 정신대로 사신 분이며

철수하는 영국인들을 향해 '교회는 다 가지고 가고 성경책은 놔두고 가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민중들의 불만은 쌓이고 쌓여서 AD 65년에 대규모 민중 봉기가 일어나 로마군을 이스라엘 땅에서 몰아냈으며 헤로데 왕조는 AD 70년에 멸망한 것으로 나오지만 이 때 사실상 멸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후 로마군의 진압작전은 번번이 실패하여 로마당국도 아주 골머리를 앓았던 것 같습니다. 황제 네로는 할 수 없이 자신에게 불만을 품고 낙향하여 살고 있는 노장 '베스파시아누스'를 군 사령관으로, 베스파시아누스 아들 티투스를 부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진압토록 하였습니다.

 

베시파시우스는 예루살렘을 곧바로 공격하지 않고 외곽을 봉쇄하며 갈릴레아부터 점령하였고 이 때 갈릴레아 지역을 방어한 유대 민중봉기군 책임자가 요세푸스입니다.

베시파시우스는 요세푸스의 지략에 감탄하여 그를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로마로 끌려간 요세푸스는 그 후 로마에서 유대전쟁사를 저술하였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해 예수님은 실존 인물로 확인되었기에 소중한 역사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베시파시우스는 네로가 죽자 69년에 황제로 등극하고 그 아들인 티투스가 요세푸스를 대동하고 예루살렘 진압에 나서 AD 70년에 성전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그 후 티투스는 베시파시우스가 죽자 로마 황제로 등극합니다.

유대 민중봉기를 진압한 공로로 아버지와 아들이 로마 황제가 되었으니

유대 민중의 봉기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민족의 불행한 앞날을 훤히 꿰뚫어 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정치권력과 종교권력 그리고 열혈당원 등 그 어느 세력으로 부터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오직 민심이 천심이기에 민중들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하며 민중들이 깨어나기를 바랬습니다. 북쪽 갈릴레아에서 시작하여 곳곳을 돌아다니시며 오늘도 남쪽 예루살렘을 향해 내려가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마지막 복음을 선포하시면 이제 당신이 하신 일은 다 끝이 나고

모든 것은 오로지 하늘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도 스스로 힘만으로는 민족의 불행을 막을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음을 통감하셨을 것입니다. 모든 민중이 당신의 뜻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비록 지금은 정치세력들이, 종교지도자들이, 위선자들이, 불의한 자들이, 군중들이 당신의 뜻을 알지 못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제가는 예수님이 옳았다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하시며

한 맺힌 말씀을 오늘 저희에게 남기고 계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살신성인의 숭고한 삶이 인류를 구원하는 보편적인 진리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우리 그리스도교가 태생되었음을 언제나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나를 죽여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없이는 주님을 뵈올 수 없음을 오늘도 새롭게 알려 주셨으니 저를 죽여서 남을 이롭게하는 오늘이 되도록 기도하며 오늘 묵상을 마치겠습니다.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하시며

내 한 몸을 죽여 불쌍한 민중들을 재앙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죽음의 땅인 예루살렘을 향하는 길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살신성인의 정신이 온전한 따르미의 길 임을 오늘도 새롭게 하여

저를 죽이고 또 죽여서 남을 이롭게 하는 삶으로 인도해 주시옵길

성자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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