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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엘리야 예언자의 우울증/영적성장을 위한 감성수련 문종원신부님
작성자조연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12 조회수836 추천수3 반대(0) 신고

 


 


   

엘리아 예언자의 우울증*
 

죽음의 위협을 받을 때 누구나 도망하고자 합니다.

심리적으로는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구약에서 엘리야 예언자에게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 상 19장 2절부터 8절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로부터 전갈을 받습니다.

“네가 예언자들을 죽였으니 이번에는 내가 너를

내일 이맘때까지 반드시 죽이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천벌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내가 받으리라.”

엘리야는 두려워 떨며 목숨을 구하여 급히 도망쳤습니다.

그는 싸리나무 덤불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 아래 앉아 죽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오, 야훼여, 이제 다 끝났습니다.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선조들보다 나을 것 없는 못난 놈입니다.”

그리고 나서 엘리야가 깨어

야훼의 천사가 가져다 준 과자와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는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사십 일을 밤낮으로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죽음의 위협을 받고 도망간 엘리야가

이러한 위기 속에서 살길을 찾은 것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야훼 하느님입니다.

자신의 그대로의 심정을 아룁니다. “죽여주십시오.”라고

우울증에 깊이 빠졌을 때 누구나 죽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되는 데

엘리야가 선택하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가 아니라

“죽여주십시오.”입니다.

이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자기 연민과 불평 불만에 싸여 절망하는 쪽에서 선택하는 것은

“죽는 게 낫지”입니다.

이러한 독백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달려들어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아뢸 때는 살 수 있습니다.

“죽여주십시오.”는 독백이 아니라 하느님과 대화입니다.

이러한 탄원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가 더욱 더 돈독해 집니다.

우울증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고

삶의 방향을 전환한다는 겁니다.

협박을 받음으로 인해 피해 다니다가 느끼는 갈증으로 인해

하느님의 자비를 더욱 깊이 느끼는 겁니다.

이러한 자비 체험은 무서워서 도망갔던 곳으로

다시 향하는 용기를 갖게 됩니다.

하루도 걷기 힘들었던 사람이 40일을 걷게 되고

한 명이 무서워서 도망갔던 그가 수백 명과 싸울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예수님을 통해서 잘 볼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죽음의 위협을 받는 상황 속에서

그것을 이겨내신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느님과 아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내적인 힘입니다.

이 관계는 죽음의 힘마저도 어찌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연결된 힘입니다.

우리도 때때로 닥쳐오는 위기를 하느님 안에서 본다면

그 위기는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더 친밀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삶의 전환의 기회가 됩니다.

달리 말해, 예수님을 통해 나와 하느님과의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질 기회가 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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