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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일 : 11원월11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11 조회수1,081 추천수5 반대(0) 신고
축일 : 11월 11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St Martin - OOST, Jacob van, the Elder.

Oil on canvas, 301 x 181 cm.Groeninge Museum, Bruges

 

축일:11월11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San Martino di Tours Vescovo

ST. MARTIN of Tours

St. Martinus, E

c.316 at Upper Pannonia (in modern Hungary) -

8 November 397 at Candes, Tours, France of natural causes

Martino = dedicato a Marte

프랑스의 수호성인.군인의 주보성인

 

 

투르의 성 마르티노(316-397년) 주교는 판노니아(헝가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이교인들이었다.

그는 세례를 받은 뒤 군인 생활을 그만두고 프랑스의 리구제에 수도원을 세우고는 힐라리오 성인의 지도를 받으며 수도 생활을 하였다.

마르티노 성인은 투르의 주교가 되어 신자들에게 착한 목자로서 모범이 되었으며,

다른 여러 수도원을 세우고 성직자들을 교육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다.

 

 

수도자가 되고 싶어했던 의도적인 반항아, 주교가 되도록 미리 계획된 수도자,

이단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면서도 이교도들과 싸운 주교,

이것이 가장 대중적인 성인들 가운데 한 사람인 투르의 마르티노이다.

 

그는 오늘날 헝가리라는 곳에서 이교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성장했다.

노련한 병사의 아들인 그는 자신의 뜻과는 반대로 15세에 군대에 입대하도록 강요되었다.

그는 거기서 그리스도교의 예비 신자가 되었으며 18세에 세례를 받았다.

그의 군대 생활은 군인이라기보다는 마치 수도자와 같았다고 한다.

 

그는 23세에 율리아노 황제가 내리는 전쟁 하사품을 거절하며

"저는 군인으로서 폐하를 섬겼습니다. 이제는 제가 그리스도를 섬기게 해 주십시오.

그 하사품은 싸우러 갈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저는 그리스도의 군사이며 제가 싸우는 것은 합당치 못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나서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프와티에의 힐라리오에게 가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구마품(악마를 몰아내는 사람)을 받은 뒤 아리아니즘에 대항하여 대단히 열성적으로 일했다.

그는 수도자가 되어 처음에는 밀라노에 살다가 후에는 작은 섬에서 살았다.

힐라리오가 귀양살이를 마치고 자기 주교좌에 복귀했을 때 마르티노는 프랑스로 되돌아가서

프와티에 근처에 첫 프랑스 수도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세웠다.(360년경)

그는 그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고 전국을 다니며 설교를 하면서 10년 동안 살았다.

 

투르의 주민들은 마르티에노에게 그들의 주교가 되어 주기를 청했다.

그는 병든 사람이 찾고 있다고 하는 계교에 속아서 그 도시로 끌려가 교회로 인도되었으며

결국 망설임 끝에 주교로 축성 되는 것을 수락했다.(372년)

축성하러 온 주교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마르티노의 볼품 없는 외모와 헝클어진 머리를 보고

그가 주교직에 별로 합당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암브로시오 성인을 본받은 그는 이단자들을 사형에 처하는 이타기우스 주교의 원칙을 거부했다.

또한 이러한 일에 황제가 간섭 하는 것도 반대했다.

그는 이단자인 프리실리아노의 생명을 구해 주도록 황제에게 간청했다.

마르티노의 이러한 노력은 그 자신이 같은 이단자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프리실리아노는 결국 처형되었다.

 

그러자 마르티노는 스페인에 있는 프리실리아노 추종자들에 대한 박해를 중지해 주도록 청했다.

그는 그때까지도 다른 분야에서는 아직 이타키우스와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의 양심은 그러한 마음가짐에 대하여 가책을 받았다.

 

 

그의 임종이 가까워 오자 그의 추종자들은 그들 곁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주여 당신의 백성들이 아직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그 일을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하고 기도했다.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축일:12월7일.게시판790번,1509번.
*성 힐라리오 주교 학자 축일:1월13일.게시판869번.1565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마르티노의 협력에 대한 걱정은 완전히 검거나 완전히 흰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성인 들은 다른 세계의 창조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처하는 것과 같은 곤란한 결정에 직면하기도 한다.

어떠한 양심의 판단도 언제나 약간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만일 북쪽으로 갈 것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동쪽이나 서쪽이나 남쪽으로 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애매한 상황을 지나친 조심성으로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현명한 덕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상 잘못된 결정이다. 왜냐하면 "결정하지 않는 것도 결정이기 때문이다."

 

 

마르티노에 대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몹시 추운 어느 날 마르티노는 거의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면서 성문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한 거지를 만났다.

마르티노가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던 옷과 무기밖에는 없었다.

그는 칼을 뽑아 자기 망토를 두 쪽으로 잘라 하나는 거지에게 주고 다른 한쪽은 자기가 걸쳤다.

지나가던 사람들 중에는 그의 모습을 보고 웃는 사람도 있고

그 사람의 가련한 처지를 구제해 주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그날 밤 꿈속에서 마르티노는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거지에게 준 망토의 반쪽을 입고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을 들었다.

"아직 예비 신자인 마르티노는 이 옷으로 나를 입혀 주었다."

 

 

판노니아(헝가리)의 사바리아 태생인 그는 외교인 장교의 아들이며,

부모가 빠비아로 전속될 때에는 15세였는데, 이때 자신의 뜻과는 달리 군대에 입대케 되었다.

아미앙에서 지내던 337년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추운 날씨에 헐벗은 어느 걸인에게 자기 망또를 반으로 잘라 덮어준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생겼다.

 

이때 그는 크리스챤으로 개종하였으며, 전투를 거부하고, 자기 직책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먼저 어머니를 개종시키고, 또 수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했고,

일리리꿈으로 와서는 공개적으로 아리아파와 싸우므로써 매을 맞고 쫓겨나는 봉변을 당하였다.

 

그가 이탈리아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아리아파이던 밀라노의 주교로부터 추방되었다.

그는 잠시 갈리나리아 섬에 숨어 있다가 360년에 골 지방으로 갔다.

여기서 그는 포와티에르 주교인 성 힐라리오로부터 도움을 받고, 리귀제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이윽고 다른 은수자들이 그에게 몰려옴으로, 이 공동체는 갑자기 큰 공동체가 되니,

이것이 골 지방의 첫 수도 공동체가 되었다.

 

이곳에서 10년을 지낸 어느날, 그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뚜르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개인생활은 마르무씨에르에서 은수자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는 정열적으로 주교직을 수행하니, 이교 신전의 파괴와 개종이 잇달아 일어났던 것이다.

그는 또 계시와 환시로도 유명하며, 예언의 은혜도 받았다.

또한 그는 프리쉴리안 이단을 격렬히 반대하고 격퇴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뒤 이렇게 말하였다 :

 "주님,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저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그는 골 지방의 최고 성인이며, 성 베네딕또 이전에 서방 수도원 제도를 개척한 탁월한 지도자이다.

그의 경당은 유럽의 주요 순례지이다. 프랑스의 수호성인 중의 한 분으로 공경받는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술피치오 세베로의 편지에서

(Epist. 3,6,9-10. 11. 14-17. 21: Sch 133, 336-344)

 

가난하고 겸손한 마르띠노

 

마르띠노는 죽음을 맞이할 날을 오래 전부터 미리 알아 형제들을 보고

자기 육신이 사그라질 때가 임박해 왔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어떤 중대한 일이 일어나 칸데스의 교구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 교구 성직자들 간에 발생한 불화 때문에 마르띠노는 자기 생명 기한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그 교구의 화목을 되찾게 된다면 그것이 자기 전 생애에 걸친 모든 수고의

월계관이 되리라는 그러한 희망으로 여행을 거절치 않았다.

 

그 도시의 성당에서 잠시 체류하면서 성직자들간의 화목을 이룬 후 자기 수도원에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육신의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여 형제들을 불러 자기 임종의 시각이 다가왔음을 전해 주었다.

그때 형제들은 한결같이 안절부절 못하면서 비탄 속에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왜 우리를 떠나려 하십니까? 우리 이 고아들을 누구에게 맡기시렵니까?

잔인한 이리들이 당신의 양 떼를 칠 것입니다.

목자가 부상당하면 이리들의 공격에서 누가 우리를 보호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그리스도를 갈망하시고 계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늦게 가신다 해서 받으실 상급을 잃을 우려가 없고 그 상급이 줄어드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떠나지 마십시오."

 

이때 마르띠노는 그들의 눈물에 깊이 감동했다.

그는 늘 하느님과 일치되어 자신의 마음으로 부터 자비의 동정심이 흘러 나오고 있었으므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애통하는 이들에 대한 응답으로 주님을 향하여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아직 당신 백성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계속 일하는 것을 거절치 않겠습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여! 수고도 죽음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으니,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는 것을 거절하지도 않았으며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려 하지도 않았다.

눈과 손을 항상 하늘에로 드높인 채 그의 무적의 마음은 기도에 굳게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모여든 성직자들은 그의 불쌍한 몸을 돌려 편히 하시라고 청하였으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두시오. 땅보다 하늘을 더 바라보고 싶습니다.

이제 여행을 떠나려는 순간에 이 내 영혼은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마치자 악마가 가까이 있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소리쳤다.

"피에 얼룩진 짐승아,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거야?

이 놈아, 네가 받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아브라함의 품이 지금 나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말씀을 하고는 하느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겨 드렸다.

기쁨 중에 아브라함의 품에로 영접되었다. 가난하고 겸손했던 마르띠노는 부요한 이로서 천국에 들어갔다.

(가톨릭홈에서)

 

 

St. Martin and the Beggar-GRECO, El

c. 1604.Oil on canvas, 104 x 60 cm.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의 근교에 있는 성 마르티노는

산 위에 세워진 거대한 수도원은 이 나라 가톨릭의 중심지라고 할만큼

창설 이래 천 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면면히 내려오는 유명한 곳이다.

이 산의 이름은 317년에 그 산밑에 위치한 사바리아에서 출생한 성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마르티노의 아버지는 로마군의 대령으로 북 이탈리아의 파비아에서 헝갈리에 전임되어

사바리아 시에서 근무했으며, 아들 마르티노를 로마에 유학 시켰다.

마르티노는 그곳에서 그리스도교를 알게 되어 아직은 예비 신자면서도 이집트의 은수자들을 존경했고

수도자가 되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세례도 받기전에 아버지는 불과 15세인 어린 소년을 군대에 입대시켰고,

군인으로서 프랑스에 주둔하게 되었다.

 

당시 로마군에는 가톨릭 신자가 많이 있었고, 그 중에는 후일의 영예로운 순교자도 섞여 있었다.

그런 훌륭한 사람을 본받아 마르티노는 근무 중에도 열심히 교리 공부를 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의 일이다.

그가 말을 몰고 아미안 교외로 나가자 난데없이 어느 가련한 거지가 나타나서 자선을 청했따.

원래 인정이 많은 그였는지라 무엇을 주려고 호주머니를 뒤져보았으나 불행히도 가진 돈이 없었다.

 

그러자 허리에서 장검을 빼어 자기의 외투를 서슴지 않고 반을 잘라서 거지에게 주었다.

그런데 그 날 밤 꿈에 그 외투 조각을 입고 나타난 이는 바로 예수였고

예수께서는 곁에 있는 천사에게 "이 외투는 아직 예비 신자인 마르티노가 준 것이다"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마르티노도 오늘 아침에 나타난 거지가 바로 예수였음을 생각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유명한 성인의 일화이다.

 

 

그후 오래지 않아 그가 간절히 바라던 세례를 받자 군대를 퇴역하고

그 당시 포아티에의 주교 성 힐라리오를 찾아가 사제 서품까지 받았다.

이때 마르티노는 혈기 왕성한 20세 청년이었다.

 

그는 아직도 신앙을 모르는 부모를 생각하니 그대로 견딜 수가 없어도

그들을 진리의 품안으로 이끌기 위해 고향으로 갔다.

순박한 어머니는 아들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 곧 하느님의 자녀의 무리에 들었으나

완고한 아버지는 도저히 응하려 하지 않았다.

마르티노는 조금도 실망치 않고 온 힘을 다하여 전교했으며, 그 시에서 약간의 신자를 얻었으나,

아리우스파 이단자들의 미움을 사게되어 그들에게 잡혀 형벌을 받고 추방을 당했다.

 

마르티노는 하는 수 없이 힐라리오를 찾아가려 했으나

그도 역시 아리우스파에게 같은 공격을 당해 프랑수 국외로 추방되었다.

그는 할 수 없이 밀라노에 가서 수도원을 설립하려 했으나

그것마저 뜻대로 됮 않아 결국 제노아 건너편에 있는 작은 섬으로 건너가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360년에 소아시아 지방에 있던 힐라리오 주교가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로 귀환한다는 소식을 듣고 로마까지 마중나가 주교를 만나 동행했으며

그 주교로 부터 토지를 얻어 지지에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서양에서는 가장 오래된 수도원 중의 하나이다.

 

마르티노에게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어느 날 예비 신자 한 사람이 세례를 받지 못하고 그냥 죽었다.

마르티노는 이것을 매우 애석히 여겨 하느님께 열렬히 자비를 베푸시기를 구하자

그 사람은 즉시 소생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적이 종종 있었으므로 그의 명성은 자연히 널리 퍼졌고 수도원을 창설한지 11년만에

투르의 주교가 서거하자 그 교구 성직자,신자 일동이 마르티노를 그 후임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겸손한 그는 그런 지위를 피하여 몸을 감추려 했으나,

결국 하느님의 의향임을 깨닫고 그 청원을 수락했다. 그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그로부터 주교 재직 30년, 그는 부여된 모든 임무를 완수하는 한편,

권위있는 주교의 신부임에도 수도 생활에 대한 미련을 잊지 못하고,

부근에 수도원을 세우고 많은 동료들을 모집하여 그들의 스승이며 아버지가 되어 잘 지도했다.

 

당시 프랑스의 시골에는 우상 숭배자들이 더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르티노는 조리있고 열성있는 설교로 그 불합리성을 지적하여 납득시킴으로써

많은 우상 숭배자들을 진리의 품안으로 끌어들엿다.

청년시기에 지녓던 큰 자비심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갔고 영육간의 고민으로 우는 자들의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 줌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겼다.

실지 빈민이나 죄수가 마르티노 주교에 의해 구원된 수는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성스러운 생활로 80의 고령을 맞이한 마르티노는 그의 교구의 맨 끝인 칸데 지방을 순시하는 도중

병을 얻어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제자들은 병상 머리맡에 모여 앉아 눈물을 흘렸고, 그는 하늘을 우러러 "주님! 제가 살아남은 것이

사람들에게 유익하다면 내 늙은 몸을 이끌고라도 얼마든지 일하겠습니다"했다.

임종시에는 마귀가 심한 유혹으로 괴롭히려 했으나 마르티노의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은 반석같았고,

참으로 뭇 사람의 거울이 될만한 거룩한 죽음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비보가 전해지자, 거의 온 국민이 애도의 뜻을 표하는 동시,

포아티에와 투르 양 지방은 성인의 유해 쟁탈전까지 벌일 정도였다.

결국 성인이 주교로 오래 있었던 투르에서 장례식이 엄숙히 거행되어 거의 전시민이 이에 참가했으며,

특히 2천여 명의 수도자들의 장례행진은 주목을 끌었다.

마르티노는 프랑스의 사도와 주보 성인으로 추앙을 받고 있으며,

그 명성은 전교회를 통해 높아져 위대한 성인 중의 한 분으로 존경을 받는다.

(대구대교구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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