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
예수님을 믿던 작은 무리들로부터 새롭게 시작되었다.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아브라함부터 새롭게 시작되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작게 시작되었다.
이제 그 나라는 예수님을 믿는 수많은 무리들을 이루게 되었다.
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교회로 성당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들고 있지만,
그 나라에 들어가는 문은 겨우 한 사람이 통과할 정도라고 한다.
예수님이 다른 곳에서 말씀하셨듯이 겨우 바늘귀만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옆을 보니 12차선 도로가 나도 될 만한 문이 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든다.
그리고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지만
이 세상이 점점 더 악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보다 더 편한 것, 보다 더 쉬운 것, 보다 더 풍요로운 것을 찾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신부님 대접한다고
교우분들 음식 대접 받아보면 진수성찬이다.
그런 자리에서는 으레 이런 농담이 나온다.
“역시 자리 잘 잡아야 돼! 신부님 옆자리가 제일 명당이야!”
여기까지는 서로 정성을 주고 받는 것이니 딱히 문제삼을 것도 아니다.

많은 경우 신부는 받기만 한다.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안주면 이상하게 여길 정도가 되어가고 있다.
영적인 것을 준다고? 할 분이 많을 것 같다.
그런건 오히려 그렇게 자신 보다 신부님을 더 챙기고 희생하는 신자분들에게서
신부들이 더 영적인 양식을 얻으며 살아 간다.
“우리 신자들 정말 착해”
신부들끼리 있으면 늘 하는 이야기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불편한 것, 어려운 것, 가난한 것을 선택하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참된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 당신 스스로 그런 길을 걸으신 분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좁은 문으로 가고 있는지
대로로 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만일 크고 넓은 길만 가고 있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쯤 말하면 또 이렇게 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신부님, 저는 그래도 크고 넓은 길이 좋아예!
가늘고 길게 살지, 머 할라꼬 힘들게 삽니껴!”

예수님이 그렇게 살았고
또 그렇게 살라고 가르치지 않았냐고 설명하면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건 예수님이나 할 수 있지예”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불의를 일삼는 자들도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불의를 일삼는 자들이
“사는 길거리에서도 가르쳤다.”

알지도 못한 때, 생각지도 않은 때에
우리 앞에 나타날 하느님의 나라에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그 나라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맨 뒤에 쳐져서 따라 오던 예비자가,
아직 발도 들여놓지 않았던 비신자들이 그 나라에 들어갈 있을 지도 모른다.

경찰이라고 교통법을 잘 지킨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경찰일수록 법을 어기고도 우리는 경찰입네 하면 서로 봐준다.
그 지경이 되면 경찰이 아니라 깡패다.
깡패는 폭력과 살인을 일삼고도 자기들끼리는 의리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책을 들고 있다고 해서, 그 책 내용을 다 아는 것이 아니다.
그 책을 읽어야 하고, 읽어도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함께 먹고 마시고 같이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있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제목 소수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29 조회수449 추천수5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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